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남중국해에서 공세적 중국의 실패- 세밀한 계획 부재와 잘못된 상황 판단.
글의 전제
- 남중국해 갈등은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안보와 질서에 관한 논의에서 가장 중심적인 사안이다.
- 각 행위자들이 국가 이익을 상정하고 이를 대전략(grand strategy)과 치밀한 세부 전술을 통해 실현한다고 보는 가정이다. 특히 중국은 지정학적∙지경학적 이익, 국내 정치적 사정까지 반영해 ‘남중국해 대전략’을 세우고 그 전략 아래 주도면밀하게 이익을 확장하고 있는 나라일 것으로 전제된다
중국은 어떻게 실패했는가?
해당 논문에서는 자세하게 나오지는 않았음. 그러나 어느정도 실루엣은 제시되어 있음.
남중국해에서 벌이는 중국의 공세적 대응은 미국이 남중국해를 놓고 중국과 전략적 경쟁을 벌이는 상황을 촉발했고 결국 중국은 동남아 국가들에 적당히 경고하는 선에서 문제를 조용히 끌고 갈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 중국의 전략적 실패라고 주장함.
중국은 왜 실패했는가?
중국의 남중국해 정책 실패는 안이한 상황 판단, 세밀한 전략 부재에서 비롯되었다.
- 첫 번째, 중국은 2009년 유엔대륙붕한계위원회에서 동남아 국가들이 취한 행동에 당황해 느닷없이 ‘과도한’ 군사력을 동원, 이들 나라를 압박했다. 치밀한 장기 계획 없이 밀어붙인 것이다.
- 두 번째, 이런 대응은 미국의 ‘아시아 피봇(Pivot to Asia)’ 정책의 성격을 군사적 관여로 전환하는 데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결과적으로 중국이 매우 꺼려했던 미국의 군사적 개입 강화와 남중국해 문제의 ‘국제화’라는 결과가 초래됐다.
- 마지막으로 9단선(nine dash line) 문제를 국제중재재판소로 가져간 필리핀에게도 역시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 재판 결과로 인해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중국의 기존 입장
최근까지 중국은 군사적 행동과 강력한 자기주장을 비교적 자제해 왔다. 중국은 오랫동안 장기적 관점에서 남중국해 문제에 접근했다. 외교부에서 공개된 발언에 따르면 중국은 “양국 우호 관계의 관점에서 잠시 이 문제는 접어두고 공동 개발의 접근을 택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은 2002년 동남아 국가들과 남중국해 영토 문제를 대화를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하고 무력사용을 자제한다는 ‘남중국해에서의 당사국 행동선언(Declaration on the Conduct of Parties in the South China Sea, DOC)’도 체결한 바 있다
- 이와 관련된 중국의 입장은 다음과 같은 웹사이트에서 찾을 수 있다. https://www.fmprc.gov.cn/mfa_eng/ziliao_665539/3602_665543/3604_665547/t18023.shtml
중국의 입장 변화와 그 이유
2009년 이후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보인 행동은 1차로 외교정책의 방향 전환이라는 큰 틀에서 이해돼야 한다. 이 시기를 전후로 중국의 외교정책은 자기주장을 강하게 드러내는 방향으로 전환한다. 다소 복잡한 두 개의 흐름, 즉 중국의 부상과 미국의 상대적 쇠퇴가 중첩되며 발생한 상황이 이런 전환의 큰 배경이 된다.
또한 2008년 이후 미국의 상대적 쇠퇴는 매우 중요한데, 이는 중국으로 하여금 자신의 힘에 대한 착시현상을 일으키게 했다. 그리고 이런 착시현상은 갑작스럽게 중국이 공세적인 대외 정책과 주변부 정책을 추진하는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한다.
미국이 중동지역에 많은 자원과 시간을 투입하는 사이 중국은 아시아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확장했다. 미국의 힘에 대한 의심이 증대되고, 상대적으로 중국이 경제적으로 그리고 군사적으로 성장하는 두 가지 현상이 맞물리면서 자신의 힘에 대한 중국의 과신이 나타났다. 결국 이는 미국을 누르고 아태지역에서 헤게모니를 빨리 성취하려는 중국의 공세적 대외 정책을 가져왔다.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목적을 달성하여서 얻는 것.
남중국해의 지배와 통제는 지정학적으로 중국에게 두 가지 의미가 있다.
- 우선 남중국해는 거의 유일하게 중국에게 허락된 해양 출구이다. 중국은 경제성장으로 강해진 국력을 바탕으로 대륙 세력(land power)에서 확장하여 해양 세력(sea power)까지 추구하고 있다. 의도대로 된다면 중국은 대륙 세력인 동시에 해양 세력인 최초의 강대국이 될 수도 있다.
- 두 번째, 중국은 안보를 위해 남중국해에서 자율적 공간을 확보하려 한다. 군사력, 특히 해군력이 약했던 시기 중국은 남중국해를 통제할 수 있는 적절한 수단이 없었다. 반면 미국은 남중국해는 물론 전 세계 바다를 연결해 미국의 전략적 해양 수송로(Sea Lane of Communication, SLOC)를 만들고 이를 통해 전 세계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해왔다.
중국은 이에 미국의 군사적 행동을 해안에서 최대한 멀리 밀어내고 전략적 공간을 확장하려 해 왔다. 미국의 공해전(Air-Sea Battle) 전략이 등장한 배경도 중국의 반접근-지역거부(Anti-Access, Area-Denial: A2AD)전략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지경학적 측면에서도 남중국해에 걸린 중국의 이익은 크다.
- 빠르게 성장하는 경제에 필요한 에너지 자원을 중국은 상당 부분 수입에 의존한다. 이는 향후 심각한 에너지 안보 불안 요소가 될 수 있다.
- 어업 문제도 있다. 중국 남부를 포함, 남중국해를 둘러싼 해안에는 약 2억 7천만 명이 살며 이들의 상당수가 생계를 어업에 의존한다. 저소득층에게 어업은 주 소득원이자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이다.
- 지경학적 이익에는 전략적 이익도 포함된다. 남중국해를 장악하거나 통제함으로써 주변국, 나아가 글로벌 경제에 중국은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남중국해는 연간 5조3천억 달러에 달하는 물동량이 통과하는 세계 무역의 가장 중요한 항로 중 하나다.
- 유사시에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에너지 자원과 상품이 자유롭게 이동하는 것을 통제할 수 있으며 이는 주변국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무기로 활용될 수도 있다.
중국이 태세전환을 하면서 잃은 것
중국이 자기 주장을 강화하는 데 따르는 손실은 즉각적이고 직접적으로 발생한다.
2009년 이후 중국이 남중국해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자 글로벌 차원에서는 중국의 부상에 대한 불안감이 높아졌다. 중국의 미래 의도가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이 커지는 가운데 등장한 강한 자기주장, 군사적 행동은 글로벌 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이 되겠다는 중국 스스로의 약속에 배치되고 중국의 이미지에도 부정적으로 작용했다.
중국의 강한 자기주장, 군사적 행동은 영토 분쟁 당사국인 아세안 몇몇 나라를 비롯해 주변국의 안보 불안도 가중시킨다. 1990년대 이래 가장 가까운 이웃이면서 천안문 사태와 같이 중국이 국제적인 비난에 직면했을 때 편을 들어 준 아세안 국가들과 중국의 거리를 멀어지게 만든다. 중국은 아세안 국가들의 지지와 신뢰를 얻기 위해 1990년대 이래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시진핑이 2014년 CICA회의 연설에서 간접적으로 비판한 미국의 아시아 개입에 오히려 정당성을 제공한다. 중국은 미국의 아시아 개입, 특히 피봇 정책을 비판해 왔다. 그러나 중국이 남중국해 주장을 강화하고 군사력을 늘릴수록 지역 국가들의 불안감은 높아지고 강력한 지역 균형자를 원하는 역설이 발생한다. 필리핀, 베트남과 미국의 깊어지는 군사협력, 미국 피봇 정책에 대한 동남아 국가들의 우호적 태도 등은 중국의 위협에 대한 동남아 국가들의 자구책이다.
중국의 구체적인 실패들
중국해에서 펼친 중국의 군사적 행동은 잘 짜인 계획에 따른 일련의 계산된 행동이라고 보기 힘들다. 중국에게 큰 목표는 있었지만 이를 실현하는 구체적 전략은 없었다. 중국은 남중국해 상황이 변하면 임기응변식으로 대응해 왔다. 이런 대응은 효과적이지도 않았고 궁극적으로는 중국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았다.
(1) 중국은 남중국해에서 동남아 국가들과 벌이는 경쟁 상황에 대해서 다소 ‘안이한 태도’를 보였다. 동중국해에 대해서는 예비 정보를 제출했지만 남중국해 방면에 대해서는 전혀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두 해역에 대한 서로 다른 태도는 중국의 실수다. 또한 중국이 국제법적 문제나 전체적인 남중국해 전략에 있어 치밀한 계획이 없었고 상황 판단 역시 잘못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바로 이 장면이 이후 남중국해에서 갑작스럽게 공격적인 정책을 펴게 된 출발점이 된다.
- 우선 중국은 남중국해가 중국의 당연한 영해이므로 대륙붕 한계에 관한 논의가 불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볼 수 있다. 오랫동안 남중국해를 중국의 주권적 공간으로 선포해 온 만큼 동남아 국가들이 이를 충분히 인식하고 받아들일 것이라고 판단했을 수 있다.
- 두 번째로 중국은 동남아 국가들이 중국의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을 반박하고 국제 무대에서 강하게 문제 제기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1990년대 이래로 중국이 동남아 국가와 구축해 온 신뢰 관계, 그리고 중국이 동남아에 대해 가진 영향력을 감안할 때 동남아 국가들이 공개적으로 중국의 주장을 반박하는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이 있었다.
이런 계산을 바탕으로 중국은 남중국해 방면 대륙붕한계 정보 제출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고 추정할 수 있다. 그러나 베트남과 말레이시아가 계산과 다르게 나오자 중국은 크게 당황했다. 이는 중국이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를 장기적 관점에서 접근하던 기존의 태도를 바꾼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2) 중국은 2013년 제소부터 2016년 최종 판결까지 남중국해 문제에서 정교하고 잘 계산된 전략으로 대응하지 못했다. 국제법과 국제법의 근거인 현 국제 관계 질서와 국제사회 여론에 대한 심각한 상황 판단 오류도 드러낸다. 중국은 아세안 내 분쟁 당사국이 아닌 국가들을 규합해 중국을 지지하게 만들어 아세안을 분열시키고 아세안의 내적 단결을 약화시키는 전략을 취해 왔다.
중국의 오판은 쉽게 증명된다. 중국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입장을 지지하는 국가는 많지 않다. 중재재판 판결 이전 중국의 입장을 지지하여 중재재판이 불법적이라는 견해를 공개적으로 표명한 국가는 10여 개국에 지나지 않는다.
아직 압도적으로 많은 수의 국가들이 기존의 국제 질서와 제도에 지지를 보내고 있다. 현 질서가 자신의 국가 이익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아직은 중국의 힘이 법과 제도에 기반한 현 질서를 넘어서기에 역부족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3)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 정책은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자기주장과 군사행동을 더욱 강화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그러나 중국의 주장처럼 미국의 재균형 정책이 남중국해 문제를 더 어렵게 만들었다고 하기는 곤란하다. 오히려 중국이 동남아와 남중국해에 대해 목소리를 높인 것이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 정책의 성격을 군사적 개입으로 전환하게 만들었다는 해석이 타당하다.
중국이 동남아 국가들에게 적절히 힘을 과시해 자제시킨 뒤 정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명분 혹은 퇴로가 미국의 재균형 정책에 의해 차단된 것이다.
신뢰성의 전쟁
현재 벌어지는 미-중 대결은 신뢰성의 전쟁(War of Credibility)이란 형태를 띠고 있다. 미국과 중국 누구도 현재의 대결에서 먼저 물러설 수 없다. 중국은 의도와 다르게 미국이 남중국해 문제에 깊이 개입할 빌미를 제공해 놓고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미국 역시 피봇 정책의 연장선상에서 남중국해 문제에 군사적으로 개입했지만 얼마나 깊이 관여할 것인가라는 고민을 안고 있다. 중국을 견제하는 기회도 되지만 다른 한편으로 미국이 극구 부인하는 군사적 중국 봉쇄라는 말을 들을 수도 있다.
두 국가 모두 전쟁을 할 의사는 없지만, 그렇다고 손을 들고 물러설 여유도 없다. 먼저 발을 빼는 국가는 큰 전략적 타격을 입게 된다. 미국이 먼저 물러선다면 피봇 정책과 대 아시아 정책이 큰 상처를 입고 지역 국가들의 미국에 대한 신뢰도 큰 손상을 입게 된다.
결론
근 남중국해 상황은 중국의 대전략이나 구상에 관해 시사하는 바가 있다. 일대일로, 아시아 신안보관 등 중국이 주장하는 비전이나 구상들은 큰 틀에서는 그럴 듯하다. 관찰자들은 중국이 잘 짜놓은 ‘새로운 국제 질서’라는 각본을 상상하곤 한다. 중국이 빠르게 경제적, 군사적으로 부상했고, 여기에 제국이었던 중국의 과거가 겹쳐지면서 신비로운 중국이란 이미지가 형성돼 왔다.
하지만 이런 큰 그림이 체계적으로 수행되는 데 필요한 구체적인 이행 계획이나 전략들이 탄탄하게 뒷받침되는지에 의문을 제기할 필요가 있다. 적어도 남중국해 문제에 있어서 만큼은 이런 탄탄하고 구체적인 전략이 없었던 것이 중국이 현재 남중국해에서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된 이유로 보인다.
미-중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어떻게 두 강대국이 이 난제에서 질서 있게 퇴각(orderly retreat)할 것인가, 어떻게 체면을 유지하면서 발을 뺄 것인가, 어떻게 출구전략 (exit strategy)을 마련할 것인가, 하는 것들이다. 이런 문제들이 미-중 양국이나 미-중 대결로 인해 전략적으로 불안정한 상황에 처한 지역국가들에게 매우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