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상설중재재판소가 남중국해 분쟁 해결에 실패한 이유

중국은 2000년 이후 남중국해에서 대규모로 인공섬을 건설하고 군사기지화를 시도하는 등 일방적 군사 조치를 계속하였다. 이중의 대표적인 사건으로, 중국은 2012년 4월 필리핀 함정과의 대치 끝에 스프래틀리 군도 필리핀 해안에서 불과 230㎞ 떨어진 지점에 위치해 필리핀의 배타적경제수역(EEZ) 내에 있는 스카보러 암초를 점검하여 주변 7개 암초 및 환초를 매립해 인공섬으로 만들어 실효지배를 강화했다.

필리핀은 이에 2013년 1월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를 15개 항목으로 정리해 필리핀의 EEZ 개발권을 인정해 달라며 국제상설중재재판소 (국제상설중재재판소)에 제소했다. 크게는, 필리핀은 남해 해양 경관에 대한 중국의 정당성 주장, 중국의 인공 섬 건설의 합법성, 인공 섬 건설과 관련된 해양 환경 훼손 여부 등 4가지 주요 불만을 제기하였으며, 상설중재재판소는 이를 받아들여 중재절차에 들어갔다.

결과적으로 국제상설중재재판소는 판결문에서 지난 70년 동안 남중국해에 대한 중국의 영유권 주장을 완전히 부인하고, 필리핀의 주장을 모두 인정함으로써 필리핀에 완벽한 승리를 안겨주었다. 중국은 스프래틀리 군도에서 아주 많은 영역과 인공섬들을 가지고 영해를 주장하고 있었는데, 결국 이번 판결을 통해서 스프래틀리 군도에서 섬은 하나도 없다는 것과 당연히 배타적 경제 수역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공고히 하게 됐다. 이에 따라 앞서 언급했듯이 남중국해의 가운데 영역은 누구나 드나들 수 있는 바다(international sea)가 되었고, 미국이 항행의 자유를 근거로 중국을 더욱 압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중국은 이와 같은 판결에 반발하며 국제상설중재재판소를 ‘임시 재판소’로, 국제상설중재재판소의 남중국해 판결을 ‘필리핀의 지원으로 꾸며진 정치적 희극’이라고 규정하면서 상설중재재판소가 어떠한 판결을 내리든지 이를 인정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또한 중재재판소가 관련 관할권 문제를 중재하는 과정에서 뜻밖에도 중국과 아세안이 2002년 10개국 정부가 무력 수단을 통한 해결 대신, 협력과 평화적인 해결을 위해 공동 서명한 “남중국해 분쟁 당사국 행동선언(DOC)”의 정신을 철저하게 폄하하고 있다고 주장했으며 무력을 통해 더욱 확실히 자신의 영유권을 각인시키려 했다.

(사진설명) 해당 사진은 국제상설중재재판소의 판결을 긍정하는 국가가 대부분 서방 국가들임을 알려주고 있다.

국제상설중재재판소 중재 판정을 통한 해결 노력은 실패했나.?

결국, 중국과의 격렬한 무력 대치에 굴복한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2017년, 중국과 ASEAN은 행동선언(DOC)보다 더 나아가서, 영유권 분쟁지역인 남중국해에서 우발적 군사충돌 등 분쟁악화를 막기 위한 행동준칙(COC) 초안에 합의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은 중국과의 쌍방 합의인 DOC를 더욱 확대하고 구체화 함으로써 2016년에 있었던 국제상설중재재판소 제소를 통해 다자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국제 사회의 노력을 ASEAN이 외면했음을 의미하고 있다.

또한 그 외면은 실제로 위의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상설중재재판소의 판결이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지지를 얻지 못함으로서 증명되었으며, 그나마 국제상설중재재판소의 판결을 인정하는 베트남이 비엔티안에서 열린 아세안 외교장관 회의에서 중국의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을 배척한 국제상설중재재판소 판결을 성명에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정작 국제상설중재재판소의 판결을 인정했던 친 중국 성향의 캄보디아가 입장을 선회하여 반영되지 못했다.

중재재판은 중국의 접근 방법을 강압적인 방법에서 협력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바꾸는데는 성공했으나, 현실적으로 중국과 당사국들의 입장을 변화시키지도 못했다. 예를들면, 2016년 10월 필리핀 두테르테 대통령이 베이징을 방문했을 때 시진핑과의 회담을 앞두고 기자들을 만났을 때 중재판정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받고서, 두테르테는 “그것은 종이(a piece of paper)에 불과하며 중국이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데, 먼저 이야기하는 것은 방문자로서 예의가 아니다”라고 하였다.

다음 날 시진핑은 “남중국해 문제는 우호적이고 성의있는 대화를 통해 갈등을 적절히 통제하고 당장 풀기 어려운 부분은 잠시 미루어 둬야 한다”고 하였고, 이를 두테르테가 수용하였다. 중국은 이후 스카보러 숄에서 군을 철수시켜 필리핀의 어업활동을 허용하였다. 그 이후, 2016년 11월 20일 페루 리마의 APEC 정상회의에서 시진핑이 두테르테에게 스카보러 숄을 필리핀 어민에게 계속 개방할 것을 약속했던 것이다.

물론 중국이 필리핀 어민에게 어업활동을 개방했을 뿐 중재판정과 같이 주변 수역이 필리핀의 EEZ임을 인정한 것은 아니며, 그러므로 이러한 중국의 조치가 중재판정을 의식한 것은 맞지만, 전면적인 인정으로 보기는 어렵다.

이와같이, 국제상설중재재판소의 판정에 대한 중국과 동남아시아의 반응들을 미루어볼때, 국제상설중재재판소중재 판정은 실질적으로 어떠한 것도 바꾸지 못함으로서 완전히 실패로 끝났음을 뜻한다. 필자는 이 기사를 통해 왜 국제상설중재재판소의 판결이 중국의 영유권 주장을 막지 못하였는지, ASEAN을 비롯한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국제상설중재재판소의 판결을 무시하는 것에 동참하였는지, 그리고 남중국해에서의 중국의 영유권 주장을 일축한 국제상설중재재판소의 판결이 어떻게 무시되었는지를 네가지 이유와 함께 알아볼 것이다.

국제상설중재재판소 중재 판정이 실패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 중국의 영유권 주장이 상당히 애매하며, 이는 동남아시아 국가들로 하여금 대화의 여지를 많이 남겨놓기 때문이다. 중국은 남사군도 대부분의 영역을 중국의 영토로 주장하면서 9단선(nine dotted line)을 내세우고 있으며, 그 근거로 1930년대 국민당 정부가 탐사하여 작성한 지도를 제시하고 있으며. 또한 UN 해양법(UNCLOS: The United Nations Convention on the Law of the Sea)보다는 이 지역을 중국의 영토로 선포한 중국 국내법을 근거로 이 곳이 중국의 주권이 미치는 영역임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은 겉으로는 단호한 태도를 보이면서도, 자신의 주장의 애매모호하게 표명하고 있다, 예를 들어, 중국은 9단선 안쪽은 중국의 주권이 미치는 곳이라고 주장하나, 9점선의 명확한 경계와 법적 의미는 밝히고 있지 않고 있다.

중국과 아세안 국가들은 1980년대부터 서로 소통하며 이 지역에서의 분쟁을 해결할 수 있는 적절한 방안을 찾기 위해 공동 노력하였다. 1986년 6월, 중국의 지도자 덩샤오핑은 살바도르 라우렐 전 필리핀 부통령을 만나 중국은 남중국해 분쟁 및 남중국해 해역 주변 국가들과의 양자 관계 문제에 있어 덩샤오핑이 제시한 ‘영유권은 중국에 속하되 분쟁은 보류하고 공동으로 개발하자’라는 사상을 일관되게 관철해왔다.이와 같은 중국의 전략적 모호성은 ASEAN으로 하여금 중국이 “협상 가능한 상대” 로 인식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은 자명하다. 이와 같은 모호성은 ASEAN으로 하여금 협상 가능성을 열어두어 텐션을 낯추고 있다.

둘째, 국제상설중재재판소 판결은 실질적으로 어떠한 것도 바꾸지 못했다. 국제상설중재재판소는 각국의 영유권 주장 자체를 판결하는 것이 아니라 영유권 주장과 관련된 해양 권리에 대해서만 한다. 국제상설중재재판소 판결은 법적 구속력이 없기 때문에 중국이 남중국해에서의 주권 강화를 중단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국제상설중재재판소 판결은 남중국해, 특히 남중국해의 모든 해양 지형이 암초이거나 노출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했을 뿐 소유권을 결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은 계속되었다. 국제 재판소의 판결을 무효화하기 위해 중국 대법원은 곧 영유권 침해에 대한 형사 책임을 외국인에게 경고하는 중국의 영유권 관할권을 재확인하는 규정을 발표했고, 중국의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에 대해 법적 보장을 하려 했다. 또한 중국은 이후 적극적인 군사행동을 통해 더욱 강경한 주장을 이어나갔다. 결과적으로 국제상설중재재판소의 판결은은 이 분쟁의 당사자들간의 텐션을 높이는 결과만을 초래하였다.

결과적으로 국제상설중재재판소 판결은 남중국해 분쟁 해결을 위한 ASEAN의 전략과 중국의 대전략에 어떠한 변화를 가져다주지 못하였다. 또한 국제상설중재재판소 판결은 강제력이 없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당사국인 필리핀과 중국에게 무시당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결과적으로 국제상설중재재판소 중재 판정은 실질적으로도 분쟁을 해결하지 못하였으며, 분쟁에 유의미한 해결방법을 제시하지도 못했다는 것이다.

세번째는, 본질적으로 남중국해 분쟁은 양자간의 문제가 아니라, 다자간의 문제라는 점이며, 이 분쟁을 겪고 있는 나라들의 입장이 모두 달랐다. 베트남과 말레이시아의 주장은, 필리핀의 주장과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필리핀의 경우 남중국해의 일부 섬을 “무주지 편입”에 의거하여 편입했다는 주장을 고수하고, 중국이 역사상의 근거를 대며 그 지역이 무주지가 아니고, 중국이 역사적으로 자신의 영토라고 인식했던 곳이라고 반박하는 식이다.

그러나 베트남과 중국, 그리고 말레이시아 모두 이 분쟁에서 “역사적인 근거” 를 내세우고 있다. 미국이 베트남의 입장을 긍정한다면, 이 지역이 “무주지” 였고, 중국의 역사적인 주장은 근거가 없다는 입장을 유지할 수 없다. 미국의 입장과 필리핀의 입장이 서로 융화되기 쉬운 반면, 베트남과 중국, 말레이시아의 주장은 서로 역사적인 근거에 기반을 두기 때문에, 협력에 한계가 있는 편이다. 베트남과 말레이시아는 국제상설중재재판소의 판결이 중국의 주장을 반박할 수 있는 근거가 되었기에 일단은 환영하였으나, 같은 논리로 베트남과 말레시아의 역사에 근거한 영유권 주장이 반박될 수 있기에, 필요이상으로 적극적인 조치를 취할 이유가 없었다.

또한 말레이시아, 캄보디아와 같은 반서방적 국가들은 미국의 개입조차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그나마 미국의 입장에 가장 큰 우군이 되어줄 수 있는 필리핀이 불안정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이 동남아시아의 잦은 정치적 변화와 중립적 성향은 국제상설중재재판소 판결의 가치를 떨어트린다

네번째는, 미국의 비일관성과 국제 사회의 태도의 애매함이 상설중재재판소의 판결을 지지하는 것을 꺼리게 만들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 아래에서 남중국해 문제는 많은 후퇴를 거듭하였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고립주의적 정책으로 인해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확장을 묵인해 왔으며, 두테르테를 비롯한 친중 성향의 정권들의 행보를 용인하였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 말기 트럼프는 ‘어느 편도 들지 않는다’는 정책을 돌연 뒤집으며 동남아시아 국가들 편에 섰다.

위와 같은 미국의 비일관적인 행동등은 아세안은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하여 남중국해 분쟁을 이용하고 있다는 인식을 가지게 하기에 충분했다. 따라서 아세안은 작년 동아시아 정상회의에서 국제중재재판소 결정을 지지하는 선언문을 채택하자는 미국의 제안을 거절하였다. 트럼프 이후 미국에 대한 불신감은 한층 높아졌다. 2017년 아세안의 사회 지도층 300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54% 이상의 응답자가 미국이 ’의존할 만한’(dependable) 국가가 아니라는 반응을 보였다.

동남아 국가들은 날로 과열되고 있는 미·중 간 전략경쟁의 와중에서 양대 강대 세력들에 의해 피동적으로 선택을 강요당할 가능성을 내심 우려 하고 있으며, 최악의 상황을 회피하기 위한 다각적인 외교적 대응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이러한 ASEAN의 기본적 성향은 이 문제를 미국의 개입을 제한적으로 만들고 있으며,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일관적인 대전략을 세우고 유지하는데에 방해가 되고 있다.

글을 마치며

국제상설중재재판소 판결을 통한 분쟁 해결 노력이 무시된 이유는 이 판결이 남중국해의 영토분쟁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정도의 결정적인 근거를 제공해주지 못하였으며, 중국이 단호한 행동을 취하면서도 아세안 국가들과 대화할 수 있는 상대라는 점을 강조하며 전략적 모호함을 보임으로서 미국을 경계하는 아세안 국가들로 하여금 국제사회와 미국을 배제하고 대화와 협력으로 해결하도록 유도하였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시각에 근거하여 앞으로 연재할 2편에서는 미국의 대 ASEAN 외교를 조명함과 함께 동남아 국가들은 이 분쟁이 서방 국가들에 의해 좌우되는 국제 질서에 의해 해결되는 것을 원하지 않고 있으며, 중국과 아세안의 분쟁보다는 미국의 행항의 자유 원칙이 ASEAN의 기본적 이해관계와 어떻게 충돌하는지를 집중 조명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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