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리뷰 ] ‘유교 탈레반’: 조선과 이슬람의 기묘한 만남

작성자
[인물] 정대성
작성일
2021-10-11 11:16
조회
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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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다 쓰고 발견한 흥미로운 제목의 책

그러나 본문 내용과는 전혀 상관없다.

18세기 중국 청나라 무슬림이 중국 유학자들에게

이슬람이란 종교가 무엇인지 설명하기 위해 쓴 『청진석의(淸眞釋義)』라는 책의 한국어 번역본이라고 한다.

 

유교와 탈레반, 겉보기에는 서로 아무런 관련도 없을 것처럼 보인다. 20세기 이후 아프가니스탄의 혼란 속에서 등장한 탈레반과 공자가 창시하여 20세기 이전까지 동아시아의 보편 윤리로 작동한 유교가 서로 대체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탈레반들은 공자나 유교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도 없을테고, 조선시대의 유생과 선비 대부분 또한 아프가니스탄이라는 지역이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을 것이다.

 

그러나 서로 아무 상관이 없어 보이는 신기하게 결합한 채 사용된다. 바로 ‘유교 탈레반’이다.

 

대구경북 지역의 지역일간지인 매일신문에 따르면 ‘유교 탈레반’은 “조선 정치 이념이던 ‘유교’와 자살테러 등으로 악명 높은 아프가니스탄 무장 이슬람 정치단체 ‘탈레반’의 합성어”로 “보수적 유교 사상이 극에 달한 사람이나 단체를 비꼬아 이르는 신조어”다. 이처럼 인터넷상에서 처음 등장한 ‘유교 탈레반’이라는 단어는 언론에까지 진출했으며, 해외 인터넷 사이트 차단 정책을 비판하는 중앙선데이의 2019년 2월 16일자 칼럼에서도 그 쓰임을 확인할 수 있다. 심지어는 “17세기 조선은 왜 일본과 달리 성리학 ‘탈레반’의 나라가 됐나”라는 인터뷰 기사도 있다(정작 인터뷰 내용을 읽어보면 제목에서 말하는 바와는 완전히 논조가 다르다. 그냥 기자가 실제 인터뷰 내용과 의도와는 무관하게 자극적인 제목을 뽑아낸 것으로 보인다.)

 

조선 왕조가 근대화와 독립에 실패해 결국 일제 식민지로 전락한 이후 조선의 지배 사상이라고 할 수 있는 ‘유교’는 한국 사회에서 사라져야 할 악폐습, 쓸모없는 전통에 대한 맹목적인 집착, 변화를 거부하고 과거에만 매달리는 보수적이고 고루한 가치관을 가리키는 용어가 되었다. 이슬람 역시 1,300년 전에 계시된 코란과 예언자의 전승에 집착해 현대 사회의 가치를 수용하고 변화하기를 거부하는, 종교법에 따라 사람을 돌로 쳐 죽이고 도둑의 손목을 자르며 여자들을 핍박하고 탄압하는 광신도 또는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무고한 사람을 학살하는 테러리스트와 결부되곤 한다. 그리고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은 이슬람이 광신적이고 억압적인 성격을 가진 종교라는 점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로 이해된다. 이러한 시각에서 ‘유교’와 ‘이슬람’ 모두 변화를 거부하고 과거의 전통에 집착하는, 폭력적이고 배타적이며 사회의 발전과 진보를 가로막는 해악의 위치를 차지한다. 이러한 점에서 유교와 이슬람 모두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서로 결합하여 ‘유교 탈레반’이라는 용어로 나타난 것이 아닐까.

 

이 글은 유교가 정말 조선 망국의 원인인지, 이슬람이 정말 중동 사회의 쇠퇴를 가져오고 발전을 가로막는 요인인지 분석하기 위한 글이 아니다. 그걸 분석하려면 아마 몇 년에 걸친 연구를 통해 책 한 권은 써야 할 것이다. 다만 이 글에서는 최근에 읽었던 ‘유교책임론’에 관한 글들을 옮겨보고자 한다. 따라서 이번 글은 사실상 인용문 모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슬람과 중동을 주로 다루는 블로그에서 굳이 유교와 조선시대에 관련된 글들을 길게 인용하는 이유는 오늘날 많은 사람들에게 유교와 다를 것이 하나도 없는 종교로 여겨지는 이슬람에도 ‘유교책임론’에 대한 비판적 검토가 적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논어에 관한 김영민의 글을 묶은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에서 일부를 인용한다. 김영민은 이 책에 실린 「유교란 무엇인가」에서 ‘유교’라는 개념이 정의하기에 따라 얼마나 자의적으로 이용될 수 있는지를 지적한다:

 

“오늘날 누군가 ‘유교란 이러이러한 것이다’라고 규정하면, 그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유교’ 전통 속에서 얼마든지 그와는 다른 특징을 찾아낼 수 있게 되어버렸다. 예컨대 누군가 유교는 상업을 억압하는 특징이 있다고 주장하면, 그에 반대하는 이는 ‘유교’ 전통 속에서 상업을 선양하는 특징 역시 찾아낼 수 있다. 누군가 유교는 개인을 억압하는 특징이 있다고 주장하면, 그에 반대하는 이는 ‘유교’ 전통 속에서 개인을 고무하는 특징 역시 찾아낼 수 있다.”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 262쪽.

 

유교는 상업을 억압하기도 하고 상업을 선양하기도 한다. 유교는 개인을 억압하기도 하고 고무하기도 한다. 서로 반대되는 결론에 도달하지만 두 관점 모두 유교의 특징을 규정한 뒤에 현실에 끼워맞춘다는 점에서는 비슷하다. 마찬가지로 이슬람을 여성을 억압하는 종교로 정의한다면 무슬림 사회에서 나타나는 모든 여성차별적인 관습과 현상은 이슬람의 특징때문에 나타나는 것이고, 이슬람을 여성을 해방시키는 종교로 정의한다면 무슬림 사회에서 여성을 보호하고 권리를 인정하는 모습을 찾아낼 것이다. 

 

김영민은 또한 ‘유교 사회만의 특징’으로 정의되는 것이 정말 유교 사회만의 특징인지 의문을 제기한다:

 

“남녀 간의 성차에 대한 강조, 남아 선호, 가족 유대 등 당시(19세기 말) 프랑스 향촌 사회의 특징은 이른바 단순화된 ‘유교’ 사회의 특징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유교’라는 단어는 제반 현상들을 범박하게 지칭하는 용어로는 쓸모가 있을지 몰라도, 특정 사회의 독특한 면모를 적시하기에는 너무나 투박한 용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 263쪽.

 

이슬람 사회만의 특징으로 제기되는 요소들 또한 비슷하지 않을까. 이슬람 사회만의 특징으로 지적되는 여러 현상, 즉 가부장제나 여성 차별이나 부족주의, 종교가 차지하는 중요성 등은 정말 이슬람 사회에서만 나타나는 것일까? 그러나 많은 경우, 무슬림들이 다수를 차지하는 사회에서 나타나는 어떤 독특한 면모는 오직 이슬람이라는 하나의 요소로 환원된다. 그러나 정말 그 ‘독특한 면모’가 오직 ‘이슬람 사회’만의 전유물인가? 

 

“일단 유교는 현대 한국 혹은 동아시아를 정교하게 설명할 능력은 없지만 그래도 기를 쓰고 설명하고 싶을 때 유용하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문제들을 도맷값으로 떠넘길 때 유용하다. 유교 때문에 이 모양 이 꼴이 되고 말았어! 그뿐이랴. 현재 한국 사회의 성취를 설명할 때도 유용하다. 유교가 있었기에 이 나라가 발전할 수 있었어! 실로 유교라는 단어가 없었더라면, 큰일 날 뻔했다. 자칫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들킬 뻔 했으니까……하나의 단어를 외어서 그토록 여러 맥락에 쓸 수 있다면, 사용자는 여러 가지 복잡한 용어를 학습해야 하는 수고를 덜게 된다.”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 264쪽.

 

유교가 모든 것을 설명하는 동시에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한다는 김영민의 지적은 이슬람에 대해서도 유효할 수 있다. 여성 차별, 부패, 경제난, 독재, 테러리즘 심지어 침대축구까지 중동 사회에서 나타나는 모든 현상을 모두 ‘이슬람’으로 설명하려는 관점은 오직 유교라는 단어만으로 한국 사회의 성취를 분석하려는 관점과 다르지 않다. 김영민이 말하듯이, “하나의 단어가 너무 많은 것을 의마할 때, 그 단어는 유용한 동시에 무용”하다(김영민, 265). 

 

“유교라는 말로 지칭하건, 유학이라는 말로 지칭하건, 컨퓨셔니즘이라는 말로 지칭하건, 그 대상은 매우 오랜 시간에 걸쳐 불균질하게 전개되어온 전통이기 때문에 시공을 넘어선 불변의 유교 본질 같은 것은 없다. 따라서 무리해서 유교의 본질을 규정하려고 들기 보다는, 사람들이 어떤 때 어떤 이유로 유교라는 말을 환기하고 사용하려 드는가에 주목하는 것이 더 생산적이다.”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 266쪽

 

이슬람 또한 유교와 마찬가지로 1300년에 걸친 ‘오랜 시간에 걸쳐 불균질하게 전개되어온 전통’이다. 따라서 시공을 넘어선 불변의 ‘이슬람 본질’ 같은 것은 없다. 논어는 변하지 않아도 유학자들의 해석과 적용 방식은 달라질 수 있듯이, 코란은 변하지 않아도 코란을 읽는 무슬림들의 관점과 해석과 실행 방식은 달라진다. ‘이슬람의 본질’ 같은 것은 없다. ‘무슬림의 해석과 실천’만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복잡한 중동 사회와 역사를 이해하는 것은 너무나 귀찮고 번거롭기에 ‘이슬람’이라는 마법의 단어는 모든 것을 설명하기 위해 이용된다. “성급한 혐오와 애호 양자로부터 거리를 둔 어떤 지점에 설 때야 비로소 자신이 다루고자 하는 대상의 핵심”에 다가갈 수 있다는 김영민의 지적은 따라서 이슬람을 바라볼 때에도 마찬가지다. 이슬람에 대한 성급한 혐오 또는 무비판적인 애호 두 관점 모두 결국 이슬람이라는 종교를, 무슬림이 다수를 차지하는 사회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방향으로 이끌 뿐이다:

 

“과거 전통을 정교하게 이해하려는 노력이 너무 번거로운 나머지 그저 편의상 ‘유교’라는 말을 사용한다. 동아시아의 전통을 먹기 좋게 포장해서 외국에 전달하고 싶은 나머지 그들의 구미에 맞게, 단순화된 의미로 ‘유교’라는 말을 사용한다. 과거의 문화와 규범을 후다닥 싸잡아 욕하고 싶은 나머지, ‘유교’라는 말을 거친 의미로 계속 사용한다…. 과거의 특정 문화, 전통, 혹은 텍스트를 너무 성급하게 혐오하면, 그 혐오로 그 혐오의 대상을 냉정하게 이해하지 못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결국 그 대상을 정교하게 혐오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마찬가지로 특정 문화를 너무 성급하게 애호하면, 그 애호로 인해 그 애호의 대상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게 되고, 결국 그 대상을 정교하게 애호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성급한 혐오와 애호 양자로부터 거리를 둔 어떤 지점에 설 때야 비로소 자신이 다루고자 하는 대상의 핵심에 한 발자국 더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 267-268쪽

 

대중 독자를 위한 김영민의 에세이와는 달리 허태용의 「성리학으로 조선시대를 설명하는 연구 경향의 비판적 고찰」(『역사비평』 5권, 2019: 317-350)은 학술 논문이다. 하지만 이 논문에서도 허태용이 가진 문제의식은 김영민이 제기한 주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바로 조선왕조의 멸망을 포함해 조선시대의 모든 현상을 유학/성리학으로 돌리는 경향이다. 성리학과 실학을 대비하는 관점은 이슬람과 세속주의를 대비하여 이슬람을 망국과 쇠퇴의 원인으로, 세속주의를 개혁과 발전의 동력으로 구분하는 관점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현재까지도 영향을 끼치고 있는 조선시대 연구의 오래된 하나의 인과적 설명 방식, 즉 특정 사상―주로 성리학―을 여러 현상과 사건의 원인으로 설명하는 자세가 학문적으로 적절한 것인지에 대해서 깊이 성찰할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물론 이런 질문은 자칫하면 불가지론에 이를 수도 있기 때문에 쉽지 않은 질문이다. 하지만 역사에서 인과적 설명을 포기하지 않는 한 질문 자체는 필요하다. 무엇보다 연구자들은 어떤 시각의 설명이 역사를 보다 풍부하고 종합적으로 이해하게 하는지를 찾기 위한 노력의 차원에서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

조선시대를 다룬 많은 연구들 속에서 발견되는 하나의 경향은 특정한 사상, 혹은 사상적 요소가 구체적인 역사의 원인으로 언급된다는 점이다. 이 때 언급되는 대상으로는 조선왕조의 체제 교학인 주희 계열의 성리학과 ‘실학’을 가장 먼저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조선시대의 역사 현상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사상적 요소가 원인으로 언급될 때면, 그것이 거시적인 담론이든 미시적인 고증이든, 대부분 성리학과 ‘실학’이 언급되었다.

(….)

이런 경향의 가장 오래된 거시적 담론으로는 성리학으로 말미암아 조선이 멸망했거나 근대화에 ‘실패’했다는 설명과, 그것의 대우명제로서 ‘실학’이 받아들여지지 않아서 조선이 멸망했거나 근대화에 ‘실패’했다는 설명을 떠올릴 수 있다.”

「성리학으로 조선시대를 설명하는 연구 경향의 비판적 고찰」, 318-319쪽.

 

“만약 조선왕조의 멸망이나 근대화의 ‘실패’를 설명할 때 성리학, 혹은 거기서 파생된 사상적 요소를 부분적인 하나의 요인으로 언급한다면 적절한 설명이 될 수도 있다. 문제는 정말 부분적인 요인으로서 파악한 것인지, 아니면 사실상 주된 원인으로서 파악되고 있는지의 여부일 것이다.

(….)

한국이 근대화에 ‘실패’하고 식민지가 되어야 했던 이유를 찾기 위해 한평생 공부했다고 스스로 밝힌 한 학자(강재언)에게도, 한국 근대화의 낙후성을 규정한 사상적 원인은―그의 표현에 따르면―주자학만 숭상하는 ‘주자일존’의 유일사상 체계였다. 이와 같이 주자학, 혹은 성리학은 최근의 좀 더 세련된 학술적 설명 속에서도 여전히 근대사 ‘실패’의 원인으로 인식되곤 한다….조선 후기 ‘주자학’이라는 대비적 존재와의 투쟁 속에서 ‘실학’의 대두와 성격을 설명하고 있는 이 연구는 끝내 ‘실학’이 ‘좌절’됨으로써 19세기 이후 역사의 어려움을 맞게 되었다고 규정했다는 점에서, 간접적으로 ‘주자학’에게 19세기 이후 ‘실패’한 역사에 대한 책임을 지우고 있는 셈이다.”

「성리학으로 조선시대를 설명하는 연구 경향의 비판적 고찰」, 321-322쪽.

 

허태용은 “세종 시대의 황금기, 사군육진 개척, 의병, 북벌론, 영정조 문예부흥기, 의술 발전, 불교와 양명학, 서학의 배척, 여성차별적이고 장자중심적 종법체제 형성, 사대관계, 대간과 신문고 제도, 조선 후기 토지 소유의 균질화, 사림의 분열, 북인의 정치적 몰락, 임란 의병, 서인들의 경제적·군사적 실권 장악, 인조반정”(허태용, 323-326)에 이르기까지 조선 시대의 거의 모든 현상과 역사적 사건의 원인을 성리학으로 돌리는 관점을 비판한다. 이와 같은 관점에 따르면 성리학은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자발적인 ‘자유의지’로 조선을 건국하고, 조선의 여러 부분에 자신의 모습을 구현했다가 마지막에는 조선왕조를 멸망케 했다는 거대서사도 가능”할 정도다(허태용, 327). 조선시대를 부정적으로 보든 긍정적으로 보든 결국 성리학이라는 사상적 요소를 조선시대의 여러 역사 현상을 낳은 원인으로서 파악하는 자세는 동일”하다(허태용 323쪽).

 

허태용의 지적은 조선시대의 역사 현상을 분석하는 관점에만 유효한 것이 아니다. 허태용이 제기한 본질적인 문제 의식은 이슬람이라는 마법의 키워드 하나로 오늘날 중동 사회에서 나타나는 모든 현상을 설명하고, 이슬람을 마치 역사와 사회로부터 완전히 자유롭고 자발적이고 독자적인 의지를 가지고 인간을 구속하는 ‘실체’로 바라보는 자세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조선시대의 모든 현상과 역사적 사건이 성리학 때문이었다면 인간은 단순히 성리학적 이상을 실천하는 도구에 불과하다. 마찬가지로 중동 무슬림 사회의 모든 현상이 이슬람 때문이라면 인간은 단순히 이슬람의 교리와 이상을 실천하는 도구로 전락한다.

 

그렇다면 왜 사상적 요소(중동의 경우에는 종교적 요소)를 역사(그리고 사회 현상)의 원인으로 보려는 것일까? 첫째로 특정한 사유(思惟)가 특정 행위를 낳는다는 연구자 자신의 과잉된 심리적 편견”(허태용, 327)이 존재한다. 둘째로는 이러한 접근법이 국가 멸망과 같은 큰 사건과 관련해서 특정한 정치적 메시지를 전하는 선동에 비교적 유리한 측면”(허태용, 328)이 있기 때문이다. 어떤 사상이 또는 종교가 망국의 원인으로 규정된다면 그 사상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의 사상 또는 종교와 대비되는 세속주의가 ‘해결책’이라는 간단한 도식 구조가 완성될 수 있다. 특정한 사상의 우수성, 세속주의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정치적 담론은 곧 과거의 사상과 종교를 망국의 원인으로 바라보는 관점 위에 성립된다. 

 

셋째로는 사상적 요소를 역사의 원인으로 본다면 형식적으로는 일단 그럴듯한 하나의 내러티브”를 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허태용, 330). 조선이든 무슬림 사회든 유교와 이슬람은 두 사회의 여러 현상과 분명히 관련되어 있다. 따라서 적절히 끼워맞추어 현상의 인과관계를 사상적 요소로 설명한다면 – 가령 이슬람 때문에 이슬람권에서 인쇄술이 발전하지 못했으며, 결국 이슬람권의 학문적 발전이 정체되었다든가, 칼뱅주의가 결국 서구 자본주의의 발전으로 이어졌다든가 식으로 – 꽤나 그럴듯한 서사가 만들어진다. 문제는 “이런 방식으로 역사를 이해한다면, 페르시아제국의 멸망은 조로아스터교 때문으로, 오스만투르크와 무굴제국의 멸망은 이슬람교 때문으로, 잉카제국의 멸망은 태양신 숭배 때문으로 설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허태용, 330). 거대서사에서 종교는 다시 한번 모든 현상의 원인의 위치를 차지한다.

 

네 번째 요인은 계몽주의 전통의 영향이다. 허태용에 따르면 “이성이 세계사를 통해 스스로를 실현한다는 사변적 생각”은 역사 현상의 원인으로서 사상적 요소가 중심적인 위상을 차지할 수 있는 중요한 배경이 되었다”(허태용, 333쪽). 허태용은 사상적 요소(또는 종교)가 현상의 궁극적 원인이라고 보는 시각이 “‘‘세계정신’이 스스로를 실현하는 것이 역사라는 헤겔 이래의 꽤나 오래된 지적 전통의 영향을 떠올리게 한다“(허태용, 334)고 비판한다. 이러한 설명은 마치 콜럼버스의 모험심이 신대륙을 발견하게 한 것이고, 루터와 칼뱅의 신앙심이 종교개혁을 일으켰으며 히틀러의 유럽정복 욕망이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는 설명과 동일한 방식이어서, 카의 말을 빌자면 아무런 설명도 되지 않는다” (허태용, 334). 마찬가지로 이슬람 때문에 이슬람권 문명의 과학과 학문 발전이 정체되었고, 오스만 제국이 쇠퇴했고, IS가 일어나고 탈레반이 카불을 점령했다는 설명은 모든 것을 설명하지만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는 것이다.

 

다섯 번째 이유는 사상과 종교로서 모든 것을 설명하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 같은 일종의 ‘착시’를 일으킬 뿐 아니라, 비판의 위험에 쉽게 노출되지 않는 ‘안전성’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자국 중심의 주체적 역사학과 국어학, 백과전서학 및 현실적인 문학의 새로운 사조가 열린 것은 민족주의적인 ‘실학’의 학풍이 대두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게 되면 역사 현상에 대한 인과적 설명이 마무리된 것 같은 분위기가 조성된다. ‘실학’이라는 이해틀의 유행과 권위는 이런 분위기를 더욱 조장했기 때문에 설령 불만족스러움이 느껴진다고 해도 그렇지 않다고 주장하기가 어렵다. ‘실학’ 때문인지 명확치 않아도 ‘실학’ 때문이 아닌지도 명확치 않으니 말이다. 반박의 가능성과 위험이 줄어든 결과 이 설명은 안전해진다” (허태용, 335). 이는 위에서 김영민이 말한 바와 유사하다. 유학 또는 이슬람에 모든 책임을 돌리는 것은 사실은 아무 것도 설명하지 못하지만, 마치 모든 것이 설명되는 것처럼 간단하기 때문이다. 유교 때문에 조선이 망했다, 이슬람 때문에 중동이 쇠퇴했다라는 한 줄의 설명만큼 간단하고 명쾌한 설명이 어디 있겠는가? 

 

허태용은 과학적 탐구와 다른 역사 연구의 특성을 지적한다.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일반 법칙과 일원적인 인과 설명을 추구하는 과학적 탐구와 달리, 역사는 개별적 현상의 설명”(허태용, 336)에 초점을 맞추며 “한 사건, 한 국면의 생성에 각기 다른 몫으로 함께 작용했던 모든 요소들의 연관관계를 찾아보는 시도”(허태용, 337)를 추구한다. 즉 모든 현상을 한번에 설명하는 하나의 요인,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인과율의 법칙은 역사학에서는 존재하기 어렵다. 유교 그리고 이슬람은 과거와 현재에 나타나는 모든 현상을 지배하는 절대적이고 독립적인 요인이 아닌, 한 현상을 만들어내는 여러 요인들 중 하나로서 다른 요인들과의 관계 속에서 작용한다. 역사에서 또는 현재를 바라보고 분석하는 시도에서 찾아내야 할 인과 관계는 결코 단선적이지 않다. 역사를 그리고 현재를 분석한다는 것은 한 현상에 결부되고 관련된 수많은 요인들과 요소들로 얽힌 실타래를 풀어내는 것과 같다.

 

마지막으로 조선시대사에서 성리학을 수많은 현상의 원인으로 파악하려는 시각에 대한 허태용의 비판을 길게 인용해본다:  

 

조선시대의 역사 속에서 특정한 사상, 특히 성리학을 조선시대 역사의 많은 현상을 일으킨 원인으로 파악하려는 시각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에 적절한 역사적 설명이라고 하기 어렵다. 첫째, 성리학은 그것이 조선왕조의 체제교학이었던 만큼 어떤 역사 현상과도 연결될 수 있는 공통 조건이다. 따라서 어떤 역사 현상이 성리학으로 인한 것이라고 설명하는 것은 공기에 산소가 포함되었기 때문에 화재가 발생하였다는 설명과 같이 사실상 쓸모없는 말이다. 둘째, 성리학은 그것이 조선시대의 모든 역사 현상과 연결될 수 있는 공통 조건이기 때문에, 시대와 지역과 상황과 조건에 따라서 수많은 다른 요소들과 얽히면서 다양한 양상으로 복잡하게 인과의 연쇄적 고리를 형성했다. 따라서 각 상황마다 성리학이 차지하는 비중과 모습과 역할은 제각각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원인이라는 ‘고귀한’ 위상을 성리학에 돌리는 것은 ‘관념론적 환원주의’일 뿐, 사건의 복잡성과 다면성을 이해하는 데 별 도움도 되지 않으며, 역사에서의 인과 판단을 둘러싸고 수많은 연구자들이 오랫동안 축적해온 심도 깊은 고민과 문제의식을 무효화시켜버리고 만다. 셋째, 이런 시각이 너무 과도하게 견지될 경우 자칫하면 사람들의 행위는 그들의 정신에 상응한다는 ‘이원론’을 견지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의 행위는 의식을 넘어서서 다양한 조건의 결합물에 가깝기 때문에, 행위의 질서는 의식의 질서로 환원되기 어렵다. 만약 그 환원을 무리하게 시도한다면 결과가 원인으로 간주되는 오류의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 그러므로 역사적인 사건과 현상에 대한 개별적 통찰을 통해 역사학에 있어서의 단일한 인과적 설명을 거부하고 각 사건과 현상을 일으킨 다양하고 복잡한 요소들을 늘 입체적으로 고찰하려는 노력이 절실히 필요하다”

「성리학으로 조선시대를 설명하는 연구 경향의 비판적 고찰」, 338-339쪽.

 

이슬람 역시 마찬가지다. 코란과 하디스를 통해 특정한 본질과 성격을 가진 종교로 정의된 이슬람은 무슬림의 사고관과 행위를 결정하는 유일하고 가장 지배적인 요인으로 상정된다. 이슬람은 무슬림의 삶 모든 영역을 결정하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로 간주되고 따라서 폭력적, 배타적, 억압적, 야만적인 특성을 가진 이슬람을 믿는 무슬림은 따라서 위험하고 믿을 수 없는 집단으로 여겨진다. 히잡 착용, 여성 억압, 비무슬림 차별과 성소수자 탄압, 명예살인, 테러와 같이 무슬림이 다수인 지역에서 나타나는 현상의 원인을 이슬람에서 찾는 주장과 인식은 그리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으며, 코란과 하디쓰에 토대를 둔 이슬람법, 즉 샤리아는 무슬림의 윤리와 가치관, 타자와의 관계에서 정치와 경제와 심지어 중동 축구팀의 궁극오의인 침대축구에 이르기까지 무슬림의 생활 모든 측면을 아우르고 지배하는 결정적 요인으로 여겨진다. 이슬람은 무슬림 다수 지역의 정치, 사회, 경제, 문화와 무슬림의 일상생활과 가치, 윤리, 세계관까지 다양한 현상을 설명하는 만능열쇠의 위치를 차지한다.

 

무슬림이 다수를 차지하는 사회에서 나타나는 모든 현상의 원인을 이슬람에서 찾는 분석은 모든 것을 간단하고 분명하게 설명한다. 그리고 동시에 아무 것도 설명하지 못하며, 오히려 현상을 다방면에서 입체적으로 분석하는 노력을 방해할 뿐이다.


출처: https://harmlessmostly.tistory.com/75?fbclid=IwAR3jIXP1uq8W5JZYcDEHmrpACohB-8SsAeNOxSwa6COcixf-EA_M2vwBBXI 

[대체로 무해함: 중동, 아랍, 이슬람 세계 들여다보기]

동정파업에 관한 고찰작성일자: 2021.10.23.작성자: 장현규▶개요동정파업, 아마 많이들 들어보지 못하였을 것이라 생각한다. 동정파업은 파업중인 근로자를 지원하기 위하여 다른 사업장 혹은 직장의 근로자가 동조하여 파업을 일으키는 것으로, 파업의 효과를 높이고 조합의식을 강화하려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한다. 이러한 동정파업은 당해 사업장의 근로조건의 개선 등 단체교섭 내용과 어떠한 실질적 관련 없는 사업장의 쟁의행위를 지역적 또는 단결적 차원에서 지원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어 그 정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례는 판시한 바 있다. 그러나 이것이 헌법과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되는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에 부합되는지 여부를 다시 한번 검토하여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이에 본론에서는 다음과 같은 사항을 논할 것이다. 첫째, 쟁의행위의 정당성을 검토할 것이다. 이에는 우리 법체계와 우리 법에 가장 많은 영향을 준 독일의 법체계 그리고 국제노동기구(이하 ILO)에서의 정당성의 기준을 비교할 것이다. 둘째, 위 검토 사항을 근거로 하여 동정파업의 정당성에 대하여 전면적으로 다시 정리해볼 것이다.​▶본론쟁의행위는 정당한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각 국가 및 국제기구의 기준에 따라 다르다가 가장 적절한 답일 것이다. 이에 대하여는 법제사적, 법사회학적, 법철학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럼 먼저 우리 법체계에서 쟁의행위의 정당성이 얼마나 인정되는지 먼저 알아보겠다.​우선 쟁의행위의 근거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관련하여 처음 살펴볼 조항은 헌법 제33조 제1항이다. 해당 조문은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제33조 ①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ㆍ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이 규정에서 쟁의행위는 단체행동권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쟁의행위의…
사회 회원투고 장 현규 04:11 추천 0 조회 40
군인노조와 군내 사조직의 경계(境界)작성일자: 2021.10.22.작성자: 장현규▶개요군인과 노동조합(이하 노조), 참 어색한 두 단어의 조합이 아닐까 싶다. 특히 징병제 국가인 대한국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한편 군인노동조합(이하 군인노조)이 법적으로 보장되고 존재하는 나라들도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스웨덴, 덴마크, 독일, 벨기에, 네덜란드,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이다. 이 국가들은 전부 모병제 국가이다. 그렇다면 이 두 제도의 차이는 군인의 신분을 달리 하는 것인가? 그리고 군인은 공무원과 마찬가지로 정치적 중립을 지킬 것을 요구받는다. 물론 이 자체는 옳은 명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기본권을 위한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의 보장을 정치적 중립에 어긋난다고 보아야하는가 역시 생각해볼 수 있는 내용이다. 또한, 대한국은 군내 사조직이 금지되어있다. 이는 군내 사조직이 정권을 탈취하고 독재를 일삼으며 기본권을 유린한 데에서 기인한다. 그렇다면 노조는 사조직이라고 할 수 있는가? 또 사조직이라면 영리조직인가 비영리조직인가? 이에 대해서 고찰하고자 한다.​▶본론군인노조란, 문자 그대로 군인들이 조직한 노조이다. 이 문장만 본다면 무슨 당연한 말을 하는가 싶을 것이다. 그러나 그 내막을 들여다보면 군인노조가 단순히 군인들이 조직한 노조로 성립할 수 있는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첫째, 군인(여기서는 병(兵)을 의미함)의 신분에 대하여 생각해보아야 한다. 군인의 신분에 따라 노조의 설립 가능성 여부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징병제 하에서의 군인과 모병제 하에서의 군인의 법적인 신분의 차이 여부가 있는지, 있다면 그 차이가 무엇인지 및 그 차이가 어디서 기인하는가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동시에 직업군인의 노조의 설립은 허용되는가, 또 허용된다면 어디까지 허용할 수 있는가를 검토할…
정치 회원투고 장 현규 2021.10.23 추천 0 조회 223
사회성도 현직경험도 없고, 독자연구로 쓰여진 출처미상의 글 짜집기로 아는 ‘척’ 만 하는, 속칭 ‘좆문가’ 는 국련에도 존재한다.당연한 일이다. 공직이나 국가지도자의 ‘ㄱ’ 자도 겪어보지 못한 국련인들이 정확한 방법론과 노하우를 알겠는가? 그걸 알면 최소한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사회과학 학회 하나 정도는 세울 수 있을 것이다.사실 그것 자체로 문제는 아니다. ‘모르는 게 약’ 이라는 속담도 있듯, 차라리 그것을 일종의 ‘로컬 룰’ 로 삼고 판단하여도 우리 모두가 동의한 한 문제는 없다.그러나 진정한 문제는 그 ‘로컬 룰’ 에 대해, 그들 자신조차도 잘 모르고, 그 ‘로컬 룰’ 을 암암리에 존재하는 친목 써클을 챙기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할 줄만 아는 이들이 존재한단 것이다.군사, 경제 등 세계관 전체에 판정을 요하는 문제에 대해서, 알고리즘이 존재하긴 하는가? 대다수는 그 여부조차 모른다. 기본적으로 판정이라 함은 공정해야 한다. 그러하지 않으면 그것은 일부 또는 대다수의 연재자를 특정 집단의 ‘재미있는’ 연재를 위해 소모하는 소모품으로 여긴다는 것이다.그러나 알고리즘이 없는 판정은, 고의든 아니든 불공정할 수밖에 없다. 고의가 아니라는 것도 결국 특정 국가나, 특정 문화, 특정 체제에 대한 선입견이 개입된 것일 수도 있으며 고로 모두에게 동일한 조건은 아니다.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현실의 국가와 사회는 철저히 분업화되어 있다. 대통령이 군사학 강의를 들을 의무는 없으며, 군인이 국제정치학 강의를 들을 의무도 없다. 그러나 1인 1국 체제는 모든 통치를 연재자에게 떠넘긴다. 심지어 수십 개의 사단이나 연대 등의 전투객체를 컨트롤하라고까지 시킨다. 문명에서도 유닛이 수십 개면…
Chlorine 2021.10.22 추천 1 조회 1064
화춘잉(華春瑩) 외교부 대변인이 지난 27일 미국이 소위 ‘민주주의 정상회의’를 규합하는 것은 인심을 얻지 못할 것이라며 미국은 자신에 대한 정확하고 객관적인 평가를 가져야 하고 걸핏하면 민주주의의 대변자로 자처해선 안 된다고 일침했다.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이 지난 26일 미국 주도로 열린 ‘민주주의 정상회의’는 냉전적 사고라며 이는 미국의 이념을 인정하지 않는 나라들을 겨냥해 발동한 ‘신십자군전쟁’이라고 주장했다.화 대변인은 이날 열린 정례 기자회견에서 이에 대한 중국의 입장을 묻는 질문에 “라브로프 외무장관의 관점에 전적으로 찬성한다”면서 “미국이 이른바 ‘민주주의 정상회의’를 규합하는 실질은 이데올로기로 선을 긋고 집단정치를 벌이는 것으로 분열과 대립만 일으킬 뿐이며,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는 것으로 인심을 얻지 못할 것”이라고 강조했다.화 대변인은 “우리가 수차례 말했듯이 민주주의를 판단하는 핵심은 국민의 기대와 필요, 열망에 부합하는지와 국민에게 실제적인 이익을 가져다주는지 여부이지 구호만 외치는 것이 아니며 실제 효과를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미국은 1%가 소유하고, 1%가 다스리고, 1%가 누린다. 이것이 민주주의인가? 미국 정치는 분열되고, 극단화되었으며, 하나의 미국은 다른 미국을 반대하고, 정부 지지율이 채 50%도 되지 않는다. 이것이 민주주의인가? 국민을 속이고 국민의 신뢰를 남용하고 각종 공약을 난발하고 실행하지 않는다. 이것이 민주인가? 거짓말과 유언비어를 날조해 외국에 전쟁을 일으켜 보통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고 빈곤에 빠뜨리면서 방산업체나 대자본가들의 배를 불려준다. 이것이 민주주의인가? 무수히 많은 조지 플로이드를 경시해 숨을 쉴 수 없게 만들고 무수히 많은 민간인을 경시해 총기 폭력으로 죽게 만들면서 정부는 복지부동하다. 이것이 민주주의인가? 자신이 잘사는…
정치 스크랩 [인물] 정대성 2021.10.20 추천 0 조회 1651
18일 열린 외교부 정례 기자회견에서 한 기자가 “보도에 따르면 미국 동부시간 10월 15일, 웬디 셔먼 미국 국무부 부장관이 워싱턴 연설에서 미국의 대(對)중 입장은 명확하며, 미국은 필요하다면 중국과 경쟁하고, 미국과 전 세계 이익에 부합할 경우에는 중국과 협력도 하며, 필요하다면 중국에 도전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은 이를 어떻게 보는지”라고 질문했다.이에 자오리젠(趙立堅) 외교부 대변인은 “미국의 해당 발언은 늘 말하던 이른바 ‘경쟁’ ‘협력’ ‘대립’을 다시 언급한 것이지만, 그 본질은 경쟁을 내세워 중국을 제압하려는 ‘속임수’”라며, “그 저변에는 미국이 중국을 전략적 경쟁상대로 보는 잘못된 인식이 깔려 있다”고 지적했다.자오 대변인은 또 “중국과 미국의 상호인식 및 상생 방안은 양국 국민들의 근본 이익과 직결되고, 지역 국가와 국제사회에서도 촉각을 기울인다”면서, “중국은 일관되게 중미 양국이 폭넓은 공동이익과 거대한 협력공간을 가지고, 경제무역 등 분야에서 분명 경쟁하는 부분도 있겠지만, ‘경쟁’으로 중미 관계를 전부 정의할 수 없다는 의견”이라고 밝혔다.그러면서 “미국이 계속해서 중국을 폄하하고 먹칠하는 것은 ‘경쟁’이 아니고 또 탈동조화로 공급을 중단하고, 국가안보를 핑계로 중국 기업을 압박하는 것도 ‘경쟁’이 아니며, 중국 주변에서 계속해서 군사력을 강화하고, 각종 반중 ‘소그룹’을 조직하는 것 역시 ‘경쟁’이 더욱 아님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자오 대변인은 “미국은 냉전 제로섬 사고를 버리고, 중국과 중국 발전을 올바르게 바라보며, 중미 관계의 호혜윈윈적 본질을 깊이 인식해, 이성적이고 실무적인 대중 정책을 취해야 한다”면서, “미국은 중국과 함께 대화와 소통을 강화하고, 호혜협력을 확대하며, 원만한 이견 조정으로 상호존중, 평화공존, 협력윈윈의…
정치 스크랩 [인물] 정대성 2021.10.20 추천 0 조회 1591
국제사회는 중국 5개년 계획에 주목하면서 대중(對中) 협력기회를 모색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중국 특색 사회주의 민주정치 실천 성과를 더욱 이해할 수 있다. ‘14·5’(제14차 5개년 계획)와 2035년 장기 비전 목표 강요에 집중한다면 계획 건의 초안부터 계획 강요 초안 편제를 비롯해, 올해 전국 양회(전국인민대표대회와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기간 대표위원의 계획 강요 초안 심사 논의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중국식 민주주의의 생동적 실천을 충분히 인지할 수 있다.왜 중국식 민주주의는 통하는 데다 효과까지 있을까? 이 문제에 많은 이들이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고대와 현대는 물론 국내외 여러 실천 사례를 통해 인민이 주인되는 것을 보장하고 지지하며, 합법적 선거로 인민 대표가 국가 및 사회 생활에 동참할 수 있도록 관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고, 선거 외 제도와 방식으로 인민들이 국가 및 사회 생활에 참여할 수 있도록 관리하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하는 것을 보여준다. 서방 일부 국가의 민주적 실천에서 인민들은 그저 투표권만 있지 폭넓은 참여권은 없기 때문에 투표 당시에만 고민할 뿐 투표 후에는 수면 상태에 빠져 버린다. 이러한 형식주의적 민주주의가 초래한 국가 관리의 국한성은 당연할 결과일 뿐 아니라 피할 수 없다. 문제의 핵심은 반드시 모든 것을 인민에 의지하고 인민을 위하는 것을 이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을 통해 중국식 민주주의가 인민이 주인되는 것을 보장하고 지지할 뿐 아니라 민중의 지혜와 역량을 거버넌스 효능으로 전환해 수많은 인민들의 획득감, 행복감, 안전함이 더욱 충만하고, 보장되고 지속되었다는 것이 입증됐다. 이를 주시하는…
정치 스크랩 [인물] 정대성 2021.10.19 추천 0 조회 2249
• 유럽인들은 18세기 말까지 동아시아인들을 백인으로 불렀다.• 그러나 중국인과 일본인이 문화적 동화에 저항하자 그들은 모두 어두워졌다.-백인과 그들 자신들의 눈에서동아시아인들은 어떻게 황인이라고 불리게 되었는가? 그것은 세계를 인종적으로 지도를 그리려는 일련의 매핑의 결과였고 사람들의 실제 피부색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사실, 초기 서양 여행자, 선교사 또는 대사(그리고 매우 자주 그렇지 않았다, 왜냐하면 인종 표식자로서의 피부색이 19세기까지 완전히 자리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에 의해 안색이 언급되었을 때, 동아시아인들은 거의 항상 백인으로 불렸으며, 특히 16세기 최초의 근대적 접촉 시기에는 백인으로 불렸다. 그리고 여러 번, 그 사람들은 “우리처럼 하얀”이라고 불렸다.황인이라는 용어는 18세기 말경에 가끔 나타나기 시작하다가 19세기에 서구의 상상력을 실제로 장악했다. 그러나 17세기에 이르러 중국과 일본인들은 출판된 교과서에서 “어두워”에 지고있었고, 그들이 무역, 종교, 그리고 국제 관계의 유럽 시스템에 참여하기를 꺼릴 것이 분명해지자 점차 그들의 지금까지의 백색을 잃기 시작했다.다시 말해서 그들을 백인이라고 부르는 것 역시 단순한 인식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니었고 피부색보다 그들이 추정하는 문명, 문화, 읽고 쓰는 능력, 순종 수준(특히 기독교화가 되어야 하는 경우)와 관련이 있었다블룸바흐의 구상 중 가장 중요한 측면은 동양 모든 민족이 처음으로 명백한 인종 범주-몽고족으로 뭉뚱그려졌다는 점이었는데, 여기서 몽골족이라고 하는 것은 정확히 같은 순간에 도입된 훨씬 더 악명 높은 자매 용어인 코카시안처럼 위협적이고 운명적인 존재가 되는 것이었다. 1795년에 아시아인들이 황인이 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몽골인들이 그랬다.따라서 “노란색”은 다른 색깔과 관련해서만 의미를 갖는…
정치 회원투고 [인물] 정대성 2021.10.17 추천 0 조회 1981
중국 일대일로가 던지는 질문미·중 무역전쟁은 무역에 국한되지 않는다. 제4차 산업혁명을 누가 주도할 것이냐 하는 기술 표준 전쟁이요, 글로벌 정세의 주도권을 둘러싼 헤게모니 전쟁의 성격도 있다. ‘일대일로(一帶一路)’라는 중국식 세계화 전략에 대한 미국의 ‘응징’이라는 속성도 있다. 그래서 주목을 받는 게 바로 일대일로의 사상적 바탕인 ‘천하주의(天下主義)’다. 중국의 철학 담론인 천하주의가 요즘 중국 학계의 뜨거운 화제로 등장한 이유다. 논쟁 속으로 들어가 보자.시진핑이 국가 권력을 장악한 건 2012년 열린 제18차 당대회에서였다. 당 총서기로 오른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소련 공산당 해체의 원인을 찾는 것이었다. 결론은 부패, 그리고 이념의 동요였다. 집권 이후 줄곧 ‘부패와의 전쟁’을 치른 것도, 2017년 19차 당대회에서 ‘당 건설’에 나선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공산주의 이념과 규율을 엄격히 적용함으로써 당의 정치력을 회복하겠다는 뜻이다.시진핑의 또 다른 국가 사업은 ‘중국몽(中國夢)’과 ‘일대일로’다. 중국몽은 ‘중화민족의 위대했던 시기를 복원하겠다’는 국가 비전이었고, 일대일로는 육상과 해상 실크로드를 복원하는 새로운 중국식 세계화를 뜻했다. 반부패와 당 건설, 그리고 중국몽과 일대일로. 이들은 서로 뿔뿔이 흩어져 진행되는 듯하지만 사실은 하나의 철학적 담론으로 모아진다. 학계의 뜨거운 토론 주제로 등장한 ‘천하주의’가 그것이다. 천하주의는 ‘인종 및 지리적 경계를 초월하는 문화와 가치 체제(a regime of culture and values)’정도로 정의할 수 있다. ‘중국식 코스모폴리타니즘’인 셈이다. 반부패와 당 건설은 이를 위한 내적 역량의 결집 작업이었고, 일대일로는 천하주의의 표현이다. 강했던 한(漢)나라, 융성했던 당(唐)시기를 복원하자는 중국몽은 천하주의의 목표로 해석할 수 있다.2005년 자오팅양(趙汀陽)…
정치 스크랩 [인물] 정대성 2021.10.15 추천 0 조회 2748
우이판(크리스)의 체포는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사전 통보에서 베이징시 경찰은 수사를 계속하겠다고 확실히 밝혔다. 하지만 나는 그의 행동이 철저히 조사되어 사실로 밝혀지리라고 크게 기대하지는 않는다. 그에 대한 두메이주(都美竹)의 고소 내용을 보면 확실히 성폭력 사건이 성립된다는 걸 알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로부터 어떠한 객관적인 증거를 확인하기도 어렵다. 지인의 성폭력과 권력 침탈은 여전히 법적으로 완전히 밝혀지지 않은 상태로 남아있다. 더구나 우이판은 톱스타이고, 경찰은 분명 조사 압력을 받지 않을 것이다. 만약 경찰이 수사하지 않는다면 피해자와 대중은 방법이 없다.연예 잡지 표지에 실린 우이판이는 놀라운 승리이다. 이 사건에서 경찰 당국은 우리가 주장해온 것들을 받아들였고, 이로 인해 우이판의 지지자와 반대자에게 승패가 갈렸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따라서 이 순간에 대한 축하는 궁극적으로 강대하고 지배적인 정부 권력을 다소간 칭송하는 것은 아니어야 할 것이다. 우리가 믿을 수 있는 권력은 결코 아니지 않은가.나는 친구들과 함께 축하의 시간을 보냈다. 그날 밤 페미니스트들의 그룹채팅방에는 홍바오 폭탄(중국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SNS 위챗의 기능으로, 용돈을 랜덤으로 퍼뜨릴 수 있다. 중국의 전통문화적 요소와 결합된 세배돈 기능 같은 것이라 볼 수 있다.)이 쏟아졌다. 듣자하니 내가 보낸 홍바오가 누구보다 많았다고 한다. 어쩌면 실형 선고를 받지 않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우이판은 이제 더 이상 그의 신전으로 돌아올 수는 없을 것이다. 우이판은 지금까지 미투운동이 쓰러뜨린 가장 유명한 인물이며, 이 성취로 인해 거리 곳곳에서는 “우이판이 구속됐다”는 말이 나올…
정치 스크랩 [인물] 정대성 2021.10.13 추천 0 조회 3055
이슬람 테러리즘이 발생하면 으레 이런 말이 따라붙는다. “저 테러리스트들은 이슬람의 가르침을 왜곡하며, 이슬람을 자신들의 권력을 위해 이용하는 이들에 불과하다.” 무슬림이 아닌 논자들이 이런 말을 할 때는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탈레반에게 위의 이야기를 풀며 논쟁을 시도해 본다고 생각해 보자.그들은 자신들 신념이 얼마나 굳건한지를 과시할 것이고, 다른 무슬림들이 타락한 삶을 살고 있다고 비난할 것이다. 중국에 대해서도 비슷한 구도를 확인해 볼 수 있다. 우리는 “공산주의는 그저 붉은 자본가들이 권력을 위해 던지는 수사에 불과하다”는 말을 으레 한다. 하지만 중국 공산당의 충실한 당원이 이런 말을 듣는다면 중국의 현재 자본주의적 체제가 공산주의적 비전에 어떻게 부합하는지 일장 연설을 늘어놓을 것이다.요는 탈레반이 믿는 것이 진짜 이슬람인가, 중국 공산당이 주장하는 것이 진짜 공산주의인가를 따지는 것이 아니다. 자신들은 그 신념을 따르고 있다고 그들이 강하게 믿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다. 신념이라는 이름의 인식 틀은 가치 평가 기준을 만들고 명분을 형성하고, 거기서 최종적인 행동이 발생한다.우리는 자신의 상식에 심히 배치되는 이들을 보면, ‘숨은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하고는 한다. 상대방의 세력이 더 클수록 그러하다. 우리의 인식 틀에 비춰 보았을 때 저런 말도 안 되는 신념을 제정신으로 믿고 있다고 받아들일 수 없어서 그러는 듯하다. 그래서 우리는 상대방을 광인이거나 혹은 우리에게 쉽게 납득되는 ‘이득’을 위해 신념을 ‘이용’하는 사람으로 설명한다.하지만 상대방도 우리를 볼 때 마찬가지로 생각한다는 사실은 망각된다. 빈 라덴은 미국이 주장하는 성평등의 진짜 목적은 여성을 이윤을…
사회 스크랩 [인물] 정대성 2021.10.12 추천 0 조회 2397
지난 일요일, 나는 쓰촨 성 청두 시내에서 미국인 신사와 함께 있었는데, 우리가 대화하는 동안 그는 그의 중국 부인이 천안문 광장 학살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다고 언급했다. 나는 그것이 결코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며, 그것은 서구의 미디어 허위사실 캠페인이며, 왜 중국 언론이 거짓말의 전파를 허용해야 하는가라고 제안했다. 사실, 천안문 광장에서 어떤 대학살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은 베이징 근처에 살고 시위에 참여한 사람들을 포함한 대다수의 중국인들을 놀라게 할 것이다.​천안문 광장에서는 정말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호주의 작가인 웨이 링 추아는 그의 잘 연구되고 분석된 책인 천안문 광장 “대학살” Tiananmen Square “Massacre”?: The Power of Words vs. Silent Evidence (Amazon, 2014)에서 서구 대중 매체와 서구 정부의 이야기에 도전한다. 그것을 읽는 것은 서부 대중 매체의 잘못된 정보를 삼킨 모든 사람들에게 분명 일시적으로 멈추어 설 것이다.​추아(Chua)는 서양의 대중매체의 잘못된 정보를 폭로하고 사실에 부합하는 이야기를 설득력 있게 제공한다.• 천안문 광장 시위는 민주주의에 관한 것이 아니라, 열악한 경제 상황에 항의한 시위였다.• 1989년 6월 4일 천안문 광장에서 학살은 없었다.• 시위자들은 무장하지 않았다.• 폭동을 일으킨 것은 폭력 시위대였으며, 군인들은 아니었다.• 서방 언론인들은 말잔치 설명을 제공했지만, 사진 및 비디오 증거는 부족하다. 예를 들어, 추아는 BBC가 1989년에 죽은 그 어떠한 사람의 영상도 없이 말의 힘을 통해 “매 사살”이라는 인식을 어떻게 만들어냈는지를 설명한다.• 일부 학생 리더의 사악함 “실제로 우리의 소원은 피를 보는 것이다; 그것은 결국 그들의 시민들을 학살할…
정치 리뷰 [인물] 정대성 2021.10.12 추천 0 조회 2185
이 글을 다 쓰고 발견한 흥미로운 제목의 책그러나 본문 내용과는 전혀 상관없다.18세기 중국 청나라 무슬림이 중국 유학자들에게이슬람이란 종교가 무엇인지 설명하기 위해 쓴 『청진석의(淸眞釋義)』라는 책의 한국어 번역본이라고 한다. 유교와 탈레반, 겉보기에는 서로 아무런 관련도 없을 것처럼 보인다. 20세기 이후 아프가니스탄의 혼란 속에서 등장한 탈레반과 공자가 창시하여 20세기 이전까지 동아시아의 보편 윤리로 작동한 유교가 서로 대체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탈레반들은 공자나 유교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도 없을테고, 조선시대의 유생과 선비 대부분 또한 아프가니스탄이라는 지역이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을 것이다. 그러나 서로 아무 상관이 없어 보이는 신기하게 결합한 채 사용된다. 바로 ‘유교 탈레반’이다. 대구경북 지역의 지역일간지인 매일신문에 따르면 ‘유교 탈레반’은 “조선 정치 이념이던 ‘유교’와 자살테러 등으로 악명 높은 아프가니스탄 무장 이슬람 정치단체 ‘탈레반’의 합성어”로 “보수적 유교 사상이 극에 달한 사람이나 단체를 비꼬아 이르는 신조어”다. 이처럼 인터넷상에서 처음 등장한 ‘유교 탈레반’이라는 단어는 언론에까지 진출했으며, 해외 인터넷 사이트 차단 정책을 비판하는 중앙선데이의 2019년 2월 16일자 칼럼에서도 그 쓰임을 확인할 수 있다. 심지어는 “17세기 조선은 왜 일본과 달리 성리학 ‘탈레반’의 나라가 됐나”라는 인터뷰 기사도 있다(정작 인터뷰 내용을 읽어보면 제목에서 말하는 바와는 완전히 논조가 다르다. 그냥 기자가 실제 인터뷰 내용과 의도와는 무관하게 자극적인 제목을 뽑아낸 것으로 보인다.) 조선 왕조가 근대화와 독립에 실패해 결국 일제 식민지로 전락한 이후 조선의 지배 사상이라고 할 수 있는 ‘유교’는 한국 사회에서 사라져야 할 악폐습, 쓸모없는 전통에 대한 맹목적인 집착, 변화를 거부하고 과거에만…
[인물] 정대성 2021.10.11 추천 0 조회 677
미국에서 한국이 새로운 지정학적 상황에 맞춰 독자적 핵무장을 할 수도 있으며, 미국이 이를 지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다트머스대 국제학부의 제니퍼 린드, 대릴 프레스 두 교수는 7일(현지 시각) 워싱턴포스트에 “한국이 핵무기를 만들어야 할까?”란 제목의 글을 기고했다. 중국의 부상과 북핵의 고도화로 한·미 동맹이 약화되고 있으며, 한국의 핵무장만이 이를 해결할 방책일 수 있다는 내용이다.이들은 “(한·미)동맹이 강력한 지정학적 힘에 의해 찢어져 문제에 처해있다”며 “이를 구제하는 방법은 한국이 워싱턴의 대다수가 ‘생각할 수 없는 일’로 간주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독자적 핵 무기고를 개발하는 것”이라고 썼다.“미국이 가장 중요해도 중국은 영원한 한국의 이웃”이들은 한국이 미국을 이용한다고 생각했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시절이 한미 관계를 훼손시켰지만, 더 근본적 문제는 두 가지의 장기적 경향에 있다고 봤다. 그러면서 “첫째는 중국의 부상이 미국과 한국의 외교 정책 우선순위에 균열을 만들고 있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이들은 “중국에 대항하는 비용과 위험성이 커지면서 워싱턴은 동맹들이 그 노력에 동참해 주기를 점점 더 기대한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그런 합의를 한 적이 없다”고 썼다. 또 “그들(한국)에게 미국과의 동맹은 항상 북한에 관한 것이었다. 중국에 대항하려는 노력은 한국이 최대 무역 파트너이자 역내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와의 관계를 해치게 만들 것”이라고 했다.이들은 “중국을 불쾌하게 만드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한국이 미국이 주도하고 인도, 호주, 일본을 포함하는 ‘쿼드’에 참여하기를 주저하는 이유를 일부 설명해 준다”고 했다. “미국은 현재 동아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선수”지만 “중국은 한국인들이 알듯이 영원히 그들의 이웃일 것”이라고…
[인물] 정대성 2021.10.08 추천 0 조회 966
※ 이 글은 2021년 7월 17일 플랫폼c가 주최한 월레포럼 ‘정치화된 바이러스’에서 빈곤사회연대 정성철 사무국장이 발표한 발제와 질의응답을 정리한 것입니다.발표1 : 거리 홈리스와 백신 불평등 / 빈곤사회연대 정성철발표2 : 모두를 위한 공공의료 333 /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서울지부 박경득발표3 : 코로나19와 자본주의, 의료공공성 / 건강권실현을위한보건의료단체연합 전진한사회 : 플랫폼c 박상은 「거리 홈리스와 백신 불평등」 발표정성철 : 현재 통상적인 백신 접종의 과정은 인터넷 예약 → 문자 확인 → 접종 → 자가 휴식으로 이루어진다. 하지만 홈리스의 경우, 상황이 양호한 분들조차 피쳐폰이나 신분증만 갖고 있는 정도가 최대한이라서 대부분의 홈리스는 이러한 접종 과정을 거치지 못한다.다행히 지난 1월 28일 정부는 「코로나 취약시설 대상 백신접종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노숙인 거주 및 이용시설 입소자 이용자 종사자”이라는 이름 하에서 18,000여명을 대상으로 한 대량 백신접종 계획을 세웠고, 서울시에서는 시설 이외 거리홈리스 대상으로도 4월 21일부터 백신접종을 시작했다. 하지만 홈리스행동에서 5월 중 아웃리치를 통해서 거리홈리스 백신접종 실태조사를 진행한 결과 접종률이 29.7%밖에 달하지 못했다. 백신접종에 대한 가짜정보가 유행함은 물론, 접종 자체에 대한 소식도 잘 전달되지 못해 법적으로는 접종가능 대상에 들어오는 분들 중에서 어디서 어떻게 할 수 있는지를 모르는 분들도 많았다. 이 분들은 백신 접종에 관련해서 우려되는 사항으로 “이상반응이 발생했을 때 적절히 대응할 방법이 없는 것” 29.7%, “접종 후 휴식을 취할 장소가 없는 것” 27.7% 등의 이유를 들었다. 또한 기타의견에는 “기존 질환이 영향을 미칠까봐 걱정” “기저질환 있고 관리 안되는 상태에서 맞으면 큰일날까봐” “건강유지가…
사회 스크랩 [인물] 정대성 2021.10.08 추천 0 조회 1029
10월을 맞아 UVS와 산하프로젝트들이 나날히 융성하고 있는 것이 보이는 것 같아 기분이 좋습니다. 이번 해가 거의 3개월이 남지 않았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습니다.​들어가는 말하나 즐거운 점은, 제가 2020년 2월에 양적 목표를 50개로 잡았는데, 어느순간 50개보다 100선을 유지하는 날이 많아지고 요즘은 근 15일간 글이 150선 아래로 떨어진적이 손에 꼽는다는 점이 고무적입니다. 심지어 성장하는 개별국가들과 학회 공헌들을 감안하면 더 늘어나야 하겠습니다. 그만큼 회원들이 많이 늘어났다는 점이고 많은 유입들 속에서 적응하는 인원이 많아졌다는 것 같습니다. 참 감사한 일이고, 여전히 불안불안 합니다만 옛날보다는 여유가 많아진게 꽤 느껴집니다.​그러나 제가 운영을 10여년을 해보며 언제나 느끼지만, 위기는 우리가 알지 못할때 찾아옵니다. 생각해보면 제 인생에서 무언가가 잘 되고 있고 잘 풀리고 있다고 생각할때가 언제나 위기의 시작이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가 좋은 시대에서 경각심을 가지지 않는다면 타락과 매너리즘은 금방 찾아오기 마련일 것입니다. ​세계관의 문제이번 달 동안 우리는 세계관에 대한 많은 문제를 겪었습니다. 그러나 최근들어 이 세계관에 대한 문제가 합의를 보이고 있으며, 어느정도 잘 굴러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련의 모든 정책이 그렇듯이, 울타리를 정해놓고, 울타리를 넘어가지 않는다면 그 곳에서 자유로운 행동을 허가해주는 기조로 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슬롯제는 앞으로 명확히 지켜질 것입니다. 사설세계관 25개, 일반세계관 15개의 원칙은 지켜질 것입니다. 대신 이 슬롯제라는 울타리를 지킨다는 한에 많은 세계관의 창설을 허가해줄 생각입니다. 많은 기획안들이 있던 것으로 압니다. 나치가 세상을 지배하는 세계관이라던가, 세계 2차대전 세계관이라던가, 아니면 중세…
기타 [인물] 정대성 2021.10.07 추천 0 조회 759
표현의 자유와 혐오저자 안유민자유는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많이 쓰이는 단어이다. 영국의 식민지 버지니아 회의의원이던 패트릭 헨리는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Give me liberty, or give me death!)라는 말을 남겼고, 자유당, 민주자유당, 자유민주연합, 자유선진당, 자유한국당과 같은 당의 이름에도 자유가 들어가며, 우리나라 조선왕조실록에도 이 단어가 310번 나왔다. 이처럼 우리의 삶과 자유는 때놓을수 없는 관계이다.자유의 정의는 다음으로 나뉜다. Freedom의 정의는 the condition or right of being able or allowed to do, say, think, etc. whatever you want to, without being controlled or limited(통제되거나 제한되지 않고, 당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거나, 말하고, 생각하는 것 등을 허락할 수 있는 조건) 이라 나와있으며, Liberty의 정의는 the freedom to live as you wish or go where you want(원하는 대로 살거나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는 자유)라 정의 내리고 있다. 그리고 국어사전에는 외부적인 구속이나 무엇에 얽매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상태라고 나와있다.그중에서 표현의 자유는 이와같이 정의내리고 있다. 표현의 자유(freedom of speech, freedom of expression)는 개인 또는 단체가 자유롭게 자신의 견해와 사상을 표출할 수 있는 기본적 권리이다. 민주주의는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일체의 검열이나 처벌을 원칙적으로 금지한다. 즉, 인간은 무슨말을 하여도 타인이 그것을 막고 억압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표현에는 혐오표현도 존재한다. 그 혐오표현도 과연 표현의 자유라고 할수있을까? 그 사례를 알아보자.이라크전에서 사망한 한 군인의 장례식장에 일군의 시위대가 피켓을…
철학 회원투고 안유민 2021.10.06 추천 0 조회 284
홍콩시민지원애국민주운동연합회(香港市民支援愛國民主運動聯合會; Hong Kong Alliance in Support of Patriotic Democratic Movements of China; a.k.a. 지련회) 상무위원회가 1989년 창립 이래 32년만에 해산을 결의하였다.지난 8월 21일 해산 여부에 대한 내부 토론을 거친 지련회 상임위원회는 오는 9월 25일, 해산안에 대한 회원단체 투표에 들어가기로 했다.또한 지련회는 웹사이트와 페이스북, 트위터, 유튜브 등 소셜미디어에 게시한 게시물을 모두 삭제하고, 계정 운영을 중단했다. 30년 넘게 매년 개최해온 집회 관련 동영상, 1989년 중국 천안문 시위 생존자와 피해자 가족 인터뷰 자료 등 수천 건이 지워졌다. 이는 경찰 당국의 명령 때문인데, 경찰은 “지련회의 게시물이 홍콩보안법 위반 혐의가 있다”고 밝히면서도, 구체적으로 어떤 콘텐츠가 불법인지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았다. 이런 방식의 포괄적이고 모호한 설명은 시민사회의 혼란과 운동의 위축을 야기한다.기실 지련회 해산은 그 수순이 예고된 것이었다. 2020년 7월 홍콩 국가보안법이 통과된 후, 지련회 주석 리척옌(李卓人)은 지련회가 갖고 있는 모든 개인정보를 파기하고, 그간 지련회의 여러 출판 활동 결과물을 데이터베이스화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면서 “앞으로 높은 탄압의 시간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진지를 지키며 우리가 갖고 있는 권리를 행사하는 것은 이미 일종의 항쟁입니다”라고 덧붙였다.해산을 추진하겠다는 발표에도 불구하고 홍콩 경찰은 지련회에서 활동하던 여러 활동가들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했다. 지난 8월 25일 경찰로부터 자료 제출을 요구받은 지련회 활동가들은 열흘이 지난 9월 5일 기자회견을 열고, “경찰이 요구하는대로 자료를 제출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활동가들은 “지련회는 외국세력의 대리인이 아니”며, 경찰이 아무 증거 없이…
정치 스크랩 [인물] 정대성 2021.10.03 추천 0 조회 281
※ 역주 : 지난 4~6월 중화권 인터넷에는 ‘탕핑’, ‘탕핑족’, ‘탕핑주의’ 등의 신조어들이 등장해 여론을 뜨겁게 달구었다. 이 글은 「躺平:城市新贫困阶级的非暴力不合作运动」을 번역한 후 적절히 교정한 것으로, ‘탕핑’에 대한 해설이다. 저자는 대륙에서 활동하는 익명의 필자로, 짐작컨대 <적과 흑>에 나오는 줄리앙에서 따온 것으로 보인다. 저자 나름의 해석이 개입되어 있으므로 ‘탕핑’ 논란에 대한 입장 중 하나로 참고해볼만하다고 여겨 플랫폼c에 소개한다.글 : 줄리앙번역 : 홍명교 (플랫폼c 활동가) *****‘탕핑(躺平)’은 이번에 처음 등장한 신조어는 아니다. 일찍이 2011년, 중국의 포털사이트인 바이두 커뮤니티(百度贴吧)에 ‘반혼바(反婚吧)’라는 게시판이 만들어졌을 때 이미 등장한 바 있다. 2016년에는 연예인 팬덤 내부에서 ‘탕평임조(躺平任嘲; ‘아무렇게나 누워 비웃다’)’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다. [역주 : 당시 이는 “열성 팬들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마라”, “그냥 비웃기나 해라” 정도의 뉘앙스를 가졌다. 예를 들어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이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고 등장했다면 애꿎은 스타일리스트 탓하지 말고 그냥 누워서 빈정거리기나 하자”는 뉘앙스를 뜻했다.] 또 선전의 임시직 노동자 집단 ‘싼허다션(三和大神)’의 이틀 일하고 닷새 쉬는 삶(做二休五)에 대한 조롱과 자조 섞인 풍자 글들에서 ‘탕핑’은 이들 대도시 신세대 농민공들이 구조적인 착취에 저항하고자 취했던 일종의 독특한 생활 방식이기도 했다.[역주 : ‘싼허다션’의 “이틀 일하고 닷새 쉬는 삶”은 결코 유유자적하는, 아름다운 삶을 뜻하지는 않는다. 2010년대 중반 이후 중국 연안지대의 대도시에서의 일자리도 그만큼 축소되고 있기 때문에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운 현실, 나아가 신세대 농민공들이 고된 노동에도 불구하고 삶을 개선하기 어려워 자조하게 되는 현실을 반영한다. 싼허다션의 이와…
정치 스크랩 [인물] 정대성 2021.10.02 추천 0 조회 217
중국 국무원 신문판공실이 8월 12일 ‘전면적 샤오캉 사회 실현: 중국 인권사업 발전의 눈부신 장’ 제하의 백서를 발간했다.중국은 백서에서 “전면적 샤오캉 사회 실현은 중국 공산당과 중국 정부가 인민의 복지 증진과 인권 보장 수준 향상, 국가 현대화 달성을 위해 실시한 중요한 국가 발전 전략”이라면서 “중국의 전면적 샤오캉 사회 실현은 인권 기초와 인권 내실을 다졌으며 인권 시야를 넓혔고, 중국 인권사업의 새로운 장을 열었고, 인권의 전면적 발전과 전 국민 공유를 의미하며, 인간 존중과 인권 보장의 기적을 창조했다”고 자평했다.또 “전면적인 샤오캉 사회 실현은 인권사업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고, 절대 빈곤을 퇴치해 기본적인 생활 수준의 권리를 보장했으며, 발전으로 인권과 경제∙사회∙문화적 권리를 증진했고, 법치를 실행해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를 수호했으며, 사회 공평을 촉진해 특정 집단의 권익을 보장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백서는 “중국 인구는 세계 인구의 약 20%를 차지한다. 중국의 전면적 샤오캉 사회 실현은 세계 인권사업 발전사의 중요한 이정표”라면서 “전면적인 샤오캉 사회 실현의 위대한 과정에서 중국이 창조한 인권 존중과 보장의 성공적인 방법과 경험은 인류의 행복 증진에 중국 지혜를 기여했고 중국 방안을 제공했다”고 주장했다.백서는 “인권 보장은 더 나은 것만 있을 뿐 최선은 없다”면서 “전면적 샤오캉 사회 실현은 중국 인권 발전 진보의 새로운 출발점을 마련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전면적 사회주의 현대화 국가를 건설하는 새로운 여정에서 중국 공산당은 새로운 발전 단계를 파악하고 새로운 발전 이념을 관철해 새로운 발전 구도를 구축하고 질적 발전을 추진하면서 계속해서 인민들을…
국제 스크랩 [인물] 정대성 2021.09.27 추천 0 조회 917
(1) 불법 전쟁 일으켜 세계 질서 교란미국은 세계 역사상 가장 전쟁을 좋아하는 국가이다. 1776년 독립 선언 이후 240여 년의 역사 중 미국이 전쟁에 참여하지 않은 기간은 20년이 채 안 된다. 불완전한 통계에 따르면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2001년까지 세계 153곳에서 248차례의 무력 충돌이 일어났으며 그중 미국이 일으킨 것만 201차례로 81%를 차지했다. 미국이 참여한 이 전쟁들 중에는 유엔을 조종해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아 ‘합법적 루트’를 통해 대외적으로 군사적 타격을 가하는 경우도 있고, ‘인권’을 명분으로 제멋대로 ‘불법 전쟁’을 일으킨 경우도 많다.냉전 이후 미국은 중동 지역에서 가장 많이 군사력을 행사했다. 유엔 안보리의 승인을 받지 않고 심지어 미 의회의 승인조차 거치지 않은 상황에서 미 정부는 아프간, 이라크, 리비아, 시리아 등의 전쟁을 일으키거나 참여해 무수한 생명을 앗아갔으며 셀 수 없이 많은 민간인이 죽거나 다치고 재산 피해를 초래했다. 수천만 명이 터전을 잃고 세계 난민으로 전락했으며 지역민의 생명권, 생존권, 발전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끔찍한 인도주의적 재앙을 일으켰다. ‘천부적 사명’의 미국이야말로 세계를 교란하는 장본인임이 드러났다.(2) 제재 몽둥이 휘두르며 권력 횡포 부려일방적인 제재는 미국이 오랫동안 자신의 강권 지위에 의존해 정치적 횡포를 부리는 중요한 무기였다. 오랫동안 미국은 이란, 시리아, 베네수엘라 등에 대해 일방적인 제재를 강행해 이들 국가에 인도주의적 위기를 초래했다.미국은 2018년 5월 이란 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 탈퇴를 일방적으로 선언한 뒤 대이란 제재를 재개하고 추가 제재를 단행했다. 코로나19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하고 중동의 코로나19 상황이 날로 심각해졌음에도…
국제 스크랩 [인물] 정대성 2021.09.27 추천 1 조회 944
파라그 카나는 점점 더 아시아인들이 실용적이고 결과 지향적인 통치를 선호하고 있으며 정치인들보다는 공무원의 지배를 받는 것을 선호한다고 말한다영원히 기억될 2016년 이후, 대부분의 논평가들은 2017년에 유럽에서 더 많은 포퓰리즘 선거 승리를 거둘 것이라는 것을 기정사실화했으며, 트럼프의 계획된 무역정책으로 인한 세계적 여파는 말할 것도 없다. 세계 경제 성장 둔화와 지정학적 긴장 고조 등이 맞물려 1차 세계대전과 대공황을 촉발시킨 민족주의와 보호무역주의로 세계가 가고 있다고 가정하기는 너무 쉽다.그러나 서방세계에게 참인 것이 정부가 일반적으로 실용주의적인 노선을 견지해 온 동양을 무너뜨릴 이유는 없다. 그 차이는 단지 정치 그 이상이다; 그것은 시스템에 관한 것이다. 서구 민주주의가 삐걱거리고 있는 동안, 아시아의 더 기술관료적인 정부들은 기반 시설, 교육 및 일자리의 근본적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것은 아시아와 세계 모두에게 좋다.서양에게 참인 것이 동양을 탈선시킬 이유가 없다.서구와 특히 미국의 이야기에서, 깊은 안일함이 만연하여 정치와 통치, 민주주의와 전달, 그리고 과정과 결과를 혼동하고 있다. 좋은 정부들은 똑같이 입력과 출력에 초점을 맞춘다. 그들의 합법성은 정부가 선출되는 과정과 시민들이 보편적으로 원하는 것을 전달하는 과정, 즉 견고한 인프라, 공공 안전, 깨끗한 공기와 물, 신뢰할 수 있는 교통, 사업하기 쉬운 환경, 좋은 학교, 질 좋은 주택, 신뢰할 수 있는 육아, 표현의 자유, 일자리에 대한 접근, 그리고 시민들이 보편적으로 원하는 것을 전달하는데 있다. 아시아의 기술 중심적인 사고방식으로는 이런 일들을 하는 데 지연하는 것은 그 자체가…
정치 스크랩 [인물] 정대성 2021.09.26 추천 0 조회 1279
우리는 지금 ‘중세’로 회귀하는 걸까요?장대익 교수가 첫 번째 말문을 열었다. 장 교수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를 졸업하고 서울대 과학사및과학철학협동 과정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런던정경대학(LSE) 과학철학센터에서 생물철학과 진화심리학을 연구했다. 최근 한국 지식사회에서 큰 관심을 모은 <통섭>(사이언스북스 펴냄)의 역자이기도 하다.장대익 교수는 2006년 7월부터 1년간 미국 보스턴에 있는 터프츠대 인지연구소에서 대니얼 데닛 교수와 함께 연구를 했다. 이 첫 번째 편지는 그 당시에 초고가 작성된 것이다. <편집자>신재식, 김윤성 선생님께별고 없으신지요. 한국엔 제법 큰 눈이 왔다지요? 여기 보스턴에 온 지 벌써 넉 달이 넘었습니다. 듣기로는 여기에 눈이 많이 오면 1미터 정도 쌓여서 학교도 휴교하고 그런다는데 아직은 그런 일이 없었습니다. 저희 아이들은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답니다.이제 며칠 후면 크리스마스입니다. 여기서는 10월 말에 핼러윈(만성절 전날인 10월 31일에 행해지는 축제 : 필자), 11월 말에 추수감사절, 그리고 12월에는 크리스마스…. 하나가 끝나면 곧바로 다음 홀리데이(Holiday)를 준비하는 식입니다. 11월에 추수감사절이 끝나니까 바로 거리에 크리스마스 장식이 걸리더군요.물론 이 모든 절기들이 상술로 포장된 지 오래지만 미국은 적어도 문화적으로는 ‘기독교 국가(Christian nation)’라는 생각이 듭니다. 실제로 종교 정체성 조사 결과(2001년에 이루어진 것입니다.)를 보니까, 자신을 기독교인이라고 대답한 사람은 미국 국민의 76.5%, 무종교라고 답한 사람은 13.2%, 유대교는 1.3%, 불가지론자는 0.5%, 무신론자는 0.4%였습니다(☞결과 보기). 불가지론자와 무신론자를 합해도 1%가 넘지 않고, 기독교는 80% 정도나 되니 미국은 정말로 기독교 국가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바로 몇 달 전(2006년 9월)에 있었던 갤럽 조사 결과는 더…
과학 스크랩 [인물] 정대성 2021.09.25 추천 0 조회 2052
어떤 측면에서, 그리고 어떤 관점에서 이야기를 하던 간에, 문화대혁명과 관련해 이야기할 수 있는 가장 분명한 사실 가운데 하나는 바로 그것이 철저한 ‘실패’로 귀결됐으며, 그로 인해 혁명에 대한 거대한 ‘환멸’을 낳았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진술이 문화대혁명에 대한 역사적 평가의 과제가 간단명료하게 성취될 수 있는 과제임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문화대혁명은 여전히 그것의 마지막 숨통을 조이며 등장했던 몽롱시의 시구들만큼이나 모호하고 난해하다. 더구나 그 운동이 궁극적으로 지향했던 목표와 관련지어 생각해 볼 때, 그것의 ‘실패’와 ‘환멸’로 인해 누가 열매를 얻었고(혹은 현재 그 열매를 누리고 있고), 누가(그리고 무엇이) 좌절했는지는 그야말로 모호하며, 때문에 당혹스럽기 그지없다.이와 관련하여 볼 때, 1956년 흐루시쵸프가 소련 공산당 20차 당대회에서 행한 비밀보고 내용이 알려지면서 스탈린에 대한 비판이 격화되던 당시 모택동의 반응 중에는 자못 인상적인 부분이 있다. 그것은 스탈린의 문제를 스탈린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스탈린의 ‘시대’의 역사적인 문제로 바라볼 것을 주문하고 있는 대목이다. 이러한 발언의 배경에 어떠한 정치적 판단이 깔려 있었든지 간에, 이 관점 자체는 적절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사실 그 수많은 역사적 문제들을 스탈린 개인의 문제로 몰아 비판하는 것은 정치적으로야 수지가 맞는 속편한 처리방식일지 모르지만, 그러한 태도는 어떤 의미에서건 역사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는 거리가 먼 것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관점의 문제는 문화대혁명 50주년을 맞은 오늘날, 문화대혁명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기술을 위해 다시 한 번 되새겨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문화대혁명의 수많은…
정치 자료실 [인물] 정대성 2021.09.23 추천 0 조회 3209
지난 7월 13일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블룸버그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중국을 언급하며 “우리는 분명히 민주주의의 적들과 싸워야만 할 것”이라며 홍콩 사태 등에 있어 ‘중국 정부의 잔인함’에 맞설 것이라고 강조했다.그러면서 “나는 문재인 정부가 중국에 경도되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말할 수 있다”며 “국민은 이 같은 점에 불만”이라고 비판했다. 그러자 중국의 관영매체들이 일제히 이 대표를 공격하며 나섰다. 흥미로운 점은 환구시보의 주장이었다. 환구시보는 “이 80년대생 한국 정치인의 발언은 너무 유치하고 생각이 없어 국제관계 후폭풍을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일종의 게임으로 보는 것 같다”고 비꼬았다.이어 “한국에서 80~90년대생은 보수와 진보 진영이 서로 다투는 표적이 되고 있다”며 “이들이 중국을 포함한 세계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한국의 미래와 중국에 대한 태도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강조했다. 환구시보는 이준석 대표의 중국 발언을 한국의 청년세대가 가진 중국에 대한 반감으로 해석하면서 흔히 MZ세대라 불리는 한국의 2030세대가 가진 반 중국 정서에 우려를 표시하는 것이었다. 외신에 보도된 한국 시민단체들의 반중시위 모습청년세대의 ‘K-자부심’한국 청년세대의 반중정서는 다른 세대에 비해 월등히 높은 것이 사실이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리서치가 지난 4월 8일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MZ세대의 중국 혐오가 얼마나 심각한지 그대로 드러난다.‘한반도 주변국에 대해 평소 느끼고 있는 감정을 온도로 표시하라’는 질문을 했더니 20대가 중국에 대해 느끼는 온도는 12.8도, 30대가 느끼는 온도는 20.1도로 다른 연령대에 비해 상당히 낮았다. 지난 6월 국민일보가 지령 1만호를 맞아 실시한 여론조사의 결과도 이와 일치한다.MZ세대가 가장 싫어하는 나라는 중국인 것으로…
[인물] 정대성 2021.09.21 추천 0 조회 988
중국의 노동운동과 노동관계, 노동조직에 대해 연구해온 홍콩대학 박사과정 연구생 팡란(方然)이 지난 8월 26일, 광시좡족자치구 난닝에서 국가안전부 요원들로부터 체포됐다. 국가안전부는 공안부와는 다르게 첩보 업무를 관장하는 부서다. 팡란이 사라졌다는 소식은 지난 9월 1일 팡란의 아버지 팡젠중(方建忠)에 의해 알려졌다. 팡젠중은 자신의 웨이신(wechat) 계정에 며칠 전 아들이 체포되었다는 사실을 알리면서, 자신의 아들은 “절대로 아무 동기가 없고, 법을 어기고 규율을 어지럽게 하는 활동에 종사할 어떠한 조건도 갖추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팡젠중에 따르면 팡란은 ‘지정된 장소에서 감시상태로 거주’(指定住所监视居住; under residential surveillance at a designated location) 조치가 되었다. 중국 형사소송법 규정에 의하면, 이 조치는 중대 뇌물수수 혐의자나 피의자가 현지에 일정한 주거 없이 거주할 경우, 두 가지 경우에 주로 적용된다. 경찰서 유치장이나 구치소가 아닌 곳에 따로 구금되며, 당국은 가족에게 수감 장소를 알리지 않아도 된다. 심지어 변호인조차 당사자를 만날 수 없다.올해로 26세인 팡란은 칭화대학 사회학과에 입학한 2013년(당시 18세)에 중국공산당 입당했다. 아버지 팡젠중은 “팡란은 당에 위해를 가할 죄를 범할리는 절대 없습니다. 그는 당의 사업에 협조하길 바라는, 용기와 기상이 가득한 청년입니다”라고 말했으나, 입당 후 8년이 지난 지금, 팡란에게 적용된 혐의는 국가정권전복 선동죄(煽动颠覆国家政权罪)다.팡란의 체포가 알려진 후 홍콩대학 측은 “이 사건에 대해 알고 있으며, 적극 파악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필요할 경우 팡란 선생과 그의 가족들에게 도움을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입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학문의 자유가 위협받고 있다고 생각하는지”에 대한 질문에 대해선 답변하지 않았고, 중국 사회를 연구하는 학생들과 연구자들을…
정치 자료실 [인물] 정대성 2021.09.19 추천 0 조회 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