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의 정부 및 정치 형태에 관한 고찰

정치
회원투고
작성자
가브리엘 안
작성일
2021-04-22 02:21
조회
4569

UVS 학회 논설문 신청

제목

멕시코의 정부 및 정치 형태에 관한 고찰

논설문의 주제

멕시코의 역사적 정치 변천 분석과 비교정치학에서 다루는 보편적 6가지 준거에 따른 정치적 고찰

논설문을 왜 쓰려고 하는지

멕시코의 정부 형태는 ‘결함 있는 민주주의’를 대표하는 정부 형태로서, 비교정치학적으로 다루어봄이 유의미하다 판단하여 본고를 작성하게 됨

참고할만한 논문, 자료, 키워드등 서술

비교정치학, 멕시코 정부론, 국제정치

내용 요약 (1000자 이내)

주권, 권위와 권력 (Sovereignty, Authority, and Power/정치적, 경제적 변화(Political and Economical Change)/시민, 사회, 국가(Citizens, Society, and the State)/정치기관 (Political Institutions)/정부 기구(Government Institution)/정책과 문제들(Policies and Issues) 과 같은 6가지 비교 준겅 따라 멕시코의 정치를 역사적 방면에서 고찰하고 평론하였음.


I. 서론
 1900년대 말 멕시코는 여러 개발도상국 국가들의 모범국으로써 평가되어왔다. GNP의 급격한 성장은 정치적으로는 권위주의 정부에서 민주주의 정부로 변화하며 “멕시코의 기적(Mexican Miracle)”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그러나 1980년대 초 국제 원유 가격의 하락으로 멕시코의 경제는 급격히 낮아졌다. 1990년대 중반에는 민족적 갈등이 일어나기도 했다. 정치적으로는 유력한 대통령 후보가 사살되기도 하고, 뇌물 수수가 판쳤으며 마약의 공급 또한 급증했다. 그러나 정권이 교체되면서 경제적 생활력은 회복되었고 2000년대의 멕시코는 투명하고 경쟁적인 대선이 이루어지고 있다. 현재 멕시코는 BRIC 국가 중 하나로 국제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다하고 있다. 이러한 발전에도 불구하고 멕시코는 흔히 신흥공업국(Newly industrialing countries)으로 분류된다. 경제 지표는 비교적 높은 수준을 보이고 있으나 정치적으로는 민주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과도기적 민주주의로 평가된다.

II. 여섯가지 준거에 따른 멕시코의 정부 및 정치 형태 분석
 1. 주권, 권위와 권력 (Sovereignty, Authority, and Power)
  가. 역사적 특징과 정당성 (Historical Traditions Legitimacy)
 16세기 초부터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현재의 멕시코 지역은 스페인 왕실에서 임명한 통치자가 다스렸다. 1810년 혁명 (Revolution of 1810)에 힘입어 1821년 독립 후에도 식민지 통치의 성격을 이어받은 군부독재는 20세기 초중반까지 지속되었다. 1910년 혁명으로 정부가 정당성을 취득하고, 1929년 제도혁명당 (PRI/Institutional Revolutionary Party)의 형성으로 헌법과 삼권분립이 자리잡았음에도 멕시코에서 권위주의 정부의 독재는 최근까지 자리잡았었다. 1988년 정전을 빌미로 부정선거를 저지르면서까지 일당체제를 유지했던 제도혁명당은 2000년에 이르러서야 대권을 야당에 넘겨주었고, 2006년에는 다수당의 지위까지 내려놓았다.
 오랜 식민지 통치와 그 후에도 이어진 군부독재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멕시코 정치사는 그 유산으로 권위주의적이고 (Authoritarianism), 포퓰리즘적이고 (Populism), 엘리트중심적이며 (Power plays/divisions within the elite) 불안정한 (Instability and legitimacy issues) 성격을 가진다.
 *정치 문화
   1) 종교의 중요성 (The importance of religion) – 1920년대까지 기독교회는 적극적으로 정치에 개입했고, 혁명을 통해 직접적인 영향력은 줄었지만 인구의 대부분이 기독교 신자이기에 대중에 대한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다.
   2) 후견주의 (Patron-clientelism) – 오랜 군부독재로 인해 친정부세력과 정부가 서로의 이익을 챙겨주는 정치적 내트워크 (Camarillas)가 발달했고, 곧 부패로 이어진다.
   3) 경제적 의존성 (Economic dependency) – 식민지 지배 시절에는 스페인, 최근에는 미국이라는 경제적 강국의 그늘에 항상 가려졌다.

  나. 지리적 영향 Geographic Influence
 멕시코의 풍부한 천연자원은 국부를 증대시켜줬지만 그 부는 극히 일부에게 집중되었다. 또한 미국과 맞닿은 2000마일가량의 긴 국경때문에 미국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언제나 분쟁이 생긴다. 수많은 산맥과 사막들로 인해 교통 통신이 발달하지 않았을 때엔 멕시코 내부에서도 지역과 지역 간의 교류가 원활하지 못했고, 이는 장차 지역주의의 발판이 되었다.
 2. 정치적, 경제적 변화(Political and Economical Change)

 19세기 스페인으로부터 독립 후 등장한 수많은 군부독재자와 선동정치가들로 인해 멕시코 정치는 오랜 기간 제자리를 잡지 못했다. 1910년까지 힘의 논리가 지배적이고 유혈사태가 빈번했던 혼란스러운 상황은, 이후 강력하고, 권위주의적이며 중앙집권적인 정부와 정당의 등장으로 안정화되었다.
   1) 식민지 지배 시기 (Colonialism)
 스페인은 멕시코에 자리잡아 문화적 이질 (Cultural heterogeneity), 가톨릭주의 (Catholicism), 경제적 의존성 (Economic dependency)을 정착시켰다. 먼저 스페인인들은 아즈텍 문명을 효과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아즈텍의 수도를 점령하고, 스페인 출생자를 피라미드이 꼭대기에, 원주민을 하단에 위치시킨 계층구조를 구축했다.
 대륙에 발을 내딘 후 멕시코시티 주위에 정착한 대부분의 스페인인들과 달리, 사제들은 멕시코 전역으로 카톨릭을 전파하고자 했다. 전도사들은 방방곡곡에서 인구가 많은 곳에는 포교구를 세워 전도했고, 현재 대부분의 멕시코인들은 기독교이다.
 식민지였던 멕시코는 당연히 경제를 절대적으로 스페인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지만, 스페인인들은 멕시코에 묻혀있었던 방대한 자원을 가늠하지는 못했다.
   2) 독립, 새 국가 수립 (Independence/New Country, 1810-1911)
 19세기 초 라틴아메리카 전역에서 나타난 혁명의 물결 (Revolutionary wave) 시기에, 멕시코는 스페인 태생의 미구엘 히달고 신부의 주도하에 1810년에 혁명을 일으켰고, 1821년에 비로소 독립을 하게 된다.
이 시기의 특징은 다음 네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불안정성 (Instability and legitimacy issues) – 스페인이 피라미드의 상위 계층과 함께 멕시코를 떠난 뒤 정부를 재정립하는 데 많은 혼란이 잇따랐다. 1833년부터 1855년까지 총 36명의 대통령이 있었을 정도로 멕시코 정부는 확실히 자리잡지 못했다.
-군사정권 (Rise of the military) – 멕시코 대통령이자 군 장군이었던 산타 아나 (Santa Anna)가 대표적이다.
-미국의 영향력 (Domination by United States) – 스페인이 빠지고 빈 땅을 미국이 재빨리 차지했다. 1855년에 멕시코는 영토의 절반 가까이 잃었고, 현재는 미국의 텍사스, 뉴 멕시코, 에리조나, 캘리포니아, 유타, 그리고 콜로라도주가 되었다.
-진보와 보수의 갈등 (Liberal vs. conservative struggle) – 1810년 혁명을 기점으로 민주주의를 자리잡고자 하는 세력과 기존의 군부 독재 세력과 충돌했다. 대표적인 진보주의 대통령이자 멕시코 민족의 영웅으로 추앙받는 베니토 후아레스 (Benito Juarez)는 막시밀리안 (Maximilian) 등 보수세력을 앞세운 프랑스, 스페인, 영국의 멕시코 통치 (1864-1867)에서 해방시켰지만 평화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3) 포르피리아토 시기 (The “Porfiriato”, 1876-1911)
 후아레스의 장군이었던 포르피리오 디아즈는 1876년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재임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며 멕시코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 하지만 약속을 어기며 포르피리오는 ‘과학자’ (cientificos)로 불리는 젊은 지식인층들을 앞세워 34년 간 대권을 차지했고, 이 시기에 ‘과학자’ 세력의 주도 하에 과학과 경제 부분에서 비약적 성장을 이룩한다.
이 시기는 다음의 대표된다
-안정성과 권위주의 (Stability and Authoritarianism) – 포르피리오 디아즈 대통령의 막강한 권력과 독재는 멕시코 내 잠시의 평화를 가져다주었지만 극소수의 엘리트만 정치적 영향력을 가질 수 있었다.
-해외 투자와 경제 성장 (Foreign investment and economic growth) – ‘과학자’들은 해외 사업가들의 멕시코를 향
-빈부 격차 심화 (Growing gap between the rich and the poor) – 개발도상국에서 흔히 나타나는 특징으로 급격하게 부가 축적되며 분배가 평등하지 않게 일어났다.
   4) 1910-현재
-20세기 초의 혼돈 (The Chaos of the Early 20th century) – 포르피리오 디아즈 대통령이 1910년 대선을 막으려 하자 지식인층에서 거센 반발이 일어났고, 결국 1910년 혁명을 통해 대통령직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이 시기에 멕시코에 가장 큰 정치적 특징인 후견주의가 발달했다. 디아즈 대통령을 몰아는 과정에서 카우딜로 (Caudillo)라고 부르는, 각 분야의 권위자들이 정치인들에 반발하며 권력을 얻기 시작하였다. 에밀리아노 자파타 (Emiliano Zapata)나 판초 비야 (Pancho Villa) 같은 지도자들은 그들의 힘을 얻어 더 효과적으로 정국을 꾸려내려 했고, 서로의 이익을 위해주는 후견주의가 탄생했다.
 또한 1910년 혁명으로 헌법이 완전히 자리잡았지만 민주주의는 자리를 잡지 못했다. 정권 인사들의 암살이 계속해서 일어났고 인민의 권리 또한 완전히 자리잡지 못했다. 정권을 차지한 진보주의자들은, 이전까지 큰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기독교회를 보수주의의 상징으로 보고 사제들의 투표권을 제한하는 법률 제정을 추진하였다. 이에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전국에서 반란을 일으켰고, 수천명의 시민이 죽은 멕시코 역사상 최악의 유혈 사태인 크리스테로 반란 (Cristero Rebellion)이 일어났다.
 십수년의 혼란을 지나, 플루타르코 카예스 대통령 (Plutarco Calles)는 전국의, 그리고 각 분야의 카우딜로들을 모아 제도혁명당 (PRI, Institutional Revolutionary Party)를 설립했고, 대통령의 임기를 6년으로 제한하는 등 민주적인 것모습을 가졌지만 실질적으로는 국가 주요직을 모두 제도혁명당에서 차지하여 대통령이 누구인지가 중요하지 않게 되었고 제도혁명당의 오랜 독재가 시작되었다.
 *카데나스 혁명 (The Cardenas Upheaval) – 대통령이었던 라자로 카데나스 (Lazaro Cardenas)는 1910년  혁명의 정신을 잃지 말고 이상을 실현시키라는 국민들의 요구에 응답하여 토지재분배, 산업 국유화, 공공 사업에 대한 투자 확대, 농민 조합 및 단체 조직 격려, 대통령 권한 집중 등을 이룩했다.
카데나스의 국가주도적 발전은 ISI (Import substitution industrialization) 이라고 불리고, 현재까지도 국가조합주의 (State corporatism)의 가장 대표적인 예시이다.
 *테크니코 세력의 등장과 진자론
카데나스가 대권에서 물러난지 6년 후, 미겔 알레만 (Miguel Aleman)이 진자론 (Pendulum Theory)를 주장하며 대통령이 되었다. 그는 카데나스의 사회주의적인 개혁을 부정하고 경제적 민주화를 주장하며, 해외 투자와 사업 유치를 적극 장려하는 정책을 펼쳤다. 알레만은 카데나스와 자신의 정책이 진자의 양 끝을 나타낸다고 했고, 1970년대에 멕시코가 진자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했다고 주장했다. 이 시기에 테크니코 (Tecnicos)fk고 불리는 부를 기반으로 한 신진 세력이 제도혁명당 측에서 등장하여 시장경제의 활성화를 추진했다.
1980년대, 멕시코는 신자유주의 (neoliberalism) 정책을 펼쳐 자유 시장 활성화, 국가 예산 축소, 사유화, 자유 거래 보장, 국가 개입 최소화 등을 추진했다. 1950년대에 이르러 멕시코는 투자자들에게 인기 있는 시장이 되었고, 풍부한 석유와 천연가스를 바탕으로 국민총생산 (GNP)에서 눈부신 성장을 보였으며 이를 멕시코의 기적 (Mexican Miracle)이라고 한다. 하지만 1980년대 초 석유파동으로 국제유가가 급락하며 페소의 가치도 함께 곤두박칠쳤다. 이를 계기로 제도혁명당 내에서도 보수적이고 정치적인 세력인 폴리티고 (Politico)와 테크니코 사이의 격차는 커졌다.
 3. 시민, 사회, 국가(Citizens, Society, and the State)
  가. 분열(Cleavages)
 분열의 경향은 종종 다분화된(crosscutting)경향을 띄었으나, 최근 몇 년간 북부의 도시화된 중상계층의 메스티조(Mestizos)와 남부의 가난한 농촌지역의 아메리카 인디언(Amerindians) 와 같이 한쪽으로 편향된(coincided) 경향을 띈다.
첫 번째로 도시와 농촌의 대립이다. 멕시코의 정치체제는 20세기에 자리 잡았다. 당시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농촌에 거주했다. 제도혁명당(PRI)과 후견주의(patron-client system)은 문맹 소작농에게 약간의 이익을 제공해주는 대가로 정치적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오늘날은 75% 이상이 도시에 거주하고,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사람의 비율(literacy rate)는 90%에 육박한다. 결과적으로, 도시의 유권자들은, 제도혁명당(PRI)보단 정치적/경제적 개혁(political/economical reform)을 원한다.
 두 번째로, 사회 계급간의 대립이다. 멕시코의 지니 계수는 0.47인데, 이는 경제적 불평등이 심함을 의미한다. 실제로, 소득 상위 10% 계층이 전체 소득의 37.5%를 가져간다. 이러한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될수록 저소득층의 유아사망률이 상승하고, 교육수준이 하락해 교육 격차가 벌어지며, 기대수명이 감소하는 등의 악영향을 낳는다. 최근엔 경제적 빈곤층이 비공식경제(informal economy)와 신산업(new industries)를 통해 경제적 형편이 나아지고 있다. 경제적 중상위계층은 제도혁명당(PRI)이나 후견주의(patron-client system)보다는 국민행동당(PAN)정당을 지지한다.
 세 번째로, 메스티조(Mestizos)와 아메리칸 인디언(Amerindian)의 민족 간의 대립이다. 메스티조(Mestizos)는 유럽인과 아메리칸 인디언(Amerindian)의 피가 섞인 민족을 의미하는데, 상대적으로 아메리칸 인디언(Amerindians)이 메스티조(Mestizos)에 비해 가난하기 때문에, 둘의 분열이 심화되고 있다.
네 번째로, 북부와 남부의 대립이다. 북부는 건조하고 산맥이 많지만, 인구가 많고 미국과의 교류가 활발해 부유하기에, 교육 수준이 높고, 시장경제를 선호한다. 그에 비해 남부는 아열대 기후이고, 미국의 영향을 덜 받아 가난하다. 북부의 경우, 평균 교육기간이 8.1년이지만, 남부는 6년에 불과하는 등의 교육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대부분의 남부 거주민들은 제도혁명당(PRI)을 지지한다.
 현대의 추세는, 최빈곤층의 경제적 성장으로 부의 재분배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실제로, 지니 계수가 0.53에서 0.47로 감소하는 성과가 나오고 있다. 이러한 추세는 계층간 정치적 지지 행위의 변화와 지역간 인종적 다양성 증가를 가져올 것이다.

  나. 정치 참여(Political Participation)
 멕시코는 전통적인 후견주의(patron-client system) 정부였다. 후견주의(Patron-client system)에서 정부가 이익집단보다 우위에 있었는데, 이는 어느 이익 집단에게 특혜를 줄 지 말지를 정부가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시민들 중 일부만 정치 참여가 가능했고, 최근에야 시민들의 선거, 캠페인, 로비와 같은 대중들의 정치 참여가 이루어졌다.

   1) 후견주의 (The patron-client system)
 후견주의(Patron-clientelism)의 뿌리는 19세기 군사독재자의 군벌주의에서 시작된다. 각기 지도자들이 까마리야(Camarilla)를 형성한다. 까마리야(Camarilla)란 공통의 정치적 이익을 가진 자들의 모임이며 통치권 내에서 서로 의 기회를 높이기 위해 상호 의존한다. 까마리야(Camarilla)간의 경쟁에서 승리하여 최고권력을 획득하게 되면 그는 모든 까마리야(Camarilla)의 리더가 되는데, 이 때 통치권 전체는 하나의 까마리야(Camarilla) 즉, 제도혁명당 까마리야 (PRI Camarilla)가 되는 것이다.

   2) 저항 (Protests)
 저항이 발생하면, 정부는 시민의 요구를 들어주었고, 시민들을 정치에 참여시켰다(Co-optation). 예컨대, 1968년 틀라텔롤코 학살(Tlatelolco Massacre)의 경우, 멕시코시티 틀라텔롤코 광장에서 학생들이 PRI의 장기 집권에 따른 부정부패를 규탄하고,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를 하자 이를 무력으로 진압했다 “1968년 멕시코 민주화시위 대학살 50주년…수도 광장에 조기”, 연합뉴스, 2018년 10월 3일
. 학생들 200명 가량이 목숨을 잃었는데, 차기 대통령이 다수의 학생 운동가를 행정부에 참여시켜 약자들에게 경제적 지원과 같은 사회 복지를 증진시켰다. 또 다른 예로써, 1994년 사파티스타 봉기(The Zapatista Uprising)를 들 수 있다. 과테말라와 국경을 접한 멕시코 남부 치아파스 주(州)는 라틴아메리카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 중 하나다. 당시 멕시코 대통령 살리나스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준비하면서 대규모 사유화 계획을 1990년에 발표했다. 공공 자산뿐 아니라 농촌 공동체들이 소유하고 있던 토지도 매각 대상이 됐다. 그것은 농민들이 수십 년 동안 싸워서 얻은 권리였는데도 말이다.
 1994년 캐나다·멕시코·미국 대통령들이 기자회견을 열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의 발효를 선언했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 발효되던 그 날,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EZLN)이 사파티스타 봉기(The Zapatista Uprising)를 통해 토착민의 생활 기반에 심각한 악영향을 끼치고, 전 세계 인민을 억압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전 세계에 알렸다. 결과적으로, 대통령 빈센트 폭스(Vincent Fox)는 사파티스타인들을 정치에 참여시켰다.

   3) 유권자의 행동 (Voter Behavior)
 1990년대 이전에는 제도혁명당(PRI)이 지역, 민족, 국가적 차원에서 선거를 통제했다. 또한, 선거율이 매우 높았는데, 이는 후견주의(patron-client system)의 정부형태를 취했기 때문이다. 투표의 영향을 주는 요소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이 중 첫번째는 지역이다. 북부의 경우에는 국민행동당(PAN)과 같은 우파정당을 선호하는데 비해, 남부의 경우 민주혁명당(PRD)이나 제도혁명당(PRI)의 좌파정당을 주로 지지한다. 두 번째는 교육/경제인데, 교육을 많이 받고 경제 수준이 높을수록 국민행동당(PAN)을 지지한다.

  다. 시민사회 (Civil Society)
 멕시코에는 항상 협동하기 거부하는 집단들이 있었다. 이러한 집단들이 모여 공공 항의 분위기를 만드는 것의 기초가 되었다. 제도혁명당(PRI)은 국가조합주의(state corporatism)의 실행을 통해 어떤 집단도 정부에 대항하지 못하게 했다. 그러나, PRI는 경영인들이 제도혁명당(PRI)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국민행동당(PAN)을 지지하면서 제도혁명당(PRI)의 국가조합주의(state corporatism)는 붕괴했다.

 4. 정치기관 (Political Institutions)

 정치적/경제적 변화가 급격하게 일어나면서 국가 체제를 분류하기가 어려워졌다. 최근 몇 년 간, 멕시코는 6년 임기의 대통령이 마치 독재자 같은 역할을 하는 권위주의정부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경제의 경우, 멕시코는 저개발되었고, 강대국에 의존적인 경향을 보인다. 정치 정당들은 더 경쟁적인 모습을 보인다. 정치적/경제적 개혁을 원하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다.

  가. 국가 체제(Regime Type)
멕시코의 국가 체제는 국가조합주의(state corporatist) 구조이다. 여기에 까마리야(Camarilla)제도를 통해 중요한 그룹의 지도자들은 정부 고위 관료로 일했다. 변화의 방향은 정치적/경제적 자유이다.
  
   1) “선진국, 신흥공업국, 개발도상국?” (“Developed,” “Developing,” or “LDC”?)
5개의 수치로 현재 경제 개발의 정도를 알 수 있는데, 첫 번째는 1인당 국내총생산 (GDP)인데, 멕시코의 화폐로 구매하는 실제 재화와 서비스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다. 2018년 기준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9,673 달러이다. 두 번째는 구매력평가(PPP)로 1년 기준 17,900달러이다. 세 번째는 인간개발지수(HDI)로,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사람의 비율(literacy rate)은 남자 96.2%, 여자 94.2%이고, 기대 수명은 남자 72.88세, 여자 78.55세이다. 네 번째는 경제 의존도이다. 멕시코는 미국에 일자리, 무역, 경영 측면에서 여전히 의존적이다. 마지막은 경제적 불평등이다. 지니계수를 통해 경제적 불평등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알 수 있다. 지니계수가 0에 가까우면 평등, 1에 가까우면 불평등한 것을 의미하는데, 멕시코의 지니계수는 0.47인데, 이는 경제적 불평등이 심하다고 할 수 있는 수치이다. 다섯 개의 수치를 종합해보았을 때, 멕시코는 “선진국”(“Developed”), “신흥공업국(“Developing”), “개발도상국”(“LDC”) 중 “신흥공업국(“developing country”)으로 분류할 수 있다.

   2) 과도기적인 민주주의 (A Transitional Democracy)
국가가 얼마나 민주적인지를 파악하기 위해서 4가지의 요소가 필요한데, 이는 정치적 책임 (political accountability), 정치 경쟁(political competition), 정치적 자유(political freedom), 정치적 평등(political equality)을 의미한다. 정기적이고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의 존재, 정당 조직의 자유로움과 후보자의 존재와 의견 전달의 자유로움, 의회와 조직과 정치적 표현의 자유로움, 시민들의 평등한 정치 참여를 통해 각 요소들이 얼마나 잘 지켜지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이 4가지 요소들을 종합해 본 결과, 멕시코는 2018년 민주주의 지수를 통해 결점이 있는 민주주의(“flawed democracy”)의 형태라고 파악되었다.

  나. 기관들간의 연결(Linkage Institutions)
 멕시코는 정치정당, 이익집단, 대중매체 모두 시민들과 정부를 결합하기 위해 일했다. 멕시코에는 진정한 독립된 시민 사회가 존재하지 않았다.

   1) 정치정당(Political Party)
 멕시코는 20세기 대부분이 일당 체제였다. 오늘날, 정당끼리의 경쟁을 통한 선거가 현실화되었다.
멕시코의 대표적인 정당에는 제도혁명당(PRI), 국민행동당(PAN), 민주혁명당(PRD)가 있다
제도혁명당(PRI, Partido Revolucionario Institucional)은 1921년부터 2000년까지 세력을 지속해온 좌파정당이다. 폭력보다는 타협을 통해 갈등을 해결하기로 한 정치적 엘리트들의 연합체로 설립되었다. PRI는 두 가지 특징이 있다. 첫 번째는 조합주의 구조(corporatist structure)이다. 이익집단이 정당과 엮여 정당의 보호를 받고, 선택된 정당의 이익집단으로써 정부에 input이 가능하다. 두 번째는 후견주의(patron-client system)으로, 시골 지역으로부터 지지를 받는다. 2000년 대통령직을 국민행동당(PAN)에게 뺏겼으나, 2012년 다시 탈환에 성공하였다.
 국민행동당(PAN, Partido Acción Nacional) 1939년에 설립된 가장 오래된 우파정당이다. 1990년대 북부 일부 주지사 선거에서 승리하였다. 경영인들의 이익을 주로 대변하고, 중앙집권주의와 반성직자주의(anti-clericism)에 반대한다. 북부에서 강한 지지층을 형성하고 있으며 지방 자치, 경제에 대한 정부 개입 축소, 깨끗하고 공정한 선거, 가톨릭과의 좋은 관계, 사교육/종교교육 지원을 슬로건으로 내세운다.
민주혁명당(PRD, Partido de la Revolución Democrática)은 제도혁명당(PRI)과 같은 좌파정당이다. 각 지도자들이 문제에 대해 나눠져서, 의견을 주고받기도 한다. 2006년 오브라도르의 대선 결과 불복으로 오브라도르를 지지하는 파와 지지하지 않는 파로 분열이 일어나기도 했다. 2006년 대선에서 오브라도르는 부정선거가 있었다고 주장하며 대선에 불복하고, 저항 정부 대통령에 취임하는 등의 문제가 있었다.

   2) 선거(Elections)
 멕시코 시민들은 대통령, 국회의원 (상원의원, 하원의원) 주지사, 지방자치단체장을 직접 선거를 통해 선출한다. 도시 지역에서 가장 경쟁적이다. PRI의 통제 하에, 선거는 일반적으로 부정선거였으며, 후견주의(patron-client system)이 이익집단과 정부간의 부정부패 (뇌물-특혜)를 장려했다. 더 도시적이고, 교육받았고, 다국적인 인구가 사는 곳일수록 공정한 선거를 원한다. 새로 만들어진 경쟁적 선거제도는 제도혁명당(PRI)의 좌파나 우파를 형성하기 위해 연립정부를 구성하게 한다.
   
    가) 멕시코 유권자 분석 (Voters Profiles of Mexico)
 제도혁명당(PRI)은 작은 마을이나 시골에 거주하는 사람들, 교육을 덜 받은 사람들, 나이 많은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이 주 지지층이다.
국민행동당(PAN)은 북쪽에 사는 중산층, 전문직/경영직 종사자, 도시 거주민, 더 나은 교육을 받은 사람들, 종교인들이 주 지지층이다.
 민주혁명당(PRD)은 젊은 사람들, 정치적으로 활동적인 사람들, 중앙 주 출신의 사람들, 약간의 교육을 받은 사람들, 작은 마을 또는 도시 출신의 사람들이 주 지지층으로, 중앙에 위치한 멕시코 시티에서 가장 강하게 지지받는 정당이다.

    나) 2009년 중간선거 (The Mid-term Election of 2009)
국민행동당(PAN)과 민주혁명당(PRD)은 상당 수의 의석을 잃은 반면, 제도혁명당(PRI)은 의석수를 거의 두배로 늘렸다. 또한 6개의 주지사 자리에서 5개 주지사 자리를 제도혁명당(PRI)에서 가져갔다.

    다) 2012년 연방선거 (The Election of 2012)
 멕시코는 경쟁적인 다당제를 전보다 더 발전시켰다.
제도혁명당(PRI)은 정치계에서 중요하지만 지배적이지는 않은 역할을 계속하고 있다.

    라) 선거시스템 (Electoral System)
 대통령선거와 같은 경우, 소선거구제를 통해 표를 더 많이 받은 쪽이 선거에서 승리하는 방식을 택한다.
의회 선거 같은 경우, 소선거구제와 비례대표제를 같이 사용하여 선거를 진행한다. 상원 의원 같은 경우, 각 주마다 3명의 상원의원과 비례대표 32명을 선출하는 방식을 택한다. 하원 의원 선거 같은 경우, 300명은 소선거구제를 통해, 200명은 비례대표제를 통해 선출한다.

  다. 언론(The Media)
 언론은 정부를 비판하거나 여론에 영향을 미칠 힘이 거의 없었다. 정부는 이들에게 특혜를 주고 기자, 작가, 언론인 등의 급여를 지원하였고, 정부를 공개적으로 비판할 수 없는 언론사는 거의 없었다. 1980년대에 들어서며 언론이 더 독립적이게 되며 언론의 역할을 확실히 하기 시작했는데, 대표적으로 “토알라게이트 스캔들” (“Toallagate” scandal)과 “요소132”(“Yo soy 132”) 운동이 있다.

 5. 정부 기구(Government Institution)

  가. 서문 
 멕시코는 연방공화국이지만 주 정부의 독립적인 힘은 강하지 않다. 역사적으로 멕시코는 강력한 대통령 권한을 바탕으로 한 행정부를 중심으로 입법부와 사법부가 행정부의 결정을 따라 거수기 노릇(rubber-stamping)을 하였다. 멕시코는 형식적으로는 민주주의를 표방하지만 전래의 나라는 권위주의적이고 조합주의적이었다. 1980년대부터 정부와 시민들은 중요한 변화를 이끌었고, 현재 민주주의와 연방주의를 찾아가고 있다. 이 과정에서 주 정부의 공적 권력이 늘어나는 점이 중요한 변화로 꼽히고 있다. 1917년 헌법(Constitution of 1917)에 따르면, 멕시코의 정치 기관들은 미국의 것을 모방하고 있다. 입법, 사법, 행정부가 각자에 대한 견제와 균형을 맞추며 각 기관의 장 (대통령, 국회의원, 주지사 등)은 시민들에 의해 직선된다. 그러나 실제로는 멕시코의 시스템은 미국과 차이를 보인다. 멕시코 헌법은 매우 길고 쉽게 개정되었으며 정부는 강력한 대통령 중심제라고 표현할 수 있다.

  나. 행정부
 2000년 대선에서 매우 놀라운 일이 발생했다. 제도혁명당(PRI) 후보가 당선되지 않았다. 대신 국민행동당과 민주혁명당의 연합 후보인 빈센테 폭스(Vincente Fox)가 43%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당선됐다. 이 선거는 예측을 빗나갔고, patron-clientelism의 막을 내리고 민주주의 국가로서 나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2006년에는 국민행동당의 펠리페 칼데론(Felipe Calderon)이 36%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당선되어 연립 내각을 꾸렸다. 2012년 제도혁명당의 페냐 니에토(Pena Nieto)가 38%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당선되었다. 페냐 니에토 행정부는 재계 인사들로 꾸려진 기술관료들과 제도혁명당 인사, 그리고 소수의 정당 밖 인사로 구성되었다.
제도혁명당이 만들어진 이후 멕시코의 정책결정은 대통령에 집중되었다. Patron-client system의 대통령은 6년간 독재자로서 행동했다. 이를 sexenio라고 부르는데, 스페인어로 ‘6년간’을 뜻하며 중임 불가한 6년 임기를 말한다. 1970년대 중반까지 멕시코 대통령들은 비판할 수 없고 국가 발전과 행복의 상징으로서 칭송 받아왔다. 대통령은 전대 행정부의 내각에서 뽑혔다. 최근의 변화를 고려하더라도 멕시코 대통령의 권한은 매우 강하게 남아있다.
 빈센트 폭스는 지지하는 이익집단 없이 정부를 꾸려나가야 했다. 그의 전임자 어네스토 제디요(Ernesto Zedillo)는 민주화의 압박 속에 전통적인 대통령 권력을 포기해야만 했다. 예를 들어 제디요는 다음 후임자를 발표하지 않았고 당에서 결정하도록 했다. 폭스는 임기 동안 의회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의 권한이 막강하다는 비판은 계속해서 받았다. 2012년 선거에서는 제도혁명당 후보가 다시 당선되었으나 의회에 다수를 차지하지 못함으로서 3당체제가 꾸려지게 되었다.

  다. 관료제
 멕시코 인구 중 약 1.5백만명이 멕시코의 연방 관료에 참여한다. 관료들은 큰 급여를 받지 않으나 중상류층의 큰 권력을 지니고 있다. 제도혁명당 하에 관료들은 patron-client system에 묶여있고 뇌물수수가 빈번했으며 내부 정부를 통해서 사적 이익을 챙기기도 했다.
제도혁명당 아래 준국가시설(para-statal sector)이 매우 많았다. 이런 기업들은 재화와 서비스를 공급하는 사설 기업이나 멕시코 정부가 이를 많이 소유하고 있었다. 가장 유명한 것은 석유를 관리하는 국영기업인 PEMEX이다. 1980년대 이후 많은 국영기업이 민영화되었고, 폭스 대통령은 PEMEX의 민영화를 시도했으나 실패하였다.

  라. 입법부
 멕시코의 입법부는 양원제이다. 500인으로 구성된 대의원(Chamber of Deputies)과 128인으로 구성된 공화국 원로원(Senate)으로 구성되어 있다. 모든 의원들은 선거를 통해 결정된다. 대의원은 3년의 임기를 갖고, 원로원은 6년의 임기를 갖는다. 대의원 선거는 300인의 지역구 의원과 200인의 비례대표 의원으로 구성된다. 원로원은 31개 주와 멕시코시티에서 3명씩 당선이 되며 나머지는 비례대표제로 선출이 된다. 미국과 비슷하다고 볼 수도 있겠으나 1980년대까지 입법부는 대통령의 엄격한 통제 아래 있었다.
 1980년대 말부터 제도혁명당의 독주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1988년 대의원 선거에서 제도혁명당이 아닌 당에서 240명의 의원이 배출되었다. 이후 대통령의 결정은 형식적으로 통과되지 않고, 거의 처음으로 의회 내에서 토론이 진행되었다. 살리나스 대통령의 개혁은 점점 느려졌고, 멕시코 정부는 처음으로 그리드락(양측의 의견이 서로 팽팽히 맞서 업무 또는 정책이 추진되지 못하는 상황)을 경험했다. 1997년에는 제도혁명당이 원로원에서 과반수 차지를 실패했다. 2000년 선거에서는 양원에서 모두 다수를 차지했으나 과반수를 차지하지 못했다. 이후 선거에서 계속해서 제도혁명당의 입지는 좁아 들어갔고 나머지 당들과 소수당의 의석 수는 증가세를 보였다.
 다당제의 발전에 따라 여성 후보자 배출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확립되었다. 2002년부터 정당은 비례대표 명부 중 30%를 의무적으로 여성으로 채워야 했고, 지역구 후보자도 그러하다. 지지율 회복을 위해 제도혁명당은 50%를 여성으로 채우겠다는 내부 규정을 만들기도 하였다. 군소정당인 ‘사회민주주의자들과 농업인’에서는 2006년 대선 때 파트리샤 머카도(Patricia Mercado)를 후보자로 배출했고, 국민행동당에서는 2012년 대선에서 호세피나 모타(Josefina Mota)를 후보자로 배출해 25%의 득표를 얻는 성과를 얻었다.
경쟁적인 다당제 체제의 구조가 발전하면서 멕시코의 의회는 더욱 더 중요한 토론 장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많은 지역에서 경쟁 구도가 발생하고 있고 ‘안정적인 자리(safe seats)’는 줄어들 고 있다. 입법부는 현재 행정부와 많은 대치를 하고 있긴 하지만 아직까지는 견제와 균형이 완전하게 이루어지고 있다고 보기에는 어렵다.

  마. 사법부
 멕시코는 독립적인 사법부나 위헌 법률 심사권이 없다. 많은 비영어권 나라들이 그렇듯 성문법을 갖고 있고, 1917년 헌법이 계속해서 이어지고는 있으나 쉽게 수정되었고 미국의 헌법만큼의 지배력을 갖고 있진 않다.
 멕시코는 연방법원과 주 법원이 있다. 그러나 주로 연방법원에서 재판이 이루어지고 주 법원은 부수적인 역할을 한다. 만약 지방분권이 더 활성화된다면 주 법원의 역할이 강화될 것으로 기대한다.
연방법원의 최고법원은 대법원이고, 위헌 법률 심사권이 있으나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역사적으로 법원은 행정부, 특히 대통령의, 입김이 매우 강했다. 멕시코에서는 주로 대통령의 임기 시작에 법관들이 임명되는데, 이는 대통령에 대한 충성심을 강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어니스트 제니요 행정부는 법과 규칙에 대한 강조를 통해 법원의 힘을 강화시키고자 했다. 시민들과 정부는 부패, 마약, 경찰 오용 등을 대항할 수 있는 대표적인 기관으로서 사용했다. 제디요는 많은 부분에서 법원의 판결에 영향을 주고자 하지 않도록 했고, 폭스는 독립성 있는 사법부를 만들려고 노력했으나 많은 사람들을 실망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사법부의 강화는 일반적인 시각인 법원이 부패했다는 점 때문에 막혔다. 멕시코 일부 지역에서는 아직까지 마약과의 전쟁을 하고 있는데, 지역의 여러 법관들은 갱의 보복에 두렵거나 응낙을 받아 올바른 판결을 하지 않는다. 칼데론의 개혁 중 일부는 이를 포함했다. 예를 들어 연방과 지방 법원은 구두로 재판을 하게 했고 검사와 변호사가 각각 입장을 대변하도록 하였다. 또한 공소 제도에 대한 변화로 다른 재판을 막거나 지연시키기 위한 공소를 하기 어렵게 했다. 2011년에는 대통령이 장기 목표로서 “멕시코의 미래는 이해할 수 없다”며 사법부 개혁을 삼기로 했다. 2013년에는 페냐 니에토 대통령이 입법부에 일반범죄에 대한 전국적으로 통일된 형사법을 통과할 수 있도록 하기도 했다.

  바. 군대
 군 간부들은 19세기와 20세기 초에 멕시코의 정치에 큰 영향을 주었다. 1910년 혁명 이후 혼란과 폭력 이후 제도혁명당이 군의 영향을 잘라내기 시작하였다. 물론 1940년대까지 멕시코의 대통령은 모두 장군 출신이었지만 군과 정치의 분리는 계속되었다. 이는 제도혁명당의 가장 큰 성과 중 하나로 평가된다. 지난 50년간 군은 잘 훈련된 전문적인 집단으로 발전해 나갔다.
 군 개혁은 플루타코 카예스(Plutarco Calles)와 라자로 카르데나스(Lazaro Cardenas)에 큰 공이 있다. 그들은 장군들의 관할 지역을 순환시키는 방법을 고안했는데, 이는 장군들의 지역적 기반을 만들지 못하게 하도록 했다. 또한 patron-client system의 일환으로 정부와 군은 경제적인 교환을 했는데 이는 군 간부들이 정치적 권력이 아닌 경제적 이익에 눈을 돌리게 하였다.
 이렇게 군에게 이익을 나눠주는 행위는 군과 마약과의 관계를 맺게 했다. 최근의 군은 마약 추적을 막는데에 일조를 했고, 마약 거물들과 군 간부들 간에 관계를 쌓게 했다. 이에 따라 2009년 칼데론은 멕시코의 새로운 시스템인 국가 범죄 정보 시스템을 꾸려 모든 사람들의 지문을 수집하였다. 연방 경찰들은 공공에 대한 권력이 커졌고 니에토 대통령은 4만명의 군인들에 대해 연방 경찰로 일하게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6. 정책과 문제들(Policies and Issues)

  가. 서문
 멕시코 정부와 정책은 1980년을 기점으로 극적으로 변하는 양상을 보였다. 정치적으로 민주 국가 틀을 확립하기 위해 진지한 시도들이 이어지고 있는가 하면 1982년 경제 붕괴와 2008년 경제 위기 이후 경제 성장의 신호들이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멕시코 정부의 정책적 시도는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어낸 것은 사실이나, 동시에 각종 문제가 발생하였다.
 멕시코는 정치적, 경제적인 지역적 취약성(regional vulnerability)을 극복하고 국제적 신뢰도(global reliability)를 찾고자 정치적 경제적 정책의 노선을 바꿨다. 그러나 이와 같은 노선 변경이 미국과의 경제적 관계에 있어 지나치게 의존적으로 변하게 되는 등의 문제를 야기했다.
 제도혁명당(PRI)이 정부와 오랜 기간 유착되어 있음에 따라 권력 분립 기관이 만들어지기 어려웠고, 중산층의 비중이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빈부격차는 극심하다. 또한, 페냐 니에토(Peña Nieto) 대통령의 마약 거래와 폭력 등에 대한 제재로 미국과의 갈등이 빚어지는 새로운 위기를 맞았다. 멕시코는 이웃 국가들과의 관계에 있어 손해를 보지 않으면서 독자성과 타국으로부터 독립성을 찾을 방향을 모색해야 하는 상황이다.

  나. 멕시코의 경제
 멕시코의 경제는 사회적 상황에 따라 크게 좌우되는 경향이 있다. 전반적으로, 2007년 경제 위기에도 불구하고 1940년도에 비해 삶의 질은 크게 개선되었다. 살인율, 문맹률, 기대 수명 모두가 개선되었다. 1940년 이후 멕시코의 경이로운 경제 성장을 ‘멕시코의 기적(The Mexican Miracle)’이라고 부른다. 1940년에서 1960년 사이 멕시코의 경제는 연간 6% 이상 상승하였다. 공업 생산도 가속화되어 1960년대 평균 9%가량 상승했다. 농업이 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5%에서 11%로 떨어진 반면, 공업 생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25%에서 34%로 증가했다. 이 모든 변화는 인플레이션 문제를 동반하지 않고 진행됐다. 그러나, 멕시코의 산업화는 곧, 농촌 인구의 감소와 도시인구의 증가로 이어졌으며 도시 문제 발생으로 이어졌다.
 멕시코의 기적이 만든 문제는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빈부격차(gap between the rich and the poor)와 성급하고 무계획적 도시화(rapid and unplanned urbanization). 먼저, 빈부격차의 문제는 재빠른 경제 성장의 대표적인 결과이다. 경제 성장 과정에서 평등과 사회적 정의 문제는 비교적 중요하게 다루어지지 않았다. 당연히 사회 복지 제도도 매우 제한되었다. 소득 불균형 문제는 심각했다. 하위 40%의 인구가 총소득의 11% 이상을 벌지 못했다. 현재 이런 빈부격차는 많이 완화되었으나 아직 멕시코에 현존하고 있는 문제다. 두 번째로, 성급하지만 무계획한 도시화 문제는 경제 성장과 항상 같이 대두되는 문제다. 최근 수백만 명이 도시로 이주함에 따라 연방 지구(Federal District), 구아 달라하라(Guadalajara) 및 각종 도시들이 도시 문제로 앓고 있다. 도시 내 많은 인구가 수도, 정기, 하수 시설이 없는 거대 판자촌에 살고 있다. 빈약한 고속도로 계획과 대형 교통체계의 부재는 세계 최악의 교통혼잡을 만들어냈다. 또, 자동차와 공장으로 인한 대기오염은 멕시코 시티의 공기를 심각하게 오염시켜 숨쉬기 매우 위험한 상태다.
 위와 같은 사회적 문제뿐 아니라 산업화를 위한 노력은 경제적 위기를 야기했다. 멕시코 정부가 유가가 영원히 높게 유지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 아래 막대한 산업화 자금을 차관해오면서 경제 문제가 시작됐다. 1970년대 초반, 멕시코의 석유 생산량은 OPEC 국가만큼 증가했다. 그러나 1982년 유가가 급락하면서 멕시코의 경제도 위태로워졌다. 1987년에 이르러서는 멕시코의 빛은 1070억 달러를 넘어섰고, 이 빛이 멕시코 GNP(국민 총생산)의 70%가량을 차지했다.
 경제적 문제들은 멕시코의 기적이 무색해질 정도로 또 다른 경제적 문제를 초래할 것이기에 멕시코는 경제 문제를 개혁해야 했다. 미겔 데 라 마드리드(Miguel de la Madrid) 대통령은 1982년에 임기를 시작했다. 그는 테크니코(tecnico) 지도자들의 가치를 반영하는 대대적인 개혁 프로젝트를 실시했고, 이런 노력은 살리나스 데 고 타리(Salinas de Gortari) 대통령과 세디요(Zedillo) 대통령의 임기 동안 이어졌다. 이런 개혁 시도 덕에 멕시코는 손에 꼽히는 극적인 경제 개혁을 이루어냈다. 개혁의 주요 내용은 정부 지출의 엄격한 감소, 채무 삭감, 사유화가 있다. 먼저, 멕시코 정부는 국제통화기구(International Monetary Fund), 세계은행(World Bank), 미국 정부, 그리고 각종 은행과의 협정에 따라 정부 지출을 크게 줄이는 재정 계획을 시작했다. 이로써, 수천 개의 일자리가 없어졌고, 수백 개의 기업이 없어졌다. 다음으로, 미국이 다국적 계획을 통해 차관에 대한 금리를 인하하고자 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차관 문제는 여전히 멕시코에서 전염병과 같은 문제다. 멕시코는 여전히 연간 평균 100억 달러를 이자급부를 지급했다. 마지막으로, 시장 경제를 멕시코에 도입하기 위해 마드리드 정부는 정부의 경제적 힘을 줄이고자 했다. 대표적으로, 정부는 많은 공기업을 사유화하고, 살리나스 대통령은 은행들을 민간부문으로 전환했다. 80년대 후반 구아 달라하라 대통령에 이르러서는 ‘작은 실리콘 벨리(The Mini Silicon Valley)’가 기술 기업들과 공장들이 설립되었던 IBM에 조성되었다. 그리고 멕시코 내 특별 법들이 제정되면서 값싼 노동력이 미국 회사들이 멕시코 기업에 대한 투자를 장려했다.
 오늘날 멕시코의 경제는 다양화되는 경향을 보였으며, 석유 산업에만 의존하는 과거 경제 형태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여전히 수 많은 문제가 남아있다. 소득 불균등, 도시 계획, 그리고 환경 오염 등의 문제가 있다. 사업가로서 빈센트 폭스(Vincente Fox)는 선거 공약으로 자신의 임기 동안 멕시코의 경제를 연간 7%씩 성장시킬 것을 약속했다. 2001년과 2003년 미국의 9.11 사건 이후 경제가 위축됨에 따라 그의 공약은 좌절되었다. 물론, 2004년 경제 4.1%가량 성장했으나 40%의 인구가 여전히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펠리페 칼데론(Felipe de Jesús Calderón) 대통령은 2006년에 대통령이 되었을 때, 멕시코의 석유 생산량은 크게 떨어지고 있었으며, 그 주된 이유는 새로운 석유 산업을 찾는 움직임이 시작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PEMEX는 예산의 40% 정도를 제공하는 거대한 준국가기관의 기업이다. 그러나 PEMEX의 기술은 너무나도 쇠퇴한 상황이었다. 폭스 대통령은 PEMEX를 사유화하고자 시도했지만 수많은 반발을 겪었고 칼데론 대통령 또한 시도했다, 칼데론 대통령은 2008년 PEMEX에게 더 큰 예산 자주권을 부여하고 석유 산업에 대한 정부 규제를 강화하는 개혁안을 발표했다. 정부는 민간이 정유와 관련해 접촉할 수 있도록 허가하고 PEMEX가 정유 산업의 보관과 분류 관련 민간 계약자를 고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런 대통령의 개혁은 의회로부터, 특히 칼데라 대통령이 PEMEX를 국유화한 것에 대해 기소한 민주혁명당(PRD)으로부터의 반발을 샀다. 그러나, 2008년 경제 위기라는 더 큰 장애물로 인해 그의 계획은 좌절되었다.
 2009년 초, 멕시코의 경제는 크게 위축되고 있었다. 전문가들은 2009년 첫 분기(연 총 4분기)에는 5.9%가량 경제가 축소할 것이라 추측했다. 대표적인 이유는 미국과 멕시코간의 긴밀한 관계 때문이다. 미국의 수요가 완전히 메말라버린 탓에 수출은 36%로 감소했다. 미국의 투자자들도 멕시코에서 사업을 중단하고 본국에 있는 자신의 사업체를 소생시키느라 바빴고 이는 결국 멕시코 페소 가치 하락으로 이어졌다. 멕시코는 선진국들과 교류하고 있었는데 이는 멕시코를 크게 뒤처지게 하였다. 반면 시장 경제가 새롭게 부상하는 국가들과 교류한 브라질은 빠르게 경제 성장하고 있었다.
 2012년 선거 당시 페냐 니에토 대통령은 PEMEX를 개혁하겠노라고 했다. PEMEX를 사유화하진 않되, 벤처 기업들과 민간 기업들과 협력하여 운영할 수 있도록하며 PEMEX의 독점권을 지키겠다고 선언했다. 최근 PEMEX는 2013년 두 차례의 폭발과 적자로 앓고 있었다. 2014년 정부는 민간 석유 사업 기업들을 불러 석유 탐사 연합을 꾸렸고 외국 기업들이 PEMEX와 협력하여 멕시코 석유사업에 대한 민간 투자 증가를 기대하고 있다.
 전기통신 분야에서도 멕시코는 개혁을 시도하고 있다. 2013년 페냐 니에토 대통령은 장기적인 전기통신과 방송 산업 개발을 위한 법률에 서명했다. 이러한 전기통신과 방송 산업은 대형 기업들로 하여금 경쟁심을 부추기고 산업에 대한 투자를 이끌 수 있다. 멕시코는 ‘Ifetel’이라는 규제 기관을 만들고 독점적인 기업들로 하여금 자산을 분배하도록 규제하고 강제할 수 있는 힘을 부여했다. 당시 멕시코에는 무선 전화와 일반 전화의 70%를 장악하고 있는 America Movil과 텔레비전 방송의 70%를 장악하는 Televisa SAB, 그리고 텔레비전 장송의 30%를 장악하는 TV Azteca SAB 등의 회사들이 이 분야를 모두 장악하고 있었다.
 다. 외교 정책
 1982년 멕시코 정부가 멕시코의 수출과 해외 우수 품목에 대해 시장을 개방했을 때 멕시코의 경제에는 위기가 닥쳤다. 1982년 이후 정부는 외국인에 의한 자산 소유데 대한 규제를 완화하는가 하면, 관세를 제거했다. 정부는 이러한 정책을 내놓으며 외국의 투자를 장려하고 멕시코의 민간 산업의 수출을 위한 생산을 장려했다. 현재 멕시코의 경제는 미국과 크게 엮여 있으나, 근래에 들어 멕시코의 지도부가 국제적인 포럼에 참여하는 등의 변화를 겪고 있다.
 멕시코의 공업 지대는 미국의 국경이 접해있는 멕시코의 북쪽에 처음 조성되었다. 이곳을 마킬라도라(Maguiladora) 지대라고 흔히 부르는데, 마킬라도라에서는 미국의 소비자를 위해 상품을 생산하고 미국의 기업이 이 지구에 새로운 공장들을 설립함으로써 물품들을 가공하고, 유통했다. 이 지구는 1965년 미국, 캐나다를 포함한 3국의 북미 자유 협정(NAFTA)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이 협정으로 인해 이 3국간 거래에서 무역 장벽이 제거되었다. 오늘날, 수 많은 노동자들이 이 마킬라도라 지구에서 일하고 있으며 멕시코의 20%되는 노동인구가 이곳에 배치되어있다.
 1980년 중반, 멕시코는 경제를 세계화하고 채무를 갚기 위해 많은 무역협정을 체결하고 무역 기구에 가입했다. 먼저, 멕시코는 GATT를 체결하고 WTO에 가입했다. 1986년, 국가간에 더 자유로운 무역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다자조약인 가트(GATT: General Agreement on Tariffs and Trade) 조약을 체결했고 이 조약에 따라 세계 무역 기구(WTO)가 설립되었다. WTO가 설립된 이후 멕시코는 가장 활발히 참여하는 국가들 중 하나가 되었다. 또한, 북미 자유 협정(NAFTA)의 체결도 멕시코의 외교 정책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이 협정은 미국, 캐나다, 멕시코에 의해 체결되었으며 이 협정의 목적은 관세 제거와 규제 완화를 통한 경제 통합이다. 멕시코는 이 협정을 통해 전반적 경제 성장과 국내 기업의 성장을 기대하였다. 그러나 실제 이익을 챙긴 것은 미국이었다. 미국은 멕시코의 값싼 인력과 자원들 그리고 새로운 시장을 찾으면서 크게 이익을 봤고, 멕시코는 이런 미국에 의해 다양한 문제를 맞이했다. 그러나 이후 미국과 멕시코간의 크고 작은 분쟁을 빚으면서 국경을 넘나드는 자유로운 무역이 실제로는 좌절되고 있다.
 
  다. 이민 정책
 EU의 국가들과는 다르게, NAFTA의 협정은 국경을 넘는 자유로운 노동력의 교환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폭스 대통령은 임기 초반에 미국과 멕시코간 이민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 폭스 대통령은 이주 노동자를 위한 정책, 불법 체류자에 대한 자진 신고, 비자 문제 해결 등으로 완전한 국경 개방을 제안했다. 이 계획은 미국내에서 멕시코 노동자들이 적법하게 일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 계획을 미국이 수리해주는 대가로 멕시코는 국경을 강화하여 추가적인 불법 이주민이 없도록 약속했다.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조지 부시는 이런 폭스 대통령의 제안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이 계획은 2001년 9.11 사건의 발생과 함께 좌절되었다.
 2014년, 오바마 대통령은 자신이 행정명령으로 400만명의 불법 이주민들에게 미국에서 살고 일할 수 있도록 행정명령을 내리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보수적 법률 운동이 오바마의 행동을 저지했다. 이로 인한 연기가 결국 오바마의 임기 내에 계획의 실행을 어렵게 만들었다.
  또 하나의 이민 정책 문제는 중앙 아메리가 이주민들이 미국으로 가는 길이다. 2015년 멕시코 정부기관은 ‘La Bestia’라는 길을 엄격하게 단속하고 있다. 이 길은 멕시코 남부에서 북쪽으로 가는 기차 선로다. 정부는 기차는 더 빠르게 그리고 이동하는 이주하는 이주민들은 저지하는 정책을 실시할 것을 계획하고 있다.
 
  라. 마약 밀매
 마약밀매는 미국과 멕시코 양국이 겪는 대표적인 문제들 중 하나다. 마약 거래는 멕시코 정부의 부패를 만들었다. 정부 당국자들은 마약 밀매를 봐주는 대가로 뇌물을 받거나 적극적으로 도와주기까지 하며 정부 기관은 부패하였다. 2005년 마약 관련 문제가 본격적으로 대두되었다. 폭스 행정부는 부패한 정부 기관들을 개혁하겠다고 선언했고 이 선언은 실제로 많은 당국자들에 대한 체포로 이어졌다. 그러나 그의 임기 동안 마약 간련 문제는 완전히 적출되지 않았다.
 칼데론 대통령은 마약에 대한 전쟁을 선언했고, 갱단이 지배하고 있는 지역들에 군대와 연방 요원들을 보냈다. 칼데론은 또한, 국가의 경찰 조직을 재구성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부패한 경찰관을 근절하고 지역 경찰들이 마약 조직들을 수사할 수 있도록 법을 개편했다. 이에 대한 즉각적인 반응은 마약과 관련된 폭력이었다. 치명적인 살인이 발생하고 심지어 경찰 간부들조차 암살되었다.
 이에 대해 칼데른은 강경하게 대응했다. 그는 마약이 문제가 되는 주요 도시들에 군대와 패트롤을 보냈다. 이 대책을 인해 파병된 군대가 일반 시민을 공격하면서 비판을 받기도 했다. 2008년 마약관련 폭력 사태와 무력 사태는 멕시코의 경찰이 암살되면서 최고조에 달했다. 미국의 부시 대통령도 멕시코의 마약 전쟁에 동참했다. 2011년, 미국은 단순한 지원을 넘어서 미국 중앙정보국(C.I.A.)을 도입함으로써 그 역할을 확장했다. 또한, 미국 마약단속국(D.E.A.)과 멕시코 마약부 경찰(Counter-Narcotics police)과 연합하여 지배적인 마약 밀매업자들을 체포했다. 한편 2010년 살인율은 10만명당 17명에 이르렀으며 2007년보다 66퍼센트 이상 증가했다. 2010년 주요 마약 밀매업자들이 죽거나 체포되었고 2012년, 살인율은 2008년 초반과 비슷한 수치로 떨어졌다.
 이러한 노력들에도 불구하고, 2014년 남서부의 주에서 43명의 학생들이 갑자기 사라지면서 비극은 시작되었다. 멕시코의 법무부 장관은 그 학생들이 지역 경찰에 의해 마약 갱단에게 보내졌고 결국 죽임을 당했다고 밝혀졌다. 이 사건은 경찰들이 여전히 마약 카르텔들과 깊이 연관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마. 민족적 혁명
 폭스 대통령의 임기 첫해, 그는 사파티스타(Zapatista)들과협상하기 위해 힘썼다. 사파티스타 민족 해방군(EZLN)은 1994년 NAFTA 조약 체결에 대한 반발로 결성되었다. 이들은, 직업, 토지, 주거, 정의, 건강에 대한 국가의 보장을 요구했다. 이 사파티스타들의 군은 유명한 관광지를 포함한 수개의 마을을 점령하였고 지지자들을 중심으로 확산되었다. 현재는 이 혁명이 진행되고 있으나 많이 진정되는 추세를 보인다. 사파티스타 혁명은 민족주의에 기반했다. 아메리카 인디안(Amerindian)들의 메스티조에 대한 경멸이 혁명으로 이어졌다는 이유도 있다. 현재 이러한 민족적 갈등은 멕시코의 정치적 불안정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바. 민주주의와 선거 개혁
 멕시코의 경제 및 외교 정책 문제에 대한 해답의 일부는 정치 체제 내의 민주주의 전통의 발전에 있다. 멕시코의 권위주의 전통은 민주화에 역행하지만 경제의 근대화, 포퓰리즘의 정치적 가치, 민주혁명 충동이 작용한다.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지표 중 하나는 그 나라의 많은 지역에서 경쟁적이고 깨끗한 선거의 발전이다. 멕시코는 1990년대에 일련의 개혁을 거쳤는데, 이 개혁은 멕시코가 민주주의를 지향하도록 확고히 이끌었다. IFE라는 독립적인 선거 기관이 만들어졌다. 처음에 이 기관은 제도혁명당(PRI)에 의해 지배되었었는데, 본래의 존재 가치를 찾아가고 있다.
 1994년 대통령 선거 캠페인은 루이스 도날도 콜로시오 제도혁명당(PRI) 후보가 티후아나에서 암살당하며 부정적으로 출발헀다. 제도혁명당은 재빨리 그를 에르네스토 제딜로 교체했지만, 폭력과 혼돈이 정치 질서를 위협했다. 현직 대통령의 동생이 암살에 연루됐고 고위 공직자들은 마약 밀매와 연계됐다. 이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제딜로는 도전에 나섰고, 제도혁명당은 수월하게 선거에서 승리했다. 많은 사람들은 1994년과 2000년의 선거가 멕시코 역사상 가장 경쟁적이고 공정한 선거였다고 믿고 있다. 2000년 선거에서 국민행동당(PAN) 후보인 비센테 폭스(Vicente Fox)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71년간의 제도혁명당(PRI)의 우세를 마침내 뒤집게 된 모든 전례가 깨졌다.
 논란의 여지가 있는 2006년 선거는 분명히 경쟁적이었지만 민주주의의 기반을 위협하기도 했다. 오브라도르는 이 과정의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했고, 그가 추종자들로부터 받은 강력한 지지는 불안정이 여전히 멕시코 정치체제의 일부라는 증거다. 그러나 선거법원이 법으로 정한 절차를 따랐다는 것은 자유민주주의가 되기 위한 수순이다. 오브라도르의 정당인 민주혁명당(PRD)의 회원들은 결국 그의 행동에 대해 비난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대부분의 멕시코 시민들이 이 결정을 최종적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인데, 이것은 이 나라가 이 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했다는 증거다. 2013년 주 및 지방 선거 운동 중, 6명의 후보가 사망하는 등 폭력 사태가 발생했고, 또 다른 부상자와 가족, 정당 및 선거 운동 관계자들의 수많은 폭행 사건이 있었다. 이번 폭력사태는 페냐 니에토 대통령의 새 정부에 당혹감을 안겨주었고, 야당 지도자들은 투표 절차와 유권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일부 주의 군을 거리에 배치하라고 대통령에게 요구했다. 대부분의 살인은 약물과 조직 범죄가 일어나고, 보호가 안된 취약한 작은 마을에서 일어났다. 살인의 동기가 모호한 반면, 그들은 정치적 캠페인과 관련된 폭력을 이어가고 있다. 페냐 니에토 대통령은 2012년 12월 취임 첫날 주요 3당 대표가 모두 서명한 95건의 느슨한 규정 제안서 ‘멕시코를 위한 팩트(Pact for Mexico)’를 공개했다. 비록 많은 정치 지도자들, 특히 민주혁명당(PRD) 관계자들이 대통령을 반대하지만, 그는 멕시코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든 정당이 함께 일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페냐 니에토의 내각은 테크노크라트(tecnochrat)와 당에 충실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지만, 국민행동당(PAN) 재무 관료들과 민주혁명당(PRD)의 전 지도자 1명도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제도혁명당(PRI)의 대통령 복귀에도 불구하고 멕시코가 경쟁적인 정당 체제를 유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더 강력한 국가들, 특히 미국은 국제적인 세계 정치와 경제가 멕시코와 같은 국가들의 성공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멕시코는 과거의 불안정에도 불구하고 강한 전통과 잘 발달된 민족적 자부심, 많은 천연자원, 그리고 아무리 고르지 않더라도 진보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

자료 출처: Ethel Wood,AP Comparative Governement and Politics, 8th Edition.

UVS 학회 논설문 신청제목멕시코의 정부 및 정치 형태에 관한 고찰논설문의 주제멕시코의 역사적 정치 변천 분석과 비교정치학에서 다루는 보편적 6가지 준거에 따른 정치적 고찰논설문을 왜 쓰려고 하는지멕시코의 정부 형태는 ‘결함 있는 민주주의’를 대표하는 정부 형태로서, 비교정치학적으로 다루어봄이 유의미하다 판단하여 본고를 작성하게 됨참고할만한 논문, 자료, 키워드등 서술비교정치학, 멕시코 정부론, 국제정치내용 요약 (1000자 이내)주권, 권위와 권력 (Sovereignty, Authority, and Power/정치적, 경제적 변화(Political and Economical Change)/시민, 사회, 국가(Citizens, Society, and the State)/정치기관 (Political Institutions)/정부 기구(Government Institution)/정책과 문제들(Policies and Issues) 과 같은 6가지 비교 준겅 따라 멕시코의 정치를 역사적 방면에서 고찰하고 평론하였음.I. 서론 1900년대 말 멕시코는 여러 개발도상국 국가들의 모범국으로써 평가되어왔다. GNP의 급격한 성장은 정치적으로는 권위주의 정부에서 민주주의 정부로 변화하며 “멕시코의 기적(Mexican Miracle)”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그러나 1980년대 초 국제 원유 가격의 하락으로 멕시코의 경제는 급격히 낮아졌다. 1990년대 중반에는 민족적 갈등이 일어나기도 했다. 정치적으로는 유력한 대통령 후보가 사살되기도 하고, 뇌물 수수가 판쳤으며 마약의 공급 또한 급증했다. 그러나 정권이 교체되면서 경제적 생활력은 회복되었고 2000년대의 멕시코는 투명하고 경쟁적인 대선이 이루어지고 있다. 현재 멕시코는 BRIC 국가 중 하나로 국제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다하고 있다. 이러한 발전에도 불구하고 멕시코는 흔히 신흥공업국(Newly industrialing countries)으로 분류된다. 경제 지표는 비교적 높은 수준을 보이고 있으나 정치적으로는 민주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과도기적 민주주의로 평가된다.II. 여섯가지 준거에 따른 멕시코의 정부 및 정치 형태 분석 1. 주권, 권위와 권력 (Sovereignty, Authority, and…
정치 회원투고 가브리엘 안 2021.04.22 추천 1 조회 4569
동남아시아 국가는 태국을 제외하고 모두 서구 열강과 일본의 지배를 받았다는 점에서 유사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독립 이후에는 민주주의, 준민주주의, 권위주의 등 다양한 정치체제로 발전하였다. 동남아시아 국가가 과거 대부분 군주제나 왕정을 토대로 하는 권위주의 국가였다는 점에서 이러한 전개는 매우 흥미롭다. 이 글에서는 동남아시아 국가의 정치체제가 이렇게 다양하게 발전한 이유를 살펴보며, 정치체제별 국가의 특징과 민주주의 전환의 조건을 알아보고자 한다.동남아시아에는 필리핀, 베트남, 태국,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등 11개 나라가 있다. 이 나라들은 태국을 제외하면 2차 세계대전 끝날 때까지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 미국 등 서구 열강들의 식민 지배를 받았고, 2차 대전 중에는 일본의 지배를 받는 등 비슷한 역사를 갖고 있다. 그런데 독립 후에는 민주주의부터 권위주의까지 다양한 정치체제를 수립하였다. 필리핀과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동티모르는 야당이 참여하는 경쟁적인 선거로 정치 지도자를 선출하는 민주주의 국가이지만, 베트남과 라오스, 브루나이는 야당이 허용되지 않는 권위주의 국가이다. 한편 싱가포르와 캄보디아, 미얀마, 태국에서는 야당도 허용되고 선거도 실시되지만 야당이 선거에서 승리하여 집권할 수 있는 현실적인 가능성이 매우 낮은데, 이들은 완전히 민주주의도 아니고 권위주의라 하기도 어려워서 준민주주의(semi-democracy)라 불린다.더욱 흥미로운 은 이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과거에는 거의 모두 군주제나 왕정을 기본으로 하는 권위주의 국가였지만 캄보디아와 미얀마 등은 준민주주의로, 필리핀과 인도네시아 등은 민주주의로 전환하였다는 사실이다. 비슷한 역사를 경험한 동남아시아 나라들이 이처럼 다양한 정치체제를 갖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왜 어떤 나라는 여전히 권위주의로 남아있는데, 어떤 나라는 준민주주의로, 어떤 나라는…
정치 [인물] 정대성 2021.03.10 추천 0 조회 362
해당 논문은 Foreign Affairs에 투고된 것으로서, 싱가포르의 총리 리센룽이 기고한 것임을 정리한 것임. 아시아 국가들은 미국을 이 지역에서 중요한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지역강국으로 보고 있다. 동시에, 중국은 문턱에 있는 현실이다. 아시아 국가들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리고 만약 미국이 중국의 부상을 억제하려고 하거나 중국이 아시아에서 독점적인 세력권을 구축하려고 한다면, 그들은 수십 년 동안 지속될 대립의 과정을 시작하고 긴 경계의 아시아 세기를 위험에 빠뜨릴 것이다.중국이 개혁개방을 추진하였고, 중국과의 교류도 늘어났지만, 팍스 아메리카나는 건재했고, 중국의 역할에 대한 이러한 급진적인 변화는 그것의 틀 안에서 일어났다. 중국은 미국의 우위에 도전할 처지가 아니었고 그렇게 하려고 시도하지도 않았다.아시아의 안정과 번영을 가능케 한 것은 미국이었다. 미국은 개방적이고 통합적이며 규칙에 기반을 둔 글로벌 질서를 옹호했으며 지역 국가들이 협력하고 평화적으로 경쟁할 수 있는 안보 우산도 제공했다. 미국의 다국적 기업들은 아시아에 광범위하게 투자하여 자본, 기술, 아이디어를 가져왔다. 워싱턴이 자유무역을 촉진하고 미국 시장을 세계에 개방하면서 미국과의 아시아 무역은 성장했다.동남아의 많은 국가들은 국국과 다른 선진국들과 강한 유대관계를 유지하면서 중국과 경제 관계를 맺으면서 두 나라 모두에서 최고의 관계를 누렸다. 그들은 또한 서로간의 유대관계를 심화시키고 동남아시아 국가 연합에 뿌리를 둔 지역 협력을 위한 열린 건축을 만들기 위해 협력했다오늘날 중국 지도자들은 자신의 힘을 숨기고 자신의 시간을 지키겠다는 덩의 격언을 더 이상 인용하지 않는다. 중국은 스스로를 대륙의 강대국으로 보고 있으며 해양 강국이 되고자…
[인물] 정대성 2021.03.08 추천 0 조회 7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