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정치학 분야에서 주권 (sovereignty) 만큼이나 핵심적이면서도 그 의미와 실제 적용에 있어 혼란을 야기하는 개념은 드물다. 스티븐 D. 크라스너(Stephen D. Krasner)는 그의 저서 제1장 “주권과 그 불만 (Sovereignty and Its Discontents)”에서 이러한 주권 개념의 다층성과 복잡성을 심도 있게 파헤친다. 저자는 현대 국제 체제의 한 단면인 세계화(globalization)로 인해 주권이 침식되고 있다는 주장과, 국제 사회의 상호 인정과 공유된 기대로 인해 제한된 자원을 가진 국가에서조차 주권이 유지되고 있다는 상반된 견해가 공존한다고 지적한다. 또한 국가 권위의 범위가 시간에 따라 증가했다는 시각과, 국가가 효과적인 통제를 행사할 능력이 약화되고 있다는 시각이 대립하며, 보편적 인권(universal human rights)과 같은 새로운 규범이 과거와의 근본적인 단절을 의미하는지, 아니면 단순히 강대국의 선호를 반영하는지에 대한 논쟁도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혼란은 부분적으로 “주권”이라는 용어가 다양한 방식으로 사용되어 왔다는 사실과, 주권 국가 체제를 포함한 모든 국제 제도 시스템의 규범과 규칙이 제한된 영향력만을 가지며 논리적 모순(예: 비개입 원칙(nonintervention) 대 민주주의 증진), 갈등 해결을 위한 권위 있는 제도적 장치의 부재 (국제 체제의 정의), 주요 행위자, 특히 국가 간의 권력 비대칭(power asymmetries), 그리고 개별 통치자들이 직면하는 상이한 인센티브 등으로 인해 항상 도전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인식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다. 어떤 규범 체계를 선택하든 국제 환경에서의 행위는 주어진 규범과 긴밀하게 일치하지 않을 것이며, 특정 규범에 도전하는 정당성은 시간에 따라 변할 수 있지만 도전 자체는 지속될 것이다.
2. 주권의 네 가지 의미
크라스너는 이러한 혼란을 해소하기 위한 첫걸음으로 주권이라는 용어가 사용되어 온 네 가지 상이한 의미를 명확히 구분한다. 이는 국제법적 주권 (international legal sovereignty), 베스트팔렌 주권 (Westphalian sovereignty), 국내 주권 (domestic sovereignty), 그리고 상호의존 주권 (interdependence sovereignty)이다. 첫째, 국제법적 주권은 공식적인 사법적 독립성(formal juridical independence)을 가진 영토적 실체들 간의 상호 인정(mutual recognition)과 관련된 관행을 의미한다. 둘째, 베스트팔렌 주권은 주어진 영토 내의 권위 구조에서 외부 행위자를 배제하는 것에 기반한 정치 조직을 지칭한다. 셋째, 국내 주권은 국가 내 정치 권위의 공식적 조직과 공권력이 자국 국경 내에서 효과적인 통제(effective control)를 행사할 수 있는 능력을 가리킨다. 마지막으로, 상호의존 주권은 공권력이 정보, 아이디어, 상품, 사람, 오염물질 또는 자본의 국경 간 흐름을 규제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이러한 네 가지 주권은 서로 다른 측면에 초점을 맞춘다. 국제법적 주권과 베스트팔렌 주권은 통제(control)가 아닌 권위 (authority)와 정당성 (legitimacy)의 문제를 다루며, 각각 고유한 규칙 또는 적절성의 논리(logics of appropriateness)를 가진다. 반면, 국내 주권은 권위와 통제 모두를 포함하며, 상호의존 주권은 오로지 통제에만 관련된다. 중요한 점은 이 다양한 종류의 주권이 반드시 함께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 국가는 하나의 주권을 가질 수 있지만 다른 주권은 가지지 못할 수 있으며, 때로는 한 종류의 주권 행사가 다른 종류의 주권을 약화시킬 수도 있다.
3. 국제 체제의 행동 논리: 기대 결과의 논리와 적절성의 논리
저자는 제임스 마치(James March)와 요한 올슨(Johan Olsen)이 제시한 기대 결과의 논리 (logics of expected consequences)와 적절성의 논리 (logics of appropriateness)라는 두 가지 행동 논리가 모든 정치적, 사회적 환경에 존재한다고 설명한다. 기대 결과의 논리는 정치적 행동과 결과를 주어진 선호(preferences)를 극대화하기 위해 고안된 합리적 계산 행동의 산물로 본다. 반면, 적절성의 논리는 정치적 행동을 주어진 상황에서 적절한 행동을 규정하는 규칙(rules), 역할(roles), 정체성(identities)의 산물로 이해한다.
이 두 논리는 상호 배타적이지 않지만, 그 중요성은 환경에 따라 다르다. 이 연구의 기본 주장은 국제 체제가 적절성의 논리보다 기대 결과의 논리가 지배하는 환경이라는 것이다. 그 이유로, 행위자들은 다중 역할을 구현하며 국제 규칙은 모순될 수 있고 이를 판결할 권위 구조가 부재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경우 국내 역할이 국제 역할보다 더 설득력이 있는데, 이는 국내적 적절성의 논리가 정치 지도자의 자기 개념화(self-conceptualization)를 지배할 가능성이 더 높기 때문이다. 더욱이 국제 체제는 권력 비대칭(power asymmetries)을 특징으로 하며, 강대국들은 자신들의 도구적 목표에 가장 적합한 규칙을 선택할 수 있다.
4. 연구의 행위자: 통치자와 그들의 동기
크라스너는 자신의 연구가 통치자 (rulers), 즉 구체적인 정책 결정자를 존재론적 출발점(ontological givens)으로 삼는다고 명시한다. 국가나 국제 체제가 아닌 통치자가 정책, 규칙, 제도에 대한 선택을 하며, 국제법적 주권과 베스트팔렌 주권이 존중되는지는 통치자의 결정에 달려있다. 이 연구의 가정은 통치자들이 권력을 유지하기를 원하며, 권력을 잡은 후에는 자신들의 지지자들의 안보, 번영, 가치를 증진하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국제법적 주권은 사법적 독립성과 영토를 가진 실체 간의 상호 인정을 기본 규칙으로 하지만, 이 규칙은 결코 보편적으로 지켜지지 않았다. 비인정은 정책의 도구로 사용되어 왔으며, 공식적인 사법적 자율성이 없는 실체도 인정받았다. 반면, 국제 체제의 거의 모든 국가가 국제적 인정을 누리는 반면, 베스트팔렌 주권을 누리는 국가는 훨씬 적다. 통치자들은 자국 또는 타국의 영토 내 권위 구조에서 외부 행위자를 배제해야 한다는 원칙에서 자주 벗어났다. 베스트팔렌 주권은 개입 (intervention)과 초청 (invitation)을 통해 위반될 수 있으며, 그 핵심인 자율성 규범은 인권, 소수자 권리 등 대안에 의해 도전을 받아왔다.
결과적으로, 국제 체제의 결과는 물질적 및 관념적 이해관계의 계산에 기반하여 국제 원칙이나 규칙을 위반하거나 준수하는 통치자들에 의해 결정된다. 조직된 위선 (Organized hypocrisy)이 일반적인 상태이며, 베스트팔렌 주권의 기본 규칙 위반은 국제법적 주권의 기본 규칙 위반보다 더 자주 발생했고, 대안적 원칙에 의해 더 명시적으로 정당화되었다.
5. 주권의 네 가지 의미 상세 분석
5.1 국내 주권 (Domestic Sovereignty)
국내 주권은 국가 내 공권력의 조직 방식과 그 권력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행사되는지에 관한 것이다. 보댕(Bodin)과 홉스(Hobbes)와 같은 초기 주권 이론가들은 국가 내 최종적 권위의 정당성을 제공하려는 열망에서 비롯되었다. 국내 권위의 조직 방식이나 국내 통제의 효과성은 국제법적 주권이나 베스트팔렌 주권에 반드시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5.2 상호의존 주권 (Interdependence Sovereignty)
상호의존 주권은 현대 담론에서 세계화로 인해 국가 주권이 침식되고 있다는 주장의 핵심에 있다. 이는 권위가 아닌 통제의 문제에 근본적으로 관련되며, 상품, 사람 등의 국경 간 흐름을 규제하지 못하는 것을 주권 상실로 묘사한다. 상호의존 주권의 상실은 국내 통제로서의 국내 주권을 약화시키지만, 그것이 국제법적 주권이나 베스트팔렌 주권과 논리적으로나 실질적으로 관련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상호의존 주권의 상실이 통치자들로 하여금 베스트팔렌 주권을 타협하도록 이끌 수는 있다.
5.3 국제법적 주권 (International Legal Sovereignty)
국제법적 주권은 국제 체제에서 정치적 실체의 지위를 확립하는 것과 관련된다. 국제법적 주권의 기본 규칙은 영토와 공식적인 사법적 자율성을 가진 실체, 즉 국가에 인정을 부여하는 것이지만, 특정 정부를 인정하기 위한 추가 규칙들은 일관되게 적용되지 않았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공식적인 사법적 자율성이나 영토가 없는 실체도 인정받았다는 사실이다 (예: 국제 연맹의 인도, 유엔의 PLO 옵서버 지위, 몰타 기사단(Order of Malta)).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제법적 주권은 통치자들에게 매력적이었는데, 이는 “국제 무대에 대한 일반 입장권”과 같으며, 물질적 및 규범적 자원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국제법적 주권이 베스트팔렌 주권을 의미하지 않으며, 국내 주권이나 상호의존 주권을 보장하지도 않는다는 점이다.
5.4 베스트팔렌 주권 (Westphalian Sovereignty)
베스트팔렌 주권은 영토성(territoriality)과 국내 권위 구조에서 외부 행위자를 배제한다는 두 가지 원칙에 기반한 정치 생활 조직을 위한 제도적 장치로 이해된다. 베스트팔렌 주권은 외부 행위자가 국내 권위 구조에 영향을 미치거나 결정할 때 침해되며, 이는 강압적인 개입 (intervention)과 자발적인 초청 (invitation)을 통해 발생할 수 있다. 내정 불간섭 규범은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과는 거의 관련이 없으며 18세기 말까지 명확히 명시되지 않았다. 이 연구의 가장 중요한 경험적 결론은 베스트팔렌 주권과 국제법적 주권과 관련된 원칙들이 항상 위반되어 왔으며, 어느 것도 통치자들이 이탈할 인센티브가 없는 안정된 균형 상태였던 적이 없다라는 것이다. 오히려 이들은 조직된 위선 (organized hypocrisy)의 예로 가장 잘 이해된다.
6. 주권 규범 타협의 양상 (Modalities of Compromise)
이러한 주권 규범으로부터의 이탈은 네 가지 타협의 양상 (modalities of compromise)을 통해 발생한다. 이는 (1) 한 통치자의 행동이나 정책이 다른 통치자의 행동이나 정책에 의존하는지(즉, 파레토 개선적인지 (Pareto-improving)) 여부와 (2) 적어도 당사자 중 한쪽은 더 나아지고 아무도 더 나빠지지 않는지(즉, 조건부인지 (contingent)) 여부라는 두 가지 기본 차원에 따라 구분된다. 이 네 가지 양상은 그림 1.1 에 요약되어 있다.
6.1 협약 (Conventions)
협약은 조건부가 아니고 파레토 개선적이다. 통치자들은 다른 당사자들이 그 조건을 존중하는지와 관계없이 특정 기준을 준수하기로 동의한다. 이는 주로 20세기의 발전으로, 소수자 권리나 인권과 관련된 자발적 합의이며, 유럽인권체제(European Human Rights regime)가 대표적이다.
6.2 계약 (Contracts)
계약은 조건부이고 파레토 개선적이다. 참여자들이 약속을 지킬 경우에만 파레토 개선이 이루어진다. 계약은 항상 국제법적 주권과 일치하지만, 국내 권위 구조를 변경할 경우 베스트팔렌 주권을 위반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종교적 관용(베스트팔렌 조약), 왕위 계승(위트레흐트 조약), 소수자 권리 보호, 국채 상환 조건, IMF 조건부 차관 등이 이러한 계약의 예이다.
6.3 강압 (Coercion)과 강요 (Imposition)
강압은 조건부이고 파레토 개선적이지 않다. 한 통치자가 다른 통치자에게 정책 변경을 요구하며 제재를 위협하고, 대상은 이전보다 더 나쁜 상태가 된다. 경제 제재가 대표적인 예이다. 강요는 조건부가 아니고 파레토 개선적이지 않으며, 강압의 논리적 종착점으로, 대상은 개시자의 요구를 수용하는 것 외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 군사력이 명백한 도구이며, 주요 강대국 간의 공동 관리체제(condominium)나 세력권 수용이 있을 때 가능했다. 노예무역 종식을 위한 영국의 군사력 사용, 포함외교(gunboat diplomacy), 미국의 중남미 개입(쿠바 플랫 수정조항(Platt amendment)), 냉전 시기 소련의 동유럽 위성국 통제 등이 이에 해당한다.
베스트팔렌 주권의 위반은 네 가지 양상 모두를 통해 거의 일상적으로 발생했지만, 국제법적 주권의 위반은 덜 일반적이었고 주로 계약이나 협약이라는 자발적 결정을 통해 발생했다. 협약과 계약을 통한 자율성 침해는 초청에 해당하며 국제법적 주권은 위반하지 않는다. 반면, 강압과 강요는 개입의 예로, 베스트팔렌 주권뿐만 아니라 국제법적 주권의 기본 원칙도 위반한다.
7. 결론: 국제 체제에서의 조직된 위선
결론적으로, 크라스너는 주권이라는 용어가 네 가지 방식으로 사용되어 왔으며, 이 연구는 국제법적 주권과 베스트팔렌 주권, 특히 후자에 초점을 맞춘다고 요약한다. 국제법적 주권과 베스트팔렌 주권 모두 조직된 위선 (organized hypocrisy)의 사례로 개념화된다. 둘 다 명확한 적절성의 논리(logics of appropriateness)를 가지고 있지만, 통치자들이 결과의 논리(logics of consequences)를 따르면서 이러한 적절성의 논리를 거부할 수 있기 때문에, 그 원칙들은 지속되면서도 위반되어 왔다. 베스트팔렌 주권의 위반은 더 빈번했고, 대안적 원칙(인권, 소수자 권리 등)에 의해 정당화되는 경우가 많았다. 국제법적 주권의 기본 규칙은 더 강력하고 널리 준수되었지만, 통치자들은 때때로 이 규칙에서 벗어나 다른 제도적 형태를 고안하기도 했다. 국제 체제는 가장 복잡하고 약하게 제도화된 환경 중 하나이며, 권위 있는 계층 구조가 부족하고 규범은 때때로 상호 모순적이며 권력은 비대칭적이다. 이러한 환경에서 결과의 논리는 항상 적절성의 논리를 압도할 수 있으며, 조직된 위선은 규범이다.
책이름 | Organized Hypocrisy |
챕터 | Chapter 1 제1장 주권과 그 불만 (Sovereignty and Its Discontents) 개념의 혼란과 작동 방식의 재해석 |
저자 | Stephen D. Krasne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