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들은 백인이었다 – 백인들이 그들을 황인이라고 부르기 전까지.
• 유럽인들은 18세기 말까지 동아시아인들을 백인으로 불렀다.
• 그러나 중국인과 일본인이 문화적 동화에 저항하자 그들은 모두 어두워졌다.-백인과 그들 자신들의 눈에서
동아시아인들은 어떻게 황인이라고 불리게 되었는가? 그것은 세계를 인종적으로 지도를 그리려는 일련의 매핑의 결과였고 사람들의 실제 피부색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사실, 초기 서양 여행자, 선교사 또는 대사(그리고 매우 자주 그렇지 않았다, 왜냐하면 인종 표식자로서의 피부색이 19세기까지 완전히 자리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에 의해 안색이 언급되었을 때, 동아시아인들은 거의 항상 백인으로 불렸으며, 특히 16세기 최초의 근대적 접촉 시기에는 백인으로 불렸다. 그리고 여러 번, 그 사람들은 “우리처럼 하얀”이라고 불렸다.
황인이라는 용어는 18세기 말경에 가끔 나타나기 시작하다가 19세기에 서구의 상상력을 실제로 장악했다. 그러나 17세기에 이르러 중국과 일본인들은 출판된 교과서에서 “어두워”에 지고있었고, 그들이 무역, 종교, 그리고 국제 관계의 유럽 시스템에 참여하기를 꺼릴 것이 분명해지자 점차 그들의 지금까지의 백색을 잃기 시작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을 백인이라고 부르는 것 역시 단순한 인식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니었고 피부색보다 그들이 추정하는 문명, 문화, 읽고 쓰는 능력, 순종 수준(특히 기독교화가 되어야 하는 경우)와 관련이 있었다
블룸바흐의 구상 중 가장 중요한 측면은 동양 모든 민족이 처음으로 명백한 인종 범주-몽고족으로 뭉뚱그려졌다는 점이었는데, 여기서 몽골족이라고 하는 것은 정확히 같은 순간에 도입된 훨씬 더 악명 높은 자매 용어인 코카시안처럼 위협적이고 운명적인 존재가 되는 것이었다. 1795년에 아시아인들이 황인이 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몽골인들이 그랬다.
따라서 “노란색”은 다른 색깔과 관련해서만 의미를 갖는 인종적 표식이었으며, 모두 백인 “정상성”에 반하는 것으로 정의되었다. 블룸바흐의 경우 유럽인들은 “몽골인”과 “에티오피아인”이 사이에 끼어 있었다(말레이는 남태평양과 호주의 주민으로 구성된 새로운 다섯 번째 인종이었다).
황색 인종은 그것의 신체적, 문화적 특성이 백인 유럽 규범과 다르다는 것을 보증하는 연관성들로써 인식되었다. 그리고 블루멘바흐보다 인종적으로 훨씬 더 치명적인 다른 사상가들에게 인종은 유럽 백인을 맨 위에, 아프리카 흑인을 맨 아래에 둔 노골적인 계층의 일부가 되었고, 중간 어딘가에 “중간” 인종이 있었다. 문제는 정확히 그들이 가운데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그 추정 거리를 측정하느냐 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