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모 정치 TMI

1. 대한국의 외교정책은 전통적으로 사대교린(상국에게 사대하고, 주변의 제후국들과 신의를 지킨다) 이였으나, 아편전쟁이후 중화문명의 근간이 흔들리며 제국주의 시대로 접어들게 되었다. 아편전쟁과 난징 조약의 체결은 대한국의 지식인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으며, 대한국으로 하여금 대아시아주의를 제창하게 되었다. 이러한 움직임은 정한론과 제국주의적 준비를 치밀하게 진행하고 있던 일본에게 좋은 침략의 명분을 주기에 충분하였다.

2.특히 대한국의 여러 봉건정 병폐 (신분제와 화폐경제의 미비, 적서차별, 경제적 불평등과 무거운 세금) 등은 출세길이 사실상 막힌 중인들을 변혁세력으로 등장하게 만들었다. 이들은 친일에 앞장선 세력이었으며, 이들은 아시아주의를 앞세운 일본의 앞잡이가 되어 1910년 대한국을 일본의 보호국(경술국치)으로 만드는 데에 큰 역할을 한 세력이 되었다.

3. 미군정 이후 대한국은 아시아주의를 버리고 글로벌 스탠다드를 앞세운 미국의 세력권으로 편입되었으며, 정치는 빠르게 서구 정치를 받아들이기 시작하였다. 특히 군부와 중추원을 앞세운 조정 대신들에 반대한 민주화 운동은 계속되었으며, 6월 혁명으로 인해 전제 왕정이 무너지고 과도 민주 정부가 수립되었다. 그러나 과도민주정부는 지나친 서구 정치의 개입과 기존 황실에서 명맥을 유지하던 사실상의 상원으로 기능한 중추원과의 분쟁, 국민적 합의의 실패 등으로 큰 사회적 혼란을 겪었으며, 그 절정을 찍던 2018년, 박근혜 수상의 국정농단이 발단이 되어 무너지고, 결국 2025년 수립 예정이었던 완전 민주정부를 앞당겨 개헌하기로 결정하였으며, 2020년 4월, 새 헌법이 통과되었다.

4. 새 헌법은 기존의 중추원과 국회의 관계를 명확히 규정하였으며, 화해사회와 대동사회같은 아시아적 가치를 명시함은 물론, 민주적 질서와 사회적 합의를 중시하는 민주주의 제도를 만들고 이를 조화민주주의 제도라고 명시하였다. 중추원은 “붕당제”를 성문화하여 사회적 합의와 의견을 모으는 장소가 되어 국회를 보조하며, 국회는 서구의 “정당제”를 채택하여 국민들의 실질적 주권 기관으로서 영향을 끼치는 정치가 성립되었다. 권리 장전 역시도 임시정부의 삼균주의같은 고유 사상은 물론, 서구의 기본 권리장전등을 통해 사회적 자유와 정치적 자유를 포괄하였다.

5. 국명 역시 전통적 작명법을 따라 “한”으로 명명하여 대한국이 되었다. 제국이냐 민국이냐 같은 “주권자가 누구인가” 라는 서구적 개념에 근거한 불필요한 논쟁을 피하기 위함이고, “주권”이란 개념은 없으며 대한국이라는 하나의 정치체제가 있다는 선포에 가까운 국명이었다. 이와같이 대한국의 정치는 글로벌 스탠다드에 이끌리지 않으면서도, 고유의 가치와 민주성을 갗춘 체제를 지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