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측면에서, 그리고 어떤 관점에서 이야기를 하던 간에, 문화대혁명과 관련해 이야기할 수 있는 가장 분명한 사실 가운데 하나는 바로 그것이 철저한 ‘실패’로 귀결됐으며, 그로 인해 혁명에 대한 거대한 ‘환멸’을 낳았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진술이 문화대혁명에 대한 역사적 평가의 과제가 간단명료하게 성취될 수 있는 과제임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문화대혁명은 여전히 그것의 마지막 숨통을 조이며 등장했던 몽롱시의 시구들만큼이나 모호하고 난해하다. 더구나 그 운동이 궁극적으로 지향했던 목표와 관련지어 생각해 볼 때, 그것의 ‘실패’와 ‘환멸’로 인해 누가 열매를 얻었고(혹은 현재 그 열매를 누리고 있고), 누가(그리고 무엇이) 좌절했는지는 그야말로 모호하며, 때문에 당혹스럽기 그지없다.이와 관련하여 볼 때, 1956년 흐루시쵸프가 소련 공산당 20차 당대회에서 행한 비밀보고 내용이 알려지면서 스탈린에 대한 비판이 격화되던 당시 모택동의 반응 중에는 자못 인상적인 부분이 있다. 그것은 스탈린의 문제를 스탈린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스탈린의 ‘시대’의 역사적인 문제로 바라볼 것을 주문하고 있는 대목이다. 이러한 발언의 배경에 어떠한 정치적 판단이 깔려 있었든지 간에, 이 관점 자체는 적절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사실 그 수많은 역사적 문제들을 스탈린 개인의 문제로 몰아 비판하는 것은 정치적으로야 수지가 맞는 속편한 처리방식일지 모르지만, 그러한 태도는 어떤 의미에서건 역사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는 거리가 먼 것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관점의 문제는 문화대혁명 50주년을 맞은 오늘날, 문화대혁명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기술을 위해 다시 한 번 되새겨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문화대혁명의 수많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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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정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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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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