유교의 인간관 – 성인과 군자 그리고 현실과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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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의 이상은 인간에 대한 믿옴과 인간의 완성을 통한 사회구원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이 본질적으로 태어나면서부터 도덕적 행위와 善의 가치를 인식하고 지향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믿음은 유교의 정체성을 형성한다. 그래서 인간이 어떻게 인격을 완성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유교에서 가장 많이 논의되고 중시되었던 문제였다.

이런 토대 위에서 유교에서의 인격에 대한 논의는 다음의 두 가지 방면으로 나눠 볼 수 있다. 하나는 내재적인 덕성의 문제요 또 다른 하나는 외재 적인 인간상의 문제이다. 그리하여 본고에서는 유교 일반의 이상적 인간상을 추출하기 위한 기본 전제로서 인간의 본질과 심성의 구조에 대해 고찰하고 다음에는 동양의 전통적 인간상의 전형을 형성했던 성인과 군자에 대해서 고찰한다.

 

유교 사상에서 인간의 위치

유교에서 인간은 특별한 존재이다. 유교에서는 인간이 다른 존재들과 달리 인간만이 사물을 을바로 인식하며 인간 사회의 의로 움을 알 수 있는 능력, 즉 이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하늘과 땅은 비록 크긴 하지만 자연법칙대로 움직이는 수동적인 존재이다 그러나 인간은 이성에 의거해서 외부로부터의 한계를 극복하고 자신의 본능적 충동도 이겨낼 수 있다. 그리고 도구를 만들어 자연을 개조할 뿐만 아니라 가치를 실현하며 만물을 완성해준다.

공자에 의하면 인간은 다른 존재와는 달리 인자한 본성을 가지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가장 우수한 존재라고 한다. 다만 공자는 “사람의 본성은 서로 비슷하고 습관은 서로 다르다.” 라는 언급에 그치고 인성의 본질에 대해서 더이상 구체적으로 논의하지 않는다. 인간을 천지만물 중에 가장 귀한 존재로 보는 점에서는 별다른 이견은 없지만 그 본질에 대해서는 유가 내에서도 다양한 시각이 존재한다.

 

사람은 선한가 악한가에 대한 논쟁
맹자(B.C. 372-B.C. 289) 는 공자의 사상을 계승해서, ‘仁(인) 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의 본질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맹자 당시에 이미 인간의 본성이 선한가 악한가에 대해서 여러 가지 설들이 대두되고 있었다.

[218-219] 고자는 타고난 그대로가 바로 본성이기 때문에, 선과 악이 정해져있는 것이 아니라 후천적인 환경에 의해서 정해진다고 보았다. 그는 자신의 이런 논리를 밀고 나가 아예 동물적인 본농이 인간의 본성이라고까지 말한다. 이를보면 당시에 이미 인간의 본질과 본성에 대한 여러 논의가 제기 되었음을 보여준다. 이에 대해 맹자는 인간이 선천적으로 선한 본성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보았다.

[219] 맹자는 이 네 가지 선천적이고도 보편작인 마음이 바로 인간의 본성을 구성하 는 네 가지 단초가 된다는 四端之說을 세웠다. 사람은 특별히 다른 교육을 받지 않아도 선천적으로 타고난 4가지 원칙을 잘 따라주기만 하면 개인의 인격이 완성될 뿐 아니라 천하가 다스려질 수 있다는 것야다

측온한 마음이 없으면 사랍이 아니며,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사양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랍이 아니며
옳고 그름을 가리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

선천적 도덕의식의 존재로부터 ‘보편적 善을 구유한 인간상’을 정립한 맹자는 “성인과 나는 질적으로 동일하다.” 라고 선언하였다. 인간은 선한 본성을 지니고 태어나는데, 이는 사람이라변 누구나 다 성인이 될 수 있는 내재적 근거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맹자의 성선설은 인간은 고유의 도덕의식을 가지고 있음으로써 금수와 구별되며 이률 통해 인간으로서의 완성을 기할 수 있다 는 입장이다.

[220] 맹자의 성선설은 송대 이후 거의 모든 유교권의 사회에서 신봉하는 정통의 인간본질론이자 인간관으로 받이들여졌다.

 

사람은 악하다 vs 사람은 선하다, 유교 내에서의 성선설-성악설 대립
[220] 순자는 맹자의 성선설을 인간의 본성에 대해 대로 알지 못한 것이라고 일축 하였다. 그는 한마디로 “인간의 본성은 악하며 선한 것은 인위의 결과이다” 라고 선언하였다. 순자는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이기적 욕구와 감각적 본능에 지배받게 되어있 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악하게 되어있다고 보았다.(인간이 악한 존재이기 때문에 후천적인 인간의 노력이 더욱 중요하다는 주장으로 연결됨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221] 순자에게 있어서 인간의 도덕관념이란 선천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후천적 인 학습을 통해 얻어진 것이다. 자연상태의 인간이란 휘어진 나뭇가지와 같이 천연적으로 악하게 휘어져 있다. 도지개로 잡고 불에 구워야 반듯하게 되는 니무처럼인간의 성정도 예법의 교육을 거쳐서 바르게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221-222] 그렇지만 순자의 성악설은 악한 인간이 후천적인 노력에 의해 “길거리에 가는 어떤 사람이라도 성인이 될 수 있다”는 낙관론으로 귀결된다. 성인이라는 이상적 인간이 될 수 있는 근거가 선천적으로 내재되어 있다는 맹자의 성선설과 비교해 볼 때, 순자의 성악설은 예법을 통한 학습이라는 외재적인 방법을 통해 선으로 완성된 인간이 될 수 있다고 본 점에서 분명하게 구별된다.

[222]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런  대립된 입장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타고난 본성이 어떠하든 간에, 유교의 기본 입장은 인간은 자신의 본성을 잘 가꾸고 바꾸어 나가서, 결국은 선해지고 누구나 성인이 될 수 있다는 것으로 귀착된디는 점이다. 다시 말해 성인과 군자를 중심으로 완성된 재덕을 갖춘 바람직한 인간형에 대해 다른 하나는 이롤 결여한 소인이라는 인간형이다.

 

성인이란 무엇인가?

[224] 성인이란 개념은 유가사상에 의해 가장 완전한 인격을 가리키는 명사로서, 보통 사람으로서는 도달할 수 없는 위대한 덕성을 지닌 위대한 존재로 미화되었다. 그러나  본래 “성인” 개념은 그렇게 초인적인 능력과 하늘 에서 나온 신비한 힘을 가진 특별한 인물에게만 쓰여진 것은 아니었다.

[225] 그러나 유가에 의해서 성인은 이상적 인격으로 추존되었다. 공자는 요순과 같은 분을 인간으로서의 최고의 완성자인 성인으로서 추앙하고 찬탄하였다. 그러나 정작 성인은 어떠해야 한다거나 聖의 덕은 어떠한가에 대한 진술은 많지 않다. 공자는 이 “聖”이란 개념을 최고의 덕목으로 정립한 仁의 완성으로서, 仁보다 상위에 있다고 하였다. 성인의 정치는 형벌과 법률을 집행해서 인위적으로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성인은 무위로 일관하지만 성인의 덕화에 저절로 감화되어 모든 문제가 해결되며, 완 전무결해서 무어라고 칭찬할 말조차 없다는 것이다.

[226] 또 다른 곳에서는 요순이 마치 북극성처럼 무위로서 천하를 질서정연하게 다스렸다는 언급도 하였다. 이는 요순이 적극적으로 어떤 정책을 펴서 백성들의 환심을 산것이 아니랴 성인의 위대한 덕이 백성들을 감화시킨 결과라는 것이다. 이렇게 완벽한 인격체로서 정립된 성인관은 고대에서 시작해서 맹자롤 거쳐 전국시대 말기에 이르러 완성된다. 맹자는 성인을 인격을 성한 인륜의 지극이라고 하였고 순지는 도의 극치라고 하였다.

맹자는 공자를 역대의 여러 성인 중에서 공지를 최고의 성인으로 받들면서,성인이 지닌 도덕적 감화의 능력을 강조하였다.
그에 비해 순자는 앞에서 지적했던 바와 같이 악환 인간의 본성을 교정할 수 있는 예와 법을 제정해서 교화하는 존재로서 성인을 중시하고 있다

유교에서 말하는 성인은 인의 덕을 완성하고 하늘의 도를 체득하여 문명과 규범을 세운 사랍을 의미한다. 가장 완전환 인간으로서의 성인은 인간의 전형이 되고 그의 무한한 덕은 백성들의 추종을 받게 된다. 그래서 유교에서는 성인이라고 부르며 이상적 인간상으로 존경과 흠모의 대상으로 삼는다. 이는 자연스럽게 성인에게 최고의 정치적인 지위룰 부여하게 만들었다. 다시 말해서 성인은 왕이 된다는 것이다.

큰 덕을 지난 사람은 반드시 왕위에 오르는 천명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는 한마디로 말하면, 내성외왕, 즉 내면적인 덕성으로 말하면 성인이고 외면적인 지위로 말하면 왕이라는 것이다. 유가의 모든 학설은 내성외왕 이란 개념에 귀결된다고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내성외왕은 유교에서 인간을 완성하는 방법론인 몸을 다스리고 사람들을 다스린다는 원리와 동일한 논리이다. 즉 먼저 자기 자신을 수양해서 인격의 완성을 이루고 그 다옴에 다른 사람들을 다스린다는 논리인데, 먼저 내적으로 자신의 덕을 닦은 뒤에 외적으로 남을 다스리는 지위로 나아가게 함으로써 유가의 이상인 왕도정치를 실행하는 방법론이 된다.

성인은 내적으로는 덕을 갖추고 통치의 능력을 타고나서 밖으로 사람들을 다스리는 왕이 된다. 몸을 갈고 닦는 것이 완성되면, 사람이 다스려지는 것은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것처럼, 유가에서 성인으로 떠받드는 성인이 다 자연스럽게 성인으로서 왕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유가의 성인은 내적인 자기 완성을 이루는 데서 그치는것이 아니라, 밖으로의 인간 구원으로 이어진다.

 

성인과 군자의 차이, 이상과 현실

[230] 이것이 실제로 얼마나 실현기능한가는 또 다른 문제이다. 사회적인 특권을 누리며 최고의 교육을 받은 특수충이라고 하더라도 성인이 된다 는 것은 거의 기대하기 어려운 일인데, 일반 백성들에게 성인에 될 가능성이 었다 는 말은 무의미한 것이다. 그러나 ‘君子’라는 인격은 이와 다르다. 성인에 비해 본 다면 군자는 인간에 접근해있었고 현실 속에 살아 숨쉬는 인간상이었다.

공자는 성인을 최고의 이상적 인간상으로 꼽고 있지만, 사실상, 논어중에 성인의 용례는 몇 차례 나오지 않는다. 聖人이란 단어가 언급된 경우는 겨우 회에 불과 한 반면에, 군자란 개념은 총 106번 등장한다.

[231] 일찍이 공자 자신도 성인의 경지가 아니라고 술회한 적이 있거니와, 성인이란 존재는 당대에 만나볼 수조차 없었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군자는 현실 속에서 존재하는 인간형이다. 논어에 보연 군자로서 인자하지 못한 경우도 있다고 하였고. 자칫하면 어지러워지게 되는 경우도 있으며, 사람을 미워하기도 하여 군자는 인간적인 면모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상에서 볼 때 성인과 군자는 분명한 차이가 있지만, 군자는 성인과 완전히 동떨어진 인간은 아니다. 아직 성인의 경지에 이르지 못한 상태일수는 있지만 성인과 본질상 같으며 또 성인을 지향하고 있으며 자신의 이익밖에 챙길 줄 모르는 소인들을 지도해야 할 위치에 있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유교에서는 聖人 을 비롯해, 현자와 의사등 여러 가지 이상적 인격을 제시하였지만, 가장 대표적이고 현실적인 것은 ‘君子’라는 인격이라고 할 수 있다. 공자가 실제적으로 제자들에게 가르친 것은 군자의 인격이었다.

[232] 이처럼 군자는 남의 귀감이 되고 사람들을 인도할 수 있는 덕성을 갖춘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덕성과 도를 얻는 방법은 바로 학문을 통해서 옛 성현의 언행과 지혜를 배우고 익히는 것이다. 논어가 배움의 기뽑을 언급하는 것으로 시작하여,앎의 문제로 전편을 마감할 만큼 공자는 학문을 중시하였고 이런 경향은 유교가 다른 학파와 구별되는 특정을 이룬다. 지식과 학문이란 선조들의 과거의 경험파 지혜롤 축척하고 정리한 것이다.

유교에 있어서 군자의 도는 저 멀리 고상한 데에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물 뿌리고 청소하며 용답하고 접대하며 나오고 물러나는 일상의 행동거지 하나하나를 배우고 익히는 것이 바로 군자의 도이다. 군자는 그렇게 특별한 존재는 아니다. 다만 적재적소에서 자신이 맡은 바에 최선을 다하는 인간이다.

[233] 다시 말해서 군자는 먼저 선천적으로 타고난 지신의 선한 마옴을 개발해서 확충해나가면, 가까이는 자신의 마음속어 서부터 시작하여 멀리로는 하늘에 이르기까 지 알 수 있다는 논리이다.

[234] 군자는 학문과 덕성을 갖추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수양하고 노력한다. 성인이 태어나면서부터 완성된 인격을 갖고 있는데 반해, 군자는 스스로 노력하고 만들어 가는 인격이다. 바로 이런 점이 성인과 다른 의미에서 백성들의 감동과 자발적 순종을 이끌어 내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군자는 처음에는 성인에 비해 한 단계 낮은데서 출발했지만, 결국에 가서는 성인과 만나게 된다. 유교는 “성인” 이란 절대적 인격을 통해 유교의 이념을 정립했고, 군자라는 현실적인 인간상을 제시했다. 이후로 군자란 인격은 유교 인간상의 전형이 되었다.

[235] 공자는 “뛰어난 지혜를 가진 이와 아주 어리석은 사람은 어떻게 바꿀 수 가 없다.”고 말한 바 었다. 이를 볼때 공자는 인간이 지닌 능력의 차이는 선천적으로 타고니는 것이며 쉽게 바뀌지 않는 것으로 보았음을 알 수 있다. 인간은 만물 중에 가장 뛰어난 존재이며 누구나 다 성인이 될 수 있다고 한 언급과 비교해 볼 때, 이러한 공자의 언급은 다소 경직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선천적 능력의 차이를 인정한 공자의 구별은 무조건적인 평둥을 전제한 견해보다 오히려 현실적이며, 개인의 능력의 차이를 무시하고 평등하디눈 전제 위에서 모든 사람들에게 획일적인 기준을 강요하는 것보다는 합리적인 관점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결론

현실 속에서 학식과 덕행을 연마하는 군자의 인격이 있고, 자신의 이익만을 밝히는 소인이라는 최하의 인격이 있다. 유교의 교설에 따르면, 소인은 군자가 되도록 노력하고 군자는 성인을 목표로 삼아서 끊임없이 노력해야한다. 그런데 성인과 군자와 소인은 인격의 완성도에 의한 충차에 그치지 않고 고정 적인 계급의 성격울 지닌다. 성인은 왕이 되어 만백성을 다스리고 군자는 왕은 아니지만 피지배충인 소인을 부리는 지배층에 속한다.

[236] 공자에 의하면 백성들이란 부려서 따르게 할 수는 있지만, 알게 할 수는 없는 존재이다. 그래서 군자가 도를 배우면 사람들을 아끼고 사랑해주지만, 소인이 도를 배우면 부리기 쉬운 정도에 그치며, 또 군자로서 인자하지 못한한 사람은 있을지언정 소인으로서 인자한 자는 있지 않다는 편견을 내비치기도 한다

군자이므로 지배층을 형성한다는 것은 단순히 세습된 지위얘 따라 지배층과 피지배층을 나눈 것은 아니지만, 도덕적 경지의 차이를 계급적 차이로 연결짓는 것은 고대에 태어난 공자의 한계라 볼 수 있다. 극악무도한 한 난세에 처해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는 구도의 열망을 피력하면서, 仁을 표방하던 공자도 소인에 대해서는 계급적 한계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237] 유가사상이 성인과 군자를 중심으로 하는 식자층 혹은 지배층을 위한 사상이거 나 이데을로기로써 기능했다는 비판은 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공자가 지배계급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다든지 계급간의 착취를 위한 것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그 근본적인 문제의식을 오해하는 것이다. 이런 계급 상의 제한은 사상의 결함이라기보다는 당시의 시대적 한계로 이해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시대적 한계 를 감안하고 본다면, 유교는 오히려 권력을 잡고있던 당시의 지배층과 식자층을 향해서 그들이 원하던 부국강병 도를 말하지 않고, 사랑과 의로움의 덕을 강조한 것은 일반 백성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으며 이런 점에서 계급을 초월하는 보편성을 지니고 있음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공자의 도가 당시 제후들에게 환영받지 못하고 이상적이라는 평가롤 받았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238] 내성외왕의 도를 공부하고 실천하는 주체로서의 인간상은 군자라고 할 수 있으며, 이것이 우리나라에서는 ‘선비’라는 꿋꿋하고 성실한 유학자의 상으로 전개되었다. 유교의 기본정신은 사랍의 생명을 소중히 여길 뽑만 아니라, 모든 살아있는 생명체에게 인의의 덕을 베풀어 대동 사회를 달성하고자 하는 것이다.

군자와 소인사이에 실제로 폰재했던 계급적 차벌과 한계롤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도 해결되어야 할 숙제로 남아있다. 이런 점에서 유교는 성인과 군자롤 충심으로 한 인간판속에서 여러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고 활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문제점은 여러 해석과 이론을 낳는 쟁점이 됨으로써 내부척으로는 유교가 내재적 동력으로 작용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유교가 천년간 중국사회를 지배하는 도그마적 이데을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유교가 경직되지 않고 생동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