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벌주의의 역설: 나는 <원석 상태>가 싫다

평가를 거부한 채 커튼을 뒤집어 쓰고 개인의 잠재력과 노력을 평가 절하하거나, 타인을 비하하는 행위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학벌로 인한 사회적 편견에도 불구하고, 이를 극복하고자 노력하는 학자들이 있다. 이들은 <지방대 출신>라는 낙인이 찍히더라도 그 낙인을 이겨내려 열심히 공부하고 연구 실적을 쌓아 더 나은 교육 기회를 얻고, 궁극적으로는 해당 분야에서 전문성을 키워간다. 반면, 이러한 편견에 지나치게 위축되어 자신의 학력을 숨기고, 교육 제도 전반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표출하는 이들도 있다. 그 <지방대> 낙인이 두려워서 고졸 커튼을 뒤집어 쓰는 주제에 지식인인 척을 하고싶어 온갖 피해망상에 시달리며 대학교육 무용론 등을 파는 딱한 사람들이 바로 그런 유형이다. 그들은 내가 그들을 지식인으로 인정하지 않는 태도를 보이면 나를 학벌주의자,엘리트주의자라고 비난한다. 그러나 사실은 오히려 그들이야말로 <지방대>와 같은 학벌사회의 낙인을 누구보다도 두려워하며 커튼을 뒤집어 쓴 채 “지식인인 척” 한다는 점에서 학벌주의의 노예라고 불릴 만하다.새로운 지식을 접하게 해주고, 그 학문의 전통적인 흐름을 정리해 주고, 생각의 틀을 가르치고 지속적으로 시험한다는 점에서 대학은 반드시 가야 한다. 학벌이 있다고 대단하다기보다는 그만큼의 필터링을 거치고 왔다는

[정대성의 생각] 친구의 도리란 무엇일까

나는 박원순과 사상이 반대였기 떼문에 박원순만큼 싫어했던 사람이 없었음. 근데 참 불쌍하고 딱하다고 생각한 때가 있었는데 그게 장례식 때임. 그 장례식을 보고 나는 박원순은 인생을 잘못 살았다고 생각함. PC한 놈들을 하도 주변에 둬서 그런진 몰라도.. 부모가 잘못가면 울면서 따라가야 하는것이 대체적인 도리이지만, 친구는 그럴 필요도 없고 의견을 달리하면 충고하고 갈라선뒤 다른 길을 가야하는게 맞음. 그리고 잘못을 저질렀는데 친구라고 옹호하는건 그건 깡패의 도리이고 사사로운 감정을 대의의 앞에 둠으로서 일을 거꾸로 하는 것이라고 생각함. 다만 그가 의롭지 못하여 심판을 받아서 죽었을때, 비록 갈라섰지만 한때 친우의 도리로 불이익 감수하고 형장에서 곡하면서 뼈 정도는 수습해줄 용기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함. 아무리 범죄자라도 말임. PC적인 사람 뿐만이 아니라, 관계를 사상에 기반한 동지애에만 두는 놈들과는 친할 필요가 없음. 견해와 사상이 달라도 친우관계는 인간의 정으로서 하는 것임. 그의 허물도 기꺼히 안을 수 있으니 친구를 하는 것임. 연쇄살인마가 사형당해도 그 부모형제는 그를 정죄하지 않고 곡하는것을 뭐라할수 없듯, 아무리 천하의 나쁜놈이 죽었어도 그와 인륜의 정을 쌓은 자가 뒷수습을 해주는 것

[정대성 칼럼] “국제 공용어로서의 영어”와 “현지 언어로서의 영어”의 차이

영어의 유창함이 필요할때와 영어의 정제됨이 필요할때는 다 다르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자꾸 인도 영어나 반기문 예 들면서 “영어라는게 알아먹으면 된다” 혹은 그 역으로 “원어민은 그렇게 복잡하게 말 안하고 간단하고 슬랭이나 관용구를 많이 써~” 이러면서 허영심에 가득찬 소리를 한다. 근데 내 입장에서 솔직히 말해 위와 같은 행위는 때에따라 정말로 바보같은 소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국제 공용어로서의 영어”와 “미국(혹은 현지)에서 쓰이는 영어”는 엄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 UN과 같은 국제 기관이나, 국제 학술회의라던지 영미권 이외의 국가들에서 비지니스에 쓰이는 영어는 매우 간결함과 또박함(정제됨)이 필요하다. 또한 국제적인 환경인만큼 실질적으로는 정말로 다양한 엑센트가 사용되기 때문에 영어를 모어로 사용하는 원어민일지라도 경험과 훈련이 필요하다. <정제된 영어>가 사용되는 곳에서는 영어가 모어가 아닌 사람들에게 맟추어져 있기 때문에, 유창함보다도 정제됨이 더 중요하다. 이상적으로는 미국식 혹은 영국식 발음법/엑센트, 혹은 아무리 봐줘도 영어를 모어로 사용하는 나라들의 악센트에 기반하면서, 표준 문법과 함께 문어체에 가까운 언어를 구사해야 한다. 반기문과 같은 외교관들은 한국 엑센트를 가지고 있지만 그 발음법은 미국식이다. ■ <정제된 영어>는 영어를 모어로 사용하는

[정대성 칼럼] 북경대와 UC버클리 학식을 비교하면서

■ 중국은 사회주의경제를 철저히 제거했기 때문에 번영한것 같다. 중국인들 누구보다도 셈에 정확한 사람들이다. 진짜 물한방울, 전기, 와이파이도 돈 다 받는 지독한 놈들이다. 이렇게 지독하고 꼼꼼히 계산하는 사회인데도, 내 학부시절, 기숙사시절과 비교했을때, 이렇게 풍요롭고 자유롭게 음식을 먹었던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그러나 실상과 별개로, “표면상의 조건”에서는 버클리의 조건이 좋게 보인다. 버클리는 학생식당이 마음껏 퍼먹을 수 있는 뷔페식이었고, 비건, 할랄, 코셔, 지역음식등 각양각색의 학식을 무제한으로 제공했다. 가격도 나쁘지 않았다. 입장료가 당시 돈으로 8불정도 했었으니깐. (당시 버클리시 최저임금이 15불 언저리였다) ■ 문제는 학교가 기숙사생들에게 의무적으로 한 학기치의 식사를 강매시키고 재정보조에서 깠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기숙사생들은 적어도 일주일에 3-5끼는 강제로 학생식당에서 먹어야 했다. 마음껏 먹을 수 있는 뷔페식이라도 매 학기 내내 비슷한 음식들을 먹는 것은 그리 유쾌하지 않을 것이다. 학교가 직접 운영하는 식당은 식품영양학과 학생들을 저렴한 가격에 고용하여 운영되었고, 그 질은 별로 좋지 않았다. 그마저도 한곳은 비건식당이었고 가끔씩 랜덤으로 어떤 또라이 시민단체의 지원으로 벌레요리가 나오기도 한다. 불쌍한 내 동생은 그 식당에서 밀웜 타코를 본

[정대성 근황] 북경대 1주차 후기

(1) 교수들 영어 많이 못함. 수업시간의 질과 달리 물어다주는 자료들이 매우 좋을것으로 예상. 궁금한 부분에 대해서 중국어로 된 자료 이메일 보내서 열심히 받아야. 영어를 못하시지만, 매우 열정적으로 수업을 하셨는데, 대체적으로 알아들은 수업 내용은.. 내가 페이스북에서 쓰는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 않음. 중산층 이야기, 정부의 경직성 이야기, 중국의 의견 청취, 기층조직 참여자 인터뷰이야기 등등. 단 이런 이야기들이 프로파간다처럼 들릴 수 있다는게 좀. (2) 학부때는 거의 하루에 논문 5-10개정도의 논문을 본것 같은데, 여기는 많아봐야 3개 정도? 생각보다 별로 안빡셈. 2학년들이 논문 써야 하니깐 그런게 아닐까? 조심스럽게 생각중. (3) 모든 수업이 중국과 관련된 수업이라는 것이 너무 행복함. (4) 권위주의 정권의 예로 Venezuela, Korea, Russia… 이러는데, 무의식적으로 “??????” 이랬다가 “아! 거기.” 미국에서는 통상 Korea라고 하면 남쪽을 이야기함. 물론 PC하게 South Korea라고 정확하게 쓰시는 분들이 있는데, 일상언어에서는 걍 Korea(한국) North Korea(북한) 인데, 중국 역시 PC하게 쓰는 사람들은 PC하게 쓰지만, Korea로 북한을 refer하는사람은 머리털나고 처음 봄. (5) 생각보다 놀란게 류샤오보나, 중국에 대해서 매우 비판적인 인물이 쓴 저작물들이

[정대성 근황] 북경대 석사과정 수석합격 및 국가장학금 선정

북경대 국제관계학원 석사 전체 프로그램중 중국인과 유학생 통틀어서 수석입학 + 정부장학금 b형 합격했습니다. 다른 프로그램 (LSE/시앙스포 공동학위 프로그램)나 중국인 내부전형 입시 최고점자가 92점이라 최고점입니다. 저도 믿기지 않는 결과이긴 하네요. 북경대 석사 서류심사가 까다롭기로 악명이 높아서, 90점 넘는 사람이 손에 꼽는데, 90점 넘은 5명의 중국인중 수석이 91점, 유학생은 차석이 90.5인 점에서 봤을때, 제가 받은 93점은 꽤나 독보적인 점수입니다. 게다가 학교추천으로 전체 국제관계학원 유학생중 3-5명만 받을 수 있는 정부장학금 전액도 받게 되었습니다. 자랑하려고 올린다기보단, 지금까지 받은 설움이 씻겨나가는 것 같아서 좀 울컥한 느낌? 인생 잘못 살아온거 아니었구나? 같은 느낌이요. 그래도 지구상의 한 구석에서는 인정을 받는다는 느낌이랄까. 넷상이든 현실이든 저의 인격이나 제가 걸어온 길을 행동으로, 마음으로 부정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명문대생이면 한번즈음은 해볼 연구소 인턴도 죄다 리젝을 먹었고요. 그 와중에 저는 제 능력이 정말 부족한건지 끊임없이 되네어야 했죠. 그 상태가 유지된채로 3학년 4학년때는 그냥 코로나때문에 옴짝달싹 못하게 묶여야 했습니다. 그 동안 저는 패배감에 시달려야 했고요. 내 성격이 문제인가? 내가 지금까지 놓치고 있던 학문적인 포인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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