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제국] 역사 1
기원전 37년, 중국에서는 전한 원제가 재위한지 2년 북부여 고모수 황제의 직계손이자 북부여 제7대 단제인고주몽(高朱蒙)이 고구려를 건국하였다. 왕성은 횡성 고씨(橫城 高氏)이며 방계 황족으로는 고성(高姓) 강씨(姜氏)와 고성(高姓) 한씨(韓氏)가 존재한다. 중원에서는 춘추전국시대를 거쳐 진한 시대 이후로는 성과 씨의 개념이 합쳐지게 되었지만 한반도에서는 지금까지도 성(姓)과 씨(氏)의 구분이 분명하다
건국 초기에는 졸본성, 국내성 인근의 험준한 산악지형에 자리를 잡은 탓에 생산력이 부족해 약탈경제로 발전했다 여겨지며 건국 직후부터 일대의 국가를 잇달아 정복하는 등 상당히 호전적인 모습을 보인다.
4세기 초, 미천태왕에 이르러서는 팔왕의 난으로 대표되는 중국 서진의 혼란에 편승해 낙랑군과 대방군을마저 일소하였다.
5세기 초, 탁발부 선비가 강성해진 틈을 타 요동에서 모용부 선비 세력을 축출하였고 남쪽에서는 위례성을함락시키고 백제를 멸망시켜 부여씨 왕가를 백작가로 편입시켰다. 이후 수나라와 당나라가 개입하기 전까지이백년 가량 요동을 독점적으로, 부여 일대를 대부분 점유한다.
후기에는 평양성으로 천도하며 한반도 북부를 중심으로 한 국가로 변모되었다. 신라가 전성기를 맞으며 전성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영토는 축소되었지만 그럼에도 2개국 중 가장 큰 나라 라는 지위는 잃지는 않았다
이러한 고구려의 성장에 자극받은 물길이 힘을 모아 고구려를 견제하나 6세기 중반에 이르러 고구려에 의해오히려 말갈 7부로 분할되고 전성기 전, 후 요서 일대의 거란족이나 만주 일대의 거란족을 통제했으며 고구려의 명장 을지문덕 장군, 고성(高姓) 강씨(姜氏) 가문 출신인 강이식 장군, 안시성주 양만춘 장군이 중국왕조의 침공에 존망을 건 전쟁을 치르는 등 인지도가 올라갔다
역사 2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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