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가를 거부한 채 커튼을 뒤집어 쓰고 개인의 잠재력과 노력을 평가 절하하거나, 타인을 비하하는 행위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학벌로 인한 사회적 편견에도 불구하고, 이를 극복하고자 노력하는 학자들이 있다. 이들은 <지방대 출신>라는 낙인이 찍히더라도 그 낙인을 이겨내려 열심히 공부하고 연구 실적을 쌓아 더 나은 교육 기회를 얻고, 궁극적으로는 해당 분야에서 전문성을 키워간다.
반면, 이러한 편견에 지나치게 위축되어 자신의 학력을 숨기고, 교육 제도 전반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표출하는 이들도 있다. 그 <지방대> 낙인이 두려워서 고졸 커튼을 뒤집어 쓰는 주제에 지식인인 척을 하고싶어 온갖 피해망상에 시달리며 대학교육 무용론 등을 파는 딱한 사람들이 바로 그런 유형이다. 그들은 내가 그들을 지식인으로 인정하지 않는 태도를 보이면 나를 학벌주의자,엘리트주의자라고 비난한다.
그러나 사실은 오히려 그들이야말로 <지방대>와 같은 학벌사회의 낙인을 누구보다도 두려워하며 커튼을 뒤집어 쓴 채 “지식인인 척” 한다는 점에서 학벌주의의 노예라고 불릴 만하다.새로운 지식을 접하게 해주고, 그 학문의 전통적인 흐름을 정리해 주고, 생각의 틀을 가르치고 지속적으로 시험한다는 점에서 대학은 반드시 가야 한다. 학벌이 있다고 대단하다기보다는 그만큼의 필터링을 거치고 왔다는 것 자체가 일종의 보증이다. 실제로 가진 사람과 가지지 않은 사람간의 차가 심하기도 하다. 물론 가서도 아무것도 안 하면 뭐 고졸이나 다를 바가 없겠지만.. 지방대라도 진짜 거기서 열심히 자기 분야, 자기 언어 공부한 사람들을 이불 속에서 떨고 있는 고졸이 무시할 수는 없다.
아카데미아만 왜 거의 유일하게 중세 도제식 방식을 고수하겠는가. 그게 문제는 많아도 이 분야에서는 적어도 그게 가장 효율적이니까 그렇게 하는 것이다. 아무리 시중에서 책을 구하고, 일반 도서관에서 살아도 연구 도서관에서 접하는 자료에는 미치지 못한다. 학벌 신경 안 쓰고 자기 인생 살면서 취업 잘 하고 잘 사는 사람들을 뭐라 하는 건 학벌주의의 극치겠지만, 학위조차 없는 사람을 지식인으로서 대우해서는 안 되며, 그들이 제기하는 학설을 존중하지 않는 태도는 학벌주의가 아니며 지극히 합당하다고 생각한다. 학위는 그 담론의 최소한의 입장권이기 때문이다.
대학교육무용론은 취직 같은 데만 해당되는 것이고, 돈을 버는 게 아닌 지식인이 되기 위해서는 무조건 아카데미아와 엮여야 한다. 한 분야의 전문가를 자처하는데 기초적인 스크리닝조차 받지 않았다는 소리다. 대학 안 나오거나 석박사 없는 지식 중계자/실무자들은 대학교육이 보편적이지 않았던 딱 40-50대까지고 우리 세대는 실무/학계 상관없이 대학 안 나오면 지식인 취급을 해주면 안 되는 세대다. 실제로 대학교육이 일찍 보급되었던 영미권은 대중서적 출판하는 작가들 절대다수가 다 박사학위는 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