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들리 불, 무정부 사회 (The Anarchical Society, Ch.8)

이 장에서 헤들리 불은 국제 사회의 제도 중 가장 논쟁적인 ‘전쟁’을 다룹니다. 그는 전쟁이 단지 무질서의 표출이 아니라, 국제 질서를 유지하고 형성하는 데 있어 역설적이고 이중적인 기능을 수행해 온 하나의 ‘제도’였음을 논증합니다. 이어서 핵 시대의 도래가 전쟁의 전통적인 역할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 심층적으로 분석합니다.

1. 전쟁이란 무엇인가? (War)

  • 전쟁의 핵심 정의: 불은 전쟁을 다음과 같이 간결하게 정의합니다.
    Bull begins with a concise definition of war: “War is organised violence carried on by political units against each other.” (전쟁은 정치 단위들에 의해 서로를 상대로 수행되는 조직화된 폭력이다.) 이 정의는 전쟁이 살인과 같은 사적인 폭력과 구별되는 ‘공식적(official)’ 성격, 그리고 국가 내부의 범죄 진압과 구별되는 ‘상호적(against each other)’ 성격을 가짐을 암시합니다.
  • 전쟁 개념에 대한 중요 구분들:
    Important Distinctions Regarding the Concept of War:
    • 느슨한 의미의 전쟁 vs. 엄격한 의미의 전쟁: 모든 정치 단위(부족, 제국 등)가 수행하는 폭력과, 오직 주권 국가만이 수행하는 ‘국제 전쟁(international war)’을 구분합니다. 근대 국가 체제에서 합법적인 폭력은 후자에 국한되어 왔습니다. 불은 이를 폭력의 확산이 아닌 제한 과정으로 봅니다. “We are accustomed, in the modern world, to contrast war between states with peace between states; but the historical alternative to war between states was more ubiquitous violence.” (현대 세계에서 우리는 국가 간의 전쟁을 국가 간의 평화와 대조하는 데 익숙하지만, 국가 간 전쟁에 대한 역사적 대안은 더욱 만연한 폭력이었다.)
    • 물질적 의미의 전쟁 vs. 법적/규범적 의미의 전쟁: 실제 적대 행위와, 선전포고와 같은 법적 기준 충족으로 발생하는 개념적 상태를 구분합니다. 그러나 불은 이 둘이 분리될 수 없다고 강조합니다. 실제 전쟁조차도 규칙과 규범 없이는 상상할 수 없습니다. “…war is as a matter of fact an inherently normative phenomenon; it is unimaginable apart from rules by which human beings recognize what behaviour is appropriate to it and define their attitude towards it.” (사실상 전쟁은 본질적으로 규범적인 현상이다. 인간이 전쟁에 적합한 행동이 무엇인지 인식하고 그에 대한 태도를 정의하는 규칙과 분리해서는 상상할 수 없다.)
    • 합리적/목적론적 전쟁 vs. 맹목적/충동적 전쟁: 클라우제비츠(Clausewitz)의 유명한 정의, 즉 전쟁은 “우리의 의지를 관철하기 위해 상대를 강제하려는 행위”라는 개념은, 전쟁이 항상 정책의 합리적 도구는 아니라는 현실을 간과한 것입니다. 전쟁은 의례, 명예, 또는 순수한 피의 욕망 때문에 일어나기도 합니다.
      Clausewitz’s famous definition of war as “an act intended to compel our opponent to fulfil our will” is more of a recommendation than a reality. Wars are also fought for ritual, honor, or sheer bloodlust.

2. 근대 국가 체제에서의 전쟁 (War in the Modern States System)

  • 불은 전쟁의 기능을 세 가지 다른 관점에서 분석합니다.
    Bull analyzes the functions of war from three different perspectives.
    1. 개별 국가의 관점: 전쟁은 “정책의 도구(an instrument of policy)”로서 국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나타납니다. 비록 전쟁이 항상 의도된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지만, 리슐리외, 프리드리히 대왕, 비스마르크의 예에서 보듯 “착수된 전쟁이 때로는 의도된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증명되었습니다.
      From the viewpoint of the individual state, war appears as “an instrument of policy.” While not always successful, history shows that “wars embarked upon may sometimes produce the intended results.”
    2. 국제 체제의 관점: 전쟁은 “체제가 특정 시점에 취하는 형태의 기본 결정 요인(a basic determinant of the shape the system assumes)”입니다. 어떤 국가가 생존하고, 흥망성쇠를 겪으며, 국경이 어떻게 변하고, 분쟁이 어떻게 해결되는지는 전쟁과 전쟁의 위협에 의해 크게 결정됩니다.
      From the viewpoint of the international system, war is a “basic determinant of the shape the system assumes.” The survival of states, their rise and fall, their frontiers, and the settlement of disputes are all heavily determined by war and the threat of war.
    3. 국제 사회의 관점: 이것이 이 장의 핵심으로, 전쟁은 “이중적 측면(dual aspect)”을 가집니다.
      This is the core of the chapter. From the perspective of international society, war has a “dual aspect.”
      • 한편으로, 전쟁은 억제되어야 할 위협입니다. 전쟁은 “국제 사회의 무질서의 표현(a manifestation of disorder in international society)”이며, 사회 자체의 붕괴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국제 사회는 전쟁을 제한하고 통제하려 합니다 (예: 전쟁 행위자, 수행 방식, 지리적 확산, 개전 명분 등을 제한).
        On the one hand, war is a threat to be contained. It is a “manifestation of disorder in international society” that can lead to its breakdown. Thus, society seeks to limit and contain it.
      • 다른 한편으로, 전쟁은 사회의 목적을 위해 활용될 수 있는 도구입니다. 국제 사회는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전쟁을 이용할 필요성을 느낍니다. 구체적으로 세 가지 긍정적 기능을 수행합니다.
        On the other hand, war is an instrumentality to be exploited for society’s purposes. Specifically, it serves three positive functions.
        1. 국제법의 강제 수단: 중앙 권위가 없는 상황에서, 전쟁은 (특히 자위권 행사를 통해) 법을 강제하는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2. 세력 균형의 보존 수단: 지배적 세력의 등장을 막기 위한 전쟁은 체제 전체의 생존에 기여하는 것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3. 정의로운 변화를 촉진하는 수단: “더욱 의심스럽지만(more doubtfully)”, 국제 사회는 때때로 정의로운 변화를 가져오는 전쟁의 역할을 묵인해왔습니다. 국제 질서는 “평화적 변화의 메커니즘이 현저히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3. 현대의 전쟁 (War at the Present Time)

  • 핵무기의 등장이 전쟁의 정치적 유용성을 없앴다는 일반적인 주장에 대해, 불은 이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합니다. 그는 “전쟁과 전쟁의 위협이 모든 정치적 유용성을 박탈당한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합니다.
    Bull refutes the common argument that nuclear weapons have made force politically unusable, arguing that “war and the threat of war are not deprived of all political utility.”
    • 대부분의 국제 분쟁은 핵보유국을 직접적으로 포함하지 않으며, 이들 사이의 전쟁에서는 재래식 군사력이 여전히 정치적 역할을 합니다.
    • 핵보유국과 비보유국 간의 분쟁에서도, 정치적/도덕적 비용 때문에 사용이 억제되기는 하지만, 국가의 존망이 걸린 상황에서는 핵 위협이 여전히 신뢰성을 가질 수 있습니다.
    • 핵보유국들 사이에서도 ‘상호 억제’라는 교착 상태가 항상 보장되는 것은 아니며, ‘제한전(limited war)’의 가능성과 ‘무력 사용 위협(threat of its use)’을 통한 외교적 승리의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 전쟁 역할의 변화: 불은 현대 전쟁의 역할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이전보다 더 엄격하게 제한되고 있다(more closely circumscribed)”고 결론짓습니다.
    The Changing Role of War: Bull concludes that the role of war has not disappeared but is now “more closely circumscribed than before.”
    • 개별 국가에게: 전쟁의 비용은 막대해졌고, 달성 가능한 목적의 범위는 좁아졌습니다. 이제 선진국들은 ‘안보(security)’ 외의 다른 목적을 위해 전쟁을 시작하기를 꺼립니다.
      For the individual state: The costs have expanded while the range of purposes has contracted. Advanced states are now reluctant to initiate war for objectives other than ‘security.’
    • 국제 체제에게: 강대국 간의 직접적인 전쟁은 상호 억제로 인해 회피되면서, 특정 지역에서는 레이몽 아롱이 말한 “역사의 지연(the slowing down of history)” 현상이 나타납니다. 대신 강대국들은 국지전을 통제하려 하며, 이는 “국제 체제의 형태 결정 요인으로서 국제 전쟁이 내전에 비해 쇠퇴”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Direct great power war is averted, leading to what Raymond Aron called “the slowing down of history” in some areas. Instead, great powers seek to control local wars, leading to a situation where “International war, as a determinant of the shape of the international system, has declined in relation to civil war.”
    • 국제 사회에게: 전쟁을 ‘도구’로 보려는 인식보다 ‘위협’으로 보려는 인식이 지배적이 되었습니다. 전쟁을 법 집행이나 정의로운 변화의 수단으로 보는 시각은, “전쟁을 용인 가능한 범위 내에서 억제해야 할 최우선적인 필요성”에 의해 약화되었습니다.
      The perception of war as a threat is now dominant over its perception as an instrument. Its positive roles are now “overridden by a sense of the need to limit the conduct of war.”
  • 마지막 경고: 불은 주권 국가의 폭력 독점이 비국가 정치 집단(예: 테러리스트, 게릴라)에 의해 도전을 받고 있다고 경고합니다. 이 새로운 형태의 전쟁 행위자들은 “주권 국가들을 구속하는 제약과 규칙을 벗어나고 있습니다(escaping the restraints and rules by which sovereign states are bound)”. 국제 사회가 이 새로운 형태의 전쟁을 규칙의 범위 안으로 끌어들이지 못한다면, 질서는 더욱 위협받을 것입니다.
    A Final Warning: Bull warns that the state’s monopoly on violence is being challenged by non-state groups “escaping the restraints and rules by which sovereign states are bound.” If international society cannot bring these new forms of war under its rules, order will be further threaten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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