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리뷰 ] ‘유교 탈레반’: 조선과 이슬람의 기묘한 만남
이 글을 다 쓰고 발견한 흥미로운 제목의 책
그러나 본문 내용과는 전혀 상관없다.
18세기 중국 청나라 무슬림이 중국 유학자들에게
이슬람이란 종교가 무엇인지 설명하기 위해 쓴 『청진석의(淸眞釋義)』라는 책의 한국어 번역본이라고 한다.
유교와 탈레반, 겉보기에는 서로 아무런 관련도 없을 것처럼 보인다. 20세기 이후 아프가니스탄의 혼란 속에서 등장한 탈레반과 공자가 창시하여 20세기 이전까지 동아시아의 보편 윤리로 작동한 유교가 서로 대체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탈레반들은 공자나 유교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도 없을테고, 조선시대의 유생과 선비 대부분 또한 아프가니스탄이라는 지역이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을 것이다.
그러나 서로 아무 상관이 없어 보이는 신기하게 결합한 채 사용된다. 바로 ‘유교 탈레반’이다.
대구경북 지역의 지역일간지인 매일신문에 따르면 ‘유교 탈레반’은 “조선 정치 이념이던 ‘유교’와 자살테러 등으로 악명 높은 아프가니스탄 무장 이슬람 정치단체 ‘탈레반’의 합성어”로 “보수적 유교 사상이 극에 달한 사람이나 단체를 비꼬아 이르는 신조어”다. 이처럼 인터넷상에서 처음 등장한 ‘유교 탈레반’이라는 단어는 언론에까지 진출했으며, 해외 인터넷 사이트 차단 정책을 비판하는 중앙선데이의 2019년 2월 16일자 칼럼에서도 그 쓰임을 확인할 수 있다. 심지어는 “17세기 조선은 왜 일본과 달리 성리학 ‘탈레반’의 나라가 됐나”라는 인터뷰 기사도 있다(정작 인터뷰 내용을 읽어보면 제목에서 말하는 바와는 완전히 논조가 다르다. 그냥 기자가 실제 인터뷰 내용과 의도와는 무관하게 자극적인 제목을 뽑아낸 것으로 보인다.)
조선 왕조가 근대화와 독립에 실패해 결국 일제 식민지로 전락한 이후 조선의 지배 사상이라고 할 수 있는 ‘유교’는 한국 사회에서 사라져야 할 악폐습, 쓸모없는 전통에 대한 맹목적인 집착, 변화를 거부하고 과거에만 매달리는 보수적이고 고루한 가치관을 가리키는 용어가 되었다. 이슬람 역시 1,300년 전에 계시된 코란과 예언자의 전승에 집착해 현대 사회의 가치를 수용하고 변화하기를 거부하는, 종교법에 따라 사람을 돌로 쳐 죽이고 도둑의 손목을 자르며 여자들을 핍박하고 탄압하는 광신도 또는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무고한 사람을 학살하는 테러리스트와 결부되곤 한다. 그리고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은 이슬람이 광신적이고 억압적인 성격을 가진 종교라는 점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로 이해된다. 이러한 시각에서 ‘유교’와 ‘이슬람’ 모두 변화를 거부하고 과거의 전통에 집착하는, 폭력적이고 배타적이며 사회의 발전과 진보를 가로막는 해악의 위치를 차지한다. 이러한 점에서 유교와 이슬람 모두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서로 결합하여 ‘유교 탈레반’이라는 용어로 나타난 것이 아닐까.
이 글은 유교가 정말 조선 망국의 원인인지, 이슬람이 정말 중동 사회의 쇠퇴를 가져오고 발전을 가로막는 요인인지 분석하기 위한 글이 아니다. 그걸 분석하려면 아마 몇 년에 걸친 연구를 통해 책 한 권은 써야 할 것이다. 다만 이 글에서는 최근에 읽었던 ‘유교책임론’에 관한 글들을 옮겨보고자 한다. 따라서 이번 글은 사실상 인용문 모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슬람과 중동을 주로 다루는 블로그에서 굳이 유교와 조선시대에 관련된 글들을 길게 인용하는 이유는 오늘날 많은 사람들에게 유교와 다를 것이 하나도 없는 종교로 여겨지는 이슬람에도 ‘유교책임론’에 대한 비판적 검토가 적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논어에 관한 김영민의 글을 묶은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에서 일부를 인용한다. 김영민은 이 책에 실린 「유교란 무엇인가」에서 ‘유교’라는 개념이 정의하기에 따라 얼마나 자의적으로 이용될 수 있는지를 지적한다:
“오늘날 누군가 ‘유교란 이러이러한 것이다’라고 규정하면, 그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유교’ 전통 속에서 얼마든지 그와는 다른 특징을 찾아낼 수 있게 되어버렸다. 예컨대 누군가 유교는 상업을 억압하는 특징이 있다고 주장하면, 그에 반대하는 이는 ‘유교’ 전통 속에서 상업을 선양하는 특징 역시 찾아낼 수 있다. 누군가 유교는 개인을 억압하는 특징이 있다고 주장하면, 그에 반대하는 이는 ‘유교’ 전통 속에서 개인을 고무하는 특징 역시 찾아낼 수 있다.”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 262쪽.
유교는 상업을 억압하기도 하고 상업을 선양하기도 한다. 유교는 개인을 억압하기도 하고 고무하기도 한다. 서로 반대되는 결론에 도달하지만 두 관점 모두 유교의 특징을 규정한 뒤에 현실에 끼워맞춘다는 점에서는 비슷하다. 마찬가지로 이슬람을 여성을 억압하는 종교로 정의한다면 무슬림 사회에서 나타나는 모든 여성차별적인 관습과 현상은 이슬람의 특징때문에 나타나는 것이고, 이슬람을 여성을 해방시키는 종교로 정의한다면 무슬림 사회에서 여성을 보호하고 권리를 인정하는 모습을 찾아낼 것이다.
김영민은 또한 ‘유교 사회만의 특징’으로 정의되는 것이 정말 유교 사회만의 특징인지 의문을 제기한다:
“남녀 간의 성차에 대한 강조, 남아 선호, 가족 유대 등 당시(19세기 말) 프랑스 향촌 사회의 특징은 이른바 단순화된 ‘유교’ 사회의 특징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유교’라는 단어는 제반 현상들을 범박하게 지칭하는 용어로는 쓸모가 있을지 몰라도, 특정 사회의 독특한 면모를 적시하기에는 너무나 투박한 용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 263쪽.
이슬람 사회만의 특징으로 제기되는 요소들 또한 비슷하지 않을까. 이슬람 사회만의 특징으로 지적되는 여러 현상, 즉 가부장제나 여성 차별이나 부족주의, 종교가 차지하는 중요성 등은 정말 이슬람 사회에서만 나타나는 것일까? 그러나 많은 경우, 무슬림들이 다수를 차지하는 사회에서 나타나는 어떤 독특한 면모는 오직 이슬람이라는 하나의 요소로 환원된다. 그러나 정말 그 ‘독특한 면모’가 오직 ‘이슬람 사회’만의 전유물인가?
“일단 유교는 현대 한국 혹은 동아시아를 정교하게 설명할 능력은 없지만 그래도 기를 쓰고 설명하고 싶을 때 유용하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문제들을 도맷값으로 떠넘길 때 유용하다. 유교 때문에 이 모양 이 꼴이 되고 말았어! 그뿐이랴. 현재 한국 사회의 성취를 설명할 때도 유용하다. 유교가 있었기에 이 나라가 발전할 수 있었어! 실로 유교라는 단어가 없었더라면, 큰일 날 뻔했다. 자칫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들킬 뻔 했으니까……하나의 단어를 외어서 그토록 여러 맥락에 쓸 수 있다면, 사용자는 여러 가지 복잡한 용어를 학습해야 하는 수고를 덜게 된다.”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 264쪽.
유교가 모든 것을 설명하는 동시에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한다는 김영민의 지적은 이슬람에 대해서도 유효할 수 있다. 여성 차별, 부패, 경제난, 독재, 테러리즘 심지어 침대축구까지 중동 사회에서 나타나는 모든 현상을 모두 ‘이슬람’으로 설명하려는 관점은 오직 유교라는 단어만으로 한국 사회의 성취를 분석하려는 관점과 다르지 않다. 김영민이 말하듯이, “하나의 단어가 너무 많은 것을 의마할 때, 그 단어는 유용한 동시에 무용”하다(김영민, 265).
“유교라는 말로 지칭하건, 유학이라는 말로 지칭하건, 컨퓨셔니즘이라는 말로 지칭하건, 그 대상은 매우 오랜 시간에 걸쳐 불균질하게 전개되어온 전통이기 때문에 시공을 넘어선 불변의 유교 본질 같은 것은 없다. 따라서 무리해서 유교의 본질을 규정하려고 들기 보다는, 사람들이 어떤 때 어떤 이유로 유교라는 말을 환기하고 사용하려 드는가에 주목하는 것이 더 생산적이다.”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 266쪽
이슬람 또한 유교와 마찬가지로 1300년에 걸친 ‘오랜 시간에 걸쳐 불균질하게 전개되어온 전통’이다. 따라서 시공을 넘어선 불변의 ‘이슬람 본질’ 같은 것은 없다. 논어는 변하지 않아도 유학자들의 해석과 적용 방식은 달라질 수 있듯이, 코란은 변하지 않아도 코란을 읽는 무슬림들의 관점과 해석과 실행 방식은 달라진다. ‘이슬람의 본질’ 같은 것은 없다. ‘무슬림의 해석과 실천’만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복잡한 중동 사회와 역사를 이해하는 것은 너무나 귀찮고 번거롭기에 ‘이슬람’이라는 마법의 단어는 모든 것을 설명하기 위해 이용된다. “성급한 혐오와 애호 양자로부터 거리를 둔 어떤 지점에 설 때야 비로소 자신이 다루고자 하는 대상의 핵심”에 다가갈 수 있다는 김영민의 지적은 따라서 이슬람을 바라볼 때에도 마찬가지다. 이슬람에 대한 성급한 혐오 또는 무비판적인 애호 두 관점 모두 결국 이슬람이라는 종교를, 무슬림이 다수를 차지하는 사회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방향으로 이끌 뿐이다:
“과거 전통을 정교하게 이해하려는 노력이 너무 번거로운 나머지 그저 편의상 ‘유교’라는 말을 사용한다. 동아시아의 전통을 먹기 좋게 포장해서 외국에 전달하고 싶은 나머지 그들의 구미에 맞게, 단순화된 의미로 ‘유교’라는 말을 사용한다. 과거의 문화와 규범을 후다닥 싸잡아 욕하고 싶은 나머지, ‘유교’라는 말을 거친 의미로 계속 사용한다…. 과거의 특정 문화, 전통, 혹은 텍스트를 너무 성급하게 혐오하면, 그 혐오로 그 혐오의 대상을 냉정하게 이해하지 못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결국 그 대상을 정교하게 혐오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마찬가지로 특정 문화를 너무 성급하게 애호하면, 그 애호로 인해 그 애호의 대상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게 되고, 결국 그 대상을 정교하게 애호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성급한 혐오와 애호 양자로부터 거리를 둔 어떤 지점에 설 때야 비로소 자신이 다루고자 하는 대상의 핵심에 한 발자국 더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 267-268쪽
대중 독자를 위한 김영민의 에세이와는 달리 허태용의 「성리학으로 조선시대를 설명하는 연구 경향의 비판적 고찰」(『역사비평』 5권, 2019: 317-350)은 학술 논문이다. 하지만 이 논문에서도 허태용이 가진 문제의식은 김영민이 제기한 주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바로 조선왕조의 멸망을 포함해 조선시대의 모든 현상을 유학/성리학으로 돌리는 경향이다. 성리학과 실학을 대비하는 관점은 이슬람과 세속주의를 대비하여 이슬람을 망국과 쇠퇴의 원인으로, 세속주의를 개혁과 발전의 동력으로 구분하는 관점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현재까지도 영향을 끼치고 있는 조선시대 연구의 오래된 하나의 인과적 설명 방식, 즉 특정 사상―주로 성리학―을 여러 현상과 사건의 원인으로 설명하는 자세가 학문적으로 적절한 것인지에 대해서 깊이 성찰할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물론 이런 질문은 자칫하면 불가지론에 이를 수도 있기 때문에 쉽지 않은 질문이다. 하지만 역사에서 인과적 설명을 포기하지 않는 한 질문 자체는 필요하다. 무엇보다 연구자들은 어떤 시각의 설명이 역사를 보다 풍부하고 종합적으로 이해하게 하는지를 찾기 위한 노력의 차원에서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
조선시대를 다룬 많은 연구들 속에서 발견되는 하나의 경향은 특정한 사상, 혹은 사상적 요소가 구체적인 역사의 원인으로 언급된다는 점이다. 이 때 언급되는 대상으로는 조선왕조의 체제 교학인 주희 계열의 성리학과 ‘실학’을 가장 먼저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조선시대의 역사 현상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사상적 요소가 원인으로 언급될 때면, 그것이 거시적인 담론이든 미시적인 고증이든, 대부분 성리학과 ‘실학’이 언급되었다.
(….)
이런 경향의 가장 오래된 거시적 담론으로는 성리학으로 말미암아 조선이 멸망했거나 근대화에 ‘실패’했다는 설명과, 그것의 대우명제로서 ‘실학’이 받아들여지지 않아서 조선이 멸망했거나 근대화에 ‘실패’했다는 설명을 떠올릴 수 있다.”
「성리학으로 조선시대를 설명하는 연구 경향의 비판적 고찰」, 318-319쪽.
“만약 조선왕조의 멸망이나 근대화의 ‘실패’를 설명할 때 성리학, 혹은 거기서 파생된 사상적 요소를 부분적인 하나의 요인으로 언급한다면 적절한 설명이 될 수도 있다. 문제는 정말 부분적인 요인으로서 파악한 것인지, 아니면 사실상 주된 원인으로서 파악되고 있는지의 여부일 것이다.
(….)
한국이 근대화에 ‘실패’하고 식민지가 되어야 했던 이유를 찾기 위해 한평생 공부했다고 스스로 밝힌 한 학자(강재언)에게도, 한국 근대화의 낙후성을 규정한 사상적 원인은―그의 표현에 따르면―주자학만 숭상하는 ‘주자일존’의 유일사상 체계였다. 이와 같이 주자학, 혹은 성리학은 최근의 좀 더 세련된 학술적 설명 속에서도 여전히 근대사 ‘실패’의 원인으로 인식되곤 한다….조선 후기 ‘주자학’이라는 대비적 존재와의 투쟁 속에서 ‘실학’의 대두와 성격을 설명하고 있는 이 연구는 끝내 ‘실학’이 ‘좌절’됨으로써 19세기 이후 역사의 어려움을 맞게 되었다고 규정했다는 점에서, 간접적으로 ‘주자학’에게 19세기 이후 ‘실패’한 역사에 대한 책임을 지우고 있는 셈이다.”
「성리학으로 조선시대를 설명하는 연구 경향의 비판적 고찰」, 321-322쪽.
허태용은 “세종 시대의 황금기, 사군육진 개척, 의병, 북벌론, 영정조 문예부흥기, 의술 발전, 불교와 양명학, 서학의 배척, 여성차별적이고 장자중심적 종법체제 형성, 사대관계, 대간과 신문고 제도, 조선 후기 토지 소유의 균질화, 사림의 분열, 북인의 정치적 몰락, 임란 의병, 서인들의 경제적·군사적 실권 장악, 인조반정”(허태용, 323-326)에 이르기까지 조선 시대의 거의 모든 현상과 역사적 사건의 원인을 성리학으로 돌리는 관점을 비판한다. 이와 같은 관점에 따르면 “성리학은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자발적인 ‘자유의지’로 조선을 건국하고, 조선의 여러 부분에 자신의 모습을 구현했다가 마지막에는 조선왕조를 멸망케 했다는 거대서사도 가능”할 정도다(허태용, 327). 조선시대를 부정적으로 보든 긍정적으로 보든 결국 “성리학이라는 사상적 요소를 조선시대의 여러 역사 현상을 낳은 원인으로서 파악하는 자세는 동일”하다(허태용 323쪽).
허태용의 지적은 조선시대의 역사 현상을 분석하는 관점에만 유효한 것이 아니다. 허태용이 제기한 본질적인 문제 의식은 이슬람이라는 마법의 키워드 하나로 오늘날 중동 사회에서 나타나는 모든 현상을 설명하고, 이슬람을 마치 역사와 사회로부터 완전히 자유롭고 자발적이고 독자적인 의지를 가지고 인간을 구속하는 ‘실체’로 바라보는 자세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조선시대의 모든 현상과 역사적 사건이 성리학 때문이었다면 인간은 단순히 성리학적 이상을 실천하는 도구에 불과하다. 마찬가지로 중동 무슬림 사회의 모든 현상이 이슬람 때문이라면 인간은 단순히 이슬람의 교리와 이상을 실천하는 도구로 전락한다.
그렇다면 왜 사상적 요소(중동의 경우에는 종교적 요소)를 역사(그리고 사회 현상)의 원인으로 보려는 것일까? 첫째로 “특정한 사유(思惟)가 특정 행위를 낳는다는 연구자 자신의 과잉된 심리적 편견”(허태용, 327)이 존재한다. 둘째로는 이러한 접근법이 “국가 멸망과 같은 큰 사건과 관련해서 특정한 정치적 메시지를 전하는 선동에 비교적 유리한 측면”(허태용, 328)이 있기 때문이다. 어떤 사상이 또는 종교가 망국의 원인으로 규정된다면 그 사상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의 사상 또는 종교와 대비되는 세속주의가 ‘해결책’이라는 간단한 도식 구조가 완성될 수 있다. 특정한 사상의 우수성, 세속주의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정치적 담론은 곧 과거의 사상과 종교를 망국의 원인으로 바라보는 관점 위에 성립된다.
셋째로는 사상적 요소를 역사의 원인으로 본다면 “형식적으로는 일단 그럴듯한 하나의 내러티브”를 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허태용, 330). 조선이든 무슬림 사회든 유교와 이슬람은 두 사회의 여러 현상과 분명히 관련되어 있다. 따라서 적절히 끼워맞추어 현상의 인과관계를 사상적 요소로 설명한다면 – 가령 이슬람 때문에 이슬람권에서 인쇄술이 발전하지 못했으며, 결국 이슬람권의 학문적 발전이 정체되었다든가, 칼뱅주의가 결국 서구 자본주의의 발전으로 이어졌다든가 식으로 – 꽤나 그럴듯한 서사가 만들어진다. 문제는 “이런 방식으로 역사를 이해한다면, 페르시아제국의 멸망은 조로아스터교 때문으로, 오스만투르크와 무굴제국의 멸망은 이슬람교 때문으로, 잉카제국의 멸망은 태양신 숭배 때문으로 설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허태용, 330). 거대서사에서 종교는 다시 한번 모든 현상의 원인의 위치를 차지한다.
네 번째 요인은 계몽주의 전통의 영향이다. 허태용에 따르면 “이성이 세계사를 통해 스스로를 실현한다는 사변적 생각”은 “역사 현상의 원인으로서 사상적 요소가 중심적인 위상을 차지할 수 있는 중요한 배경이 되었다”(허태용, 333쪽). 허태용은 사상적 요소(또는 종교)가 현상의 궁극적 원인이라고 보는 시각이 “‘‘세계정신’이 스스로를 실현하는 것이 역사라는 헤겔 이래의 꽤나 오래된 지적 전통의 영향을 떠올리게 한다“(허태용, 334)고 비판한다. 이러한 설명은 마치 “콜럼버스의 모험심이 신대륙을 발견하게 한 것이고, 루터와 칼뱅의 신앙심이 종교개혁을 일으켰으며 히틀러의 유럽정복 욕망이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는 설명과 동일한 방식이어서, 카의 말을 빌자면 아무런 설명도 되지 않는다” (허태용, 334). 마찬가지로 이슬람 때문에 이슬람권 문명의 과학과 학문 발전이 정체되었고, 오스만 제국이 쇠퇴했고, IS가 일어나고 탈레반이 카불을 점령했다는 설명은 모든 것을 설명하지만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는 것이다.
다섯 번째 이유는 사상과 종교로서 모든 것을 설명하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 같은 일종의 ‘착시’를 일으킬 뿐 아니라, 비판의 위험에 쉽게 노출되지 않는 ‘안전성’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자국 중심의 주체적 역사학과 국어학, 백과전서학 및 현실적인 문학의 새로운 사조가 열린 것은 민족주의적인 ‘실학’의 학풍이 대두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게 되면 역사 현상에 대한 인과적 설명이 마무리된 것 같은 분위기가 조성된다. ‘실학’이라는 이해틀의 유행과 권위는 이런 분위기를 더욱 조장했기 때문에 설령 불만족스러움이 느껴진다고 해도 그렇지 않다고 주장하기가 어렵다. ‘실학’ 때문인지 명확치 않아도 ‘실학’ 때문이 아닌지도 명확치 않으니 말이다. 반박의 가능성과 위험이 줄어든 결과 이 설명은 안전해진다” (허태용, 335). 이는 위에서 김영민이 말한 바와 유사하다. 유학 또는 이슬람에 모든 책임을 돌리는 것은 사실은 아무 것도 설명하지 못하지만, 마치 모든 것이 설명되는 것처럼 간단하기 때문이다. 유교 때문에 조선이 망했다, 이슬람 때문에 중동이 쇠퇴했다라는 한 줄의 설명만큼 간단하고 명쾌한 설명이 어디 있겠는가?
허태용은 과학적 탐구와 다른 역사 연구의 특성을 지적한다.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일반 법칙과 일원적인 인과 설명을 추구하는 과학적 탐구와 달리, 역사는 “개별적 현상의 설명”(허태용, 336)에 초점을 맞추며 “한 사건, 한 국면의 생성에 각기 다른 몫으로 함께 작용했던 모든 요소들의 연관관계를 찾아보는 시도”(허태용, 337)를 추구한다. 즉 모든 현상을 한번에 설명하는 하나의 요인,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인과율의 법칙은 역사학에서는 존재하기 어렵다. 유교 그리고 이슬람은 과거와 현재에 나타나는 모든 현상을 지배하는 절대적이고 독립적인 요인이 아닌, 한 현상을 만들어내는 여러 요인들 중 하나로서 다른 요인들과의 관계 속에서 작용한다. 역사에서 또는 현재를 바라보고 분석하는 시도에서 찾아내야 할 인과 관계는 결코 단선적이지 않다. 역사를 그리고 현재를 분석한다는 것은 한 현상에 결부되고 관련된 수많은 요인들과 요소들로 얽힌 실타래를 풀어내는 것과 같다.
마지막으로 조선시대사에서 성리학을 수많은 현상의 원인으로 파악하려는 시각에 대한 허태용의 비판을 길게 인용해본다:
“조선시대의 역사 속에서 특정한 사상, 특히 성리학을 조선시대 역사의 많은 현상을 일으킨 원인으로 파악하려는 시각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에 적절한 역사적 설명이라고 하기 어렵다. 첫째, 성리학은 그것이 조선왕조의 체제교학이었던 만큼 어떤 역사 현상과도 연결될 수 있는 공통 조건이다. 따라서 어떤 역사 현상이 성리학으로 인한 것이라고 설명하는 것은 공기에 산소가 포함되었기 때문에 화재가 발생하였다는 설명과 같이 사실상 쓸모없는 말이다. 둘째, 성리학은 그것이 조선시대의 모든 역사 현상과 연결될 수 있는 공통 조건이기 때문에, 시대와 지역과 상황과 조건에 따라서 수많은 다른 요소들과 얽히면서 다양한 양상으로 복잡하게 인과의 연쇄적 고리를 형성했다. 따라서 각 상황마다 성리학이 차지하는 비중과 모습과 역할은 제각각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원인이라는 ‘고귀한’ 위상을 성리학에 돌리는 것은 ‘관념론적 환원주의’일 뿐, 사건의 복잡성과 다면성을 이해하는 데 별 도움도 되지 않으며, 역사에서의 인과 판단을 둘러싸고 수많은 연구자들이 오랫동안 축적해온 심도 깊은 고민과 문제의식을 무효화시켜버리고 만다. 셋째, 이런 시각이 너무 과도하게 견지될 경우 자칫하면 사람들의 행위는 그들의 정신에 상응한다는 ‘이원론’을 견지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의 행위는 의식을 넘어서서 다양한 조건의 결합물에 가깝기 때문에, 행위의 질서는 의식의 질서로 환원되기 어렵다. 만약 그 환원을 무리하게 시도한다면 결과가 원인으로 간주되는 오류의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 그러므로 역사적인 사건과 현상에 대한 개별적 통찰을 통해 역사학에 있어서의 단일한 인과적 설명을 거부하고 각 사건과 현상을 일으킨 다양하고 복잡한 요소들을 늘 입체적으로 고찰하려는 노력이 절실히 필요하다”
「성리학으로 조선시대를 설명하는 연구 경향의 비판적 고찰」, 338-339쪽.
이슬람 역시 마찬가지다. 코란과 하디스를 통해 특정한 본질과 성격을 가진 종교로 정의된 이슬람은 무슬림의 사고관과 행위를 결정하는 유일하고 가장 지배적인 요인으로 상정된다. 이슬람은 무슬림의 삶 모든 영역을 결정하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로 간주되고 따라서 폭력적, 배타적, 억압적, 야만적인 특성을 가진 이슬람을 믿는 무슬림은 따라서 위험하고 믿을 수 없는 집단으로 여겨진다. 히잡 착용, 여성 억압, 비무슬림 차별과 성소수자 탄압, 명예살인, 테러와 같이 무슬림이 다수인 지역에서 나타나는 현상의 원인을 이슬람에서 찾는 주장과 인식은 그리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으며, 코란과 하디쓰에 토대를 둔 이슬람법, 즉 샤리아는 무슬림의 윤리와 가치관, 타자와의 관계에서 정치와 경제와 심지어 중동 축구팀의 궁극오의인 침대축구에 이르기까지 무슬림의 생활 모든 측면을 아우르고 지배하는 결정적 요인으로 여겨진다. 이슬람은 무슬림 다수 지역의 정치, 사회, 경제, 문화와 무슬림의 일상생활과 가치, 윤리, 세계관까지 다양한 현상을 설명하는 만능열쇠의 위치를 차지한다.
무슬림이 다수를 차지하는 사회에서 나타나는 모든 현상의 원인을 이슬람에서 찾는 분석은 모든 것을 간단하고 분명하게 설명한다. 그리고 동시에 아무 것도 설명하지 못하며, 오히려 현상을 다방면에서 입체적으로 분석하는 노력을 방해할 뿐이다.
[대체로 무해함: 중동, 아랍, 이슬람 세계 들여다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